본문 바로가기
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곁에 두어 지키고 싶은 산사나무

by 늘품산벗 2015. 12. 8.

 

이맘 때 산을 오르다 만나는 반가운 열매. 어떤 이가 ‘붉은 태양이 조각조각 나뉘어 나무에 매달렸구나’ 라고 찬미했던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단 산사나무를 만나면 왜 그리 반갑던지.

 

앙증맞은 열매에 절로 손이 가고, 따 한입 베어 물면 새콤달콤 밀려오는 맛과 향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이 힘든 산행에 작은 행복을 주는 선물 같은 나무다.

 

모양은 동그랗고 빨간 게 꼭 작은 사과처럼 생겨 당연히 ‘산에서 나는 사과나무’라 해서 산사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거라 여겼다. 너무나 그럴듯하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산사나무는 중국에서 부르는 산사수(山査樹)라는 이름에서 따온 거라 한다.

 

산사수란 ‘산에서 자라는 아침 나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나무에 꽃들이 펴 하얗게 덮고 있는 모습이 아침이 밝아오는 모습 같다 해서 붙여졌다 한다.

 

그런데 한자어로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산사나무는 이 땅에 살고 있었을 테고 그때는 무엇이라 불렀을까 의문의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니 바로 용인출신 조선후기 유학자이자 음운학자였던 유희(1773~1837)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은 ‘태교신기’라는 책을 쓴 사주당 이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유희 선생은 평생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알리며 연구했던 학자로 100여권 넘는 책을 집필했는데 천문, 지리, 의약, 곤충, 어류, 나무, 새 등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1820년대 ‘물명고(物名考)’라 해서 여러 가지 사물의 이름과 특징을 한글 또는 한문으로 풀이한 일종의 백과사전을 만들었는데, 그 책을 보면 산사나무가 우리말 ‘아가외나무’로 또렷하게 기록돼 있다. 작음을 뜻하는 ‘아가’와 참외 같은 열매를 뜻하는 ‘외’가 붙어 이름 지어졌다 한다.

 

이후 아가위나무라고도 불리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의 나무보단 아기열매 나무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가을이라 그런가.

 

나에게 익숙함이 전체로 보면 낯설기도 하다. 필자가 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 핸드폰이란 것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핸드폰 없는 생활이 아주 낯설진 않다.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은 태어나면서 핸드폰이 이미 제 옆에 있다 보니 핸드폰은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익숙하다.

 

오랫동안 아가외라고 불리었던 나무가 잠시 산사나무로 불리고 있는데 제 이름을 찾아주기엔 너무 늦은 것일까. 어쩔 수 없이 필자도 산사나무로 계속 부르기로 한다.

 

산사나무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 우리나라 남쪽 일부를 제외한 전국과 중국 북부, 사할린이나 시베리아 등에서 자란다. 서양에도 유럽과 북미에 유사한 종들이 수없이 많아 10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산사나무와 연관된 이야기가 많다.

 

산사나무는 봄에 하얀 꽃이 우산살처럼 둥글게 구름처럼 모여 핀다. 그리곤 가을에 빨간 열매를 맺는다. 모양도 맛도 새콤달콤 사과와 비슷하다. 잘 익었을 땐 사각사각 거리다가 푹 익으면 푸석거리고 열매 아래쪽에 사과꽃이 떨어진 자리가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온 것까지 닮았다. 단지 열매 크기에 비해 배꼽이 좀 클 뿐.

 

예쁜 꽃과 맛난 열매를 가진 산사나무는 지킬 게 많아서인지 가시가 있다. 이 가시 덕분에 산사나무는 벽사와 수호의 의미로 사람들 곁에 살아왔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집 울타리로 심으면 도둑은 물론이고 안좋은 기운이나 귀신들로부터 집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서양에서는 산사나무를 ‘벼락을 막는 나무’라 해서 울타리로 심거나 나뭇가지를 집 안에 꽂아놓으면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요람 곁에 나뭇가지를 두면 아기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1620년 유럽의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가면서 타고 간 배 이름이 메이플라워호(May flower)인데 여기서도 5월에 피는 산사나무를 가리키며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며 거룩한 가시나무라 신성시 돼 왔다.

 

오랫동안 여러 민족을 지켜주며 살아왔던 산사나무는 어느새 자연이 사람들에게 멀어지듯이 함께 멀어져 산에서나 간혹 만나면 반가운 나무가 됐다. 이젠 우리가 지켜줄 차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