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투명 갑옷을 입은 칠엽수
기사승인 2016.01.19
겨울이 돼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 때 비로소 나무 살갗이 보인다. 그동안 싱그런 잎, 화려한 꽃, 앙증맞은 열매에 시선을 빼앗겨 보지 못했던 나무 껍질과 줄기와 수형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느끼게 된다. 아! 다 다르구나! 그저 일자로 곧게 뻗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무 모양과 색깔과 촉감이 나무마다 제각각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겨울 숲에서는 나무의 살갗과 껍질을 보며 무슨 나무인지 알아맞히는 놀이에 친구들과 즐겁다.
나무의 맨살 보기 중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또 하나 있다. 가을에 잎을 떨구는 나무들이 다음 해 봄을 준비하며 미리 만들어놓는 겨울눈, 작은 잎과 꽃을 꼬깃꼬깃 접어 압축 팩에 넣듯이 꼭 싸매고는 좋은 날 보자기 풀어내며 잔치를 벌이려 준비해 놓는 겨울눈이 그것이다.
겨울눈 또한 크기도 색깔도 생긴 모양도 제각각이지만, 겨울눈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우리가 추운 날씨에 옷을 더 많이 껴입듯이 몇 겹의 껍질로 꽁꽁 싸매는 기본전략을 가졌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부가적인 안전장치를 겸비해놓는 나무들이 있다. 부숭부숭한 털로 감싸 안은 목련의 겨울눈은 보기에도 따듯해 보인다.
끈적끈적한 액체로 투명막을 형성하는 칠엽수라는 나무가 있다. 시원하게 길쭉길쭉 뻗은 잎새 일곱 장이 손바닥 펼치듯이 둥글게 모여 달려 칠엽수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잎을 세어보면 어떤 것은 다섯 장이 모여 달린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여덟 장이 모여 달린 것도 있으나 대체로 일곱 장이 대세이니 굳이 꼬투리 잡지 말아줬으면 한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는 것이 여기서도 통용된다.
칠엽수의 겨울눈은 크기가 제법 크다. 여름에 큼지막한 잎 사이로 빨갛게 솟아오르는 겨울눈을 찾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필자가 벌레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마치 안이 통통하게 잘 앉은 쌈배추 보는 느낌일 것 같다.
그러나 나무 입장에서 보면 겨울눈을 지켜야 하는 엄중한 사명이 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수지’라는 방어물질을 내뿜어 끈적거리게 만든 것이다.
겨울눈이 처음 생기기 시작하는 여름철에도 칠엽수 겨울눈은 끈적끈적하다. 생태계 내 가장 다양한 먹이를 먹는 우리 사람들도 끈적거려 입안에 달라붙는 음식을 먹는 건 그리 유쾌한 식감이 아니다.
더구나 손으로 집기에 힘들 정도로 끈적거린다면 이것은 맛있다기보다 곤혹스런 기분이 들 것이다. 식물에게 끈적거림은 곤충들이나 다른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다.
민들레는 곤충들이 잘 먹지 않는 식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잎이나 줄기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진액 때문이라고 한다. 잎을 뜯어 먹으면 그 진액이 끈적거려 입이 붙어버려 굶어죽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벌레들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끈끈이대나물은 꽃이 달리는 줄기 아랫부분에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이 곳을 보면 작은 벌레들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만져도 끈적함이 느껴질 정도이니 작은 벌레들에겐 붙으면 발을 뗄 수 없는 강력한 함정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외 벌레잡이 식물로 유명한 끈끈이주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식물에서 나오는 천연수지인 끈적거리는 진액은 식물들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
시간이 지나 수지에서 휘발성 성분이 날아가고 나면 끈적함은 덜해지고 딱딱하게 굳기 시작한다. 겨울이 한창일 때 칠엽수 겨울눈은 추위로부터 보호해야 할 고갱이를 위해 수지가 굳어서 된 투명한 갑옷을 입고 있다. 겨울바람 한 자락도 못 들어갈 만큼 견고해 보인다.
아주 단단하고 옹골찬 모습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봄이 돼야 이 갑옷이 부드럽게 열리고 새 잎이 돋아날 것이다. 정말 영특한 겨울눈이다.
칠엽수 겨울눈에 빠져 한참을 이야기하다보니 지면이 한정됨에 아쉬움을 느낀다. 봄이 돼 칠엽수 잎이 돋아나고 화려한 꽃이 피길 기대하며 그때쯤 다시 칠엽수를 만날 것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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