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자기들이 품고 있는 시계에 따라 꽃봉오리를 부풀렸다가 살포시 피어 자신과 닮은 생명의 씨앗을 품은 열매를 만들고는 장렬히 사라져간다. 그 존엄한 생명 작업시간은 꽃들마다 다르다.
어떤 꽃은 두세 시간이라는 찰라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꽃은 해의 흐름에 따라 아침에 시작해 저녁에 마감한다. 또 어떤 꽃들은 일주일 이주일씩 피어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한다.
배롱나무는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피어 가을까지 피어있다 보니 정확한 100일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이라는 의미의 ‘백일홍’이라 이름 지어졌다. 그래서 백일홍나무라고 부르다가 배롱나무가 됐다고 한다. 풀 중에도 멕시코에서 들어온 백일홍이라는 꽃이 있다. 같은 의미로 꽃이 오랫동안 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랫동안 피는 속성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배롱나무를 앞에 ‘나무’자를 붙여 ‘나무백일홍’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배롱나무 꽃은 대부분 분홍빛과 붉은빛을 띠는데 때로는 흰색 꽃이 피는 것도 있다. 이를 흰배롱나무라고 특별히 불러준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한 현자가 배롱나무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사실 열흘 이상 붉은 꽃은 많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실제로 살펴보면 한 송이의 꽃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다만 한 송이가 사그라지면 바로 옆 새로운 꽃송이가 피어나기에 우리 눈에는 매일 피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배롱나무도 여러 송이가 모여 한 다발을 이뤄 계속 이어서 피어나기에 우리 눈에는 오랫동안 피는 꽃으로 보인 것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배롱나무는 겨울 추위에 약해서 경기도 이남의 지역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몹시 추웠던 겨울, 마당의 배롱나무가 두 그루나 얼어 죽어버린 일이 있다. 그 후로 겨울이 시작될 즈음 특별 관리로 줄기를 따듯하게 싸매놓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껍질 벗겨져 맨살을 드러낸 배롱나무 모습을 보면 정말로 추위에 떨고 있는 것 같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배롱나무 가로수도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그쪽 지역은 따듯한 기온으로 배롱나무가 더 잘 자란다.
배롱나무 꽃 배롱나무는 수피가 특징이다. 껍질이 벗겨지면 하얗게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면 갈색으로 변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알록달록 무늬가 생긴다. 굵어진 줄기의 껍질이 다 벗겨져 매끈매끈해지고 구불구불 자란다.
같은 나무라도 상황에 따라 부여하는 가치가 달라진다. 껍질이 벗겨져 매끈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배롱나무를 보고 스님들은 “세상의 번뇌를 벗어던지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라”는 뜻으로 절 마당에 심었다. 선비들은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일편단심을 의미하고 부정한 것을 근접치 못하게 한다고 해서 향교나 서원에 심었다고 한다. 또한 반질반질한 나무 표면은 겉과 속이 같은 표리일치와 절개를 상징한다고 해 충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매끈한 줄기가 여인의 몸을 연상케 한다고 집안에 심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같은 나무라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남성들의 공간인 향교나 서원, 정자, 사찰 등엔 심고 여인들의 공간인 집에만 심지 못하게 했다는 건 필자가 여성이다 보니 좀 의도적이란 생각이 든다. 중국산 화려한 배롱나무 꽃의 유혹을 양반 남성들만 누리고 싶었던 걸까?
배롱나무는 예로부터 간지럼을 타는 나무로 유명하다. 줄기를 살살 문지르면 희한하게도 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충청도에선 배롱나무를 간즈름나무 또는 간지럼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주도에선 배롱나무를 ‘저금 타는 낭’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제주도 방언으로 ‘저금’은 간지럼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필자는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처음 듣게 된 걸로 기억한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붉음이 오래 못 가듯 권세나 권력이 오래 못가니 겸손과 성찰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얘기해주셨다.
그런데 그 때 필자에게 든 생각은 좀 다른 시각이었다. 꽃의 입장에서 보면 열흘 이상 붉지 않으니 붉을 때 잘 보라. 즉 ‘있을 때 잘해’라는 식으로 해석한 적이 있다. 그것이 계속 기억에 남아 아직도 ‘화무십일홍’ 하면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여름에 같이 꽃을 피우며 강렬한 햇살을 즐겼지만 어느새 주위 꽃들이 하나 둘 사그라져 가고 혼자 남아 외로움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배롱나무, 그래서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다’라는 꽃말이 붙어있다.
“그러니 있을 때 잘 하지”
“너나 잘해”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차가워지고 차창 밖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마당 풀벌레소리는 점점 오케스트라의 대열을 갖춰가고 있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도 무뎌지는 요즘 가을이 오고 있다는 얘기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 이번 가을엔 정말로 잘 해보자
'내가 좋아서 하는 일 > 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쥐똥나무 (0) | 2015.12.08 |
---|---|
이름을 불러주세요 “아아 그 아그배나무” (0) | 2015.12.08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0) | 2015.08.28 |
낮에 봐도 밤나무 (0) | 2015.08.28 |
도도한 듯 단아한 철쭉 앞에서 머뭇거리다 (0) | 2015.08.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