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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도도한 듯 단아한 철쭉 앞에서 머뭇거리다

by 늘품산벗 2015. 8. 28.

 

도도한 듯 단아한 철쭉 앞에서 머뭇거리다

 

필자에게 철쭉은 무서운 꽃으로 먼저 떠오르던 때가 있었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참꽃, 철쭉은 먹을 수 없는 개꽃, 먹으면 죽는다, 독이 있다.’ 등이 철쭉에 대한 지배적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이런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분홍색 철쭉을 잊지 못한다. 아토피 아들을 둔 엄마의 아픔, 남편 문제로 골치 아픈 친구,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장애 아이를 둔 엄마, 아직도 꿈을 꾸는 막막한 중년, 모두들 하나씩 인생의 아픔과 힘듦을 갖고 살던 친구들 몇이 갑자기 산에 꽂혔다.

 

한 달에 한 번씩 산에 오르며 자연 속에서 자신의 아픔과 힘듦을 내려놓던 친구들은 용인의 남쪽 끝자락 석술암산의 활짝 핀 커다란 철쭉나무 아래서 우리를 위로해주던 분홍 꽃무리를 잊지 못한다.

 

도도하고 화사한 듯 하면서 단아한 멋을 가진, 강한 듯 부드러운 철쭉꽃이 전해주던 생명의 힘,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철쭉은 우리에게 흔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나무 중에 하나이다. 숲에 들어가 철쭉을 알려주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저게 정말 철쭉 맞느냐고. 그렇게 헷갈리는 데에는 우리와 너무 가깝게 살고 있는 탓이 있다.

 

공원이나 정원 조경에서 빠지지 않는 꽃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너무나 많은 품종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며 딱히 하나하나 이름을 규정할 수가 없어 뭉뚱그려 ‘철쭉’ 또는 ‘영산홍’ 이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 꽃들에게도 기본이 되는 철쭉과 영산홍은 따로 있다.

 

이제 진짜 원조 철쭉을 만나보자. 요즘 숲에 가면 동글동글한 잎이 꽃만큼 예쁘게 펼쳐져 있는 나무를 만난다면 그게 바로 철쭉이다. 가지 끝에서 보통 다섯 장의 잎이 모여 꽃잎처럼 아기 손바닥 벌리듯이 쫘악 벌리고 있다. 모양도 둥글둥글 여간 귀엽지 않다. 또한 그 사이 사이 분홍색 진짜 철쭉꽃이 피어있다.

 

평을 하자면 진달래꽃은 수수하고 청순한 소녀 같다면 철쭉꽃은 도도한 듯 보이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닌 여인 같다. 봄에 진달래가 한창이다가 하나 둘 져갈 때 철쭉이 잎을 내민다. 오므린 아기 손이 펴지듯이 꼬물꼬물 잎이 펼쳐지면 사이사이 철쭉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진달래는 메마른 가지에서 꽃이 먼저 피어나고 나중에 꽃이 질 때쯤 잎을 내민다. 진달래는 잎 모양이 가늘고 뾰족한 잎 끝을 가졌다면 철쭉은 좀 더 두툼하고 끝이 둥글둥글하다. 꽃잎도 진달래보다는 철쭉이 두꺼워 보인다.

 

철쭉을 보며 마음이 설렌 사람이 필자만은 아니었나보다. 우리 조상님들은 철쭉을 ‘척촉’이라고도 불렀는데 척, 촉 두자 모두 한자로 ‘머뭇거리다’란 뜻이다. 척촉 척촉 하다가 철쭉이 되었으리라. 꽃을 보며 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린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 하니 철쭉의 아름다움은 사람들 마음을 유혹하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

 

철쭉 꽃봉오리를 만져보면 깜짝 놀란다. 아주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있는 털이 있기 때문이다. 꽃이 피어나기 전 말랑말랑 야들야들 맛있는 꽃봉오리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곤충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언젠가 본 꽃봉오리엔 곤충들이 예닐곱 마리나 붙어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철쭉의 특징 중 하나가 꽃잎에 진하게 찍혀있는 붉은색 점들이다. 어떤 이는 이 붉은 점에 독성이 있어 먹으면 죽는다는 혹세무민의 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곤충들에겐 “꿀이 여기 있어. 이리로 와” 하며 비행기 활주로 지시등 역할을 해 멀리서도 이 점들을 보고 날아와 정확히 꽃에 착지할 수 있게 한다.

 

그 밑을 보면 수술과 암술이 한결같이 그 점들을 향해 굽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날아온 벌 나비와 꽃가루 교환을 수월하게 하기 위함이다. 참 효율적으로 자신의 몸을 관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 한곳 이유 없는 곳이 없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접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들은 얘기와 추측으로 편견에 쌓인 오만으로 남을 대할 때가 있다. 그런 오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본질을 지켜나가는 철쭉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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