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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낮에 봐도 밤나무

by 늘품산벗 2015. 8. 28.

 

 

낮에 봐도 밤나무 꽃이 피었다

나무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꽃이다. 쭉 뻗은 가지와 초록 잎을 달았을 땐 다 비슷비슷해 보이다가 형형색색 꽃이 피면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알아본다. ‘아~ 너였구나’ 하며.

봄꽃나무의 출석 부르기가 끝나고 쑥쑥 자라기 경쟁을 하며 온통 초록으로 유니폼을 맞추듯 같은 색으로 물들어갈 때쯤, 어느새 나타난 묘한 향기가 코끝을 진동시킨다. 특히 밤 바람에 더욱 진하게 타고 내려와 마을을 휘감아 돈다. 여름의 시작과 함께 오는 ‘낮에 봐도 밤나무’의 꽃향기다.

밤나무 꽃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노랗고 길쭉길쭉한 꽃차례가 나무 전체를 감싸고 있다. 밤나무 꽃은 암꽃 수꽃이 따로 피지만 같은 나무에 달린다.

우리가 보통 보는 길쭉한 꽃은 수꽃이다. 수꽃은 새로 자라난 가지 밑동 잎겨드랑이에서 긴 꽃대에 작은 촉수들처럼 모여 마디를 만들며 뭉쳐 핀다. 아이들은 수꽃을 보며 애벌레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수꽃을 가지고 애벌레놀이를 하면 재미있다.

암꽃을 보려면 좀 더 가까이 가야한다. 암꽃은 수꽃의 꽃차례 바로 밑에 2~3송이씩 피는데 밤송이의 가시처럼 달린 암술들을 밖으로 쑥 내밀고 있다. 작은 말미잘처럼 생긴 모양이다. 크기도 작아서 아기 새끼손톱마냥 작다. 밤나무의 기다란 수꽃만 보며 ‘어~ 꽃 폈네’하고 지나가지 말고 암꽃도 찾아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작은 꽃이 그런 맛있고 큼직한 알밤이 될까? 놀랍지 않은가!

밤나무는 상수리나무와 많이 닮아있다. 그러한 연유로 둘 다 참나무과로 묶는다. 밤나무 잎과 상수리나무 잎은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에 물결모양 톱니가 있고 그 끝이 뾰족한데 밤나무는 엽록체를 포함하는 세포 때문에 녹색을 띠는데 반해 상수리나무는 엽록체가 없기 때문에 갈색을 띤다.

둘을 구분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밤나무 가지를 올려다보면 가지 중간 중간에 앵두만하게 울룩불룩 튀어나온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밤나무에게는 좀 아픈 사연인데, 상수리나무에는 없고 밤나무에게만 볼 수 있는 것 바로 밤나무혹벌이 만들어놓은 벌레혹이다. 숲에서 밤나무 무리를 발견하면 열에 아홉 이상이 벌레혹을 달고 있다.

밤나무혹벌이라는 작은 곤충이 밤나무의 겨울눈 속에 알을 낳는데 봄이 되면 급속히 자라 겨울눈에 벌레혹을 만들어 순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가지를 말라 죽게 한다. 너무 많아지면 나무 전체의 생명에도 지장을 준다하니 밤나무에게는 무서운 해충이다.

나의 살던 고향에 있는 나무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인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에게 고향의 나무는 밤나무였다.

태어나 자랐던 집엔 커다란 밤나무가 있었다. 밤알이 익어 떨어질 때쯤이면 아버지는 기다란 장대를 갖고 밤나무에 올라가 밤을 터셨다. 그러면 어린 손아귀에 간신히 잡을 만큼 커다란 밤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밤나무는 우리 집 울타리를 넘어 길가에 까지 뻗쳐 있었는데 우리 집 울타리 안에 떨어진 건 우리가 갖고 밖으로 떨어진 건 동네 사람들 몫이었다. 얼마나 많이 떨어지는지 동네 사람 모두가 나누어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래서 밤 터는 날이면 모든 마을 사람이 나와 떠들썩하게 밤잔치를 벌였다. 어린 마음에 그 나무가 얼마나 뿌듯하고 아빠가 멋져 보였는지 슈퍼맨이 따로 없었다.

그랬던 그 나무를 우리가 이사하게 되면서 이사 올 사람이 덜컹 베어 버렸다. 우리 집안의 우환이 그 나무 때문이라며 부정 탔다고, 나무가 무슨….

가끔 그 집터를 가보는데 나에겐 행복과 나눔의 상징이었던 그 밤나무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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