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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안성사람들-안성신문

약초 연구가 정진국씨

by 늘품산벗 2008. 5. 23.
내가 사는 십리 안에 내 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재가 다 있다
약초 연구가 정진국 씨
신승희 시민기자
 
자신을 시원찮다고 표현하는 한 남자를 죽산의 비봉산 끝자락에서 만났다. 산비탈을 개간한 좁다란 밭 한 구석에서 무언가를 심는 듯 꼼지락하다가 기자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일어난다. 좀 키가 크고 구릿빛으로 그을린 잘 웃으시는 맘씨 좋은 인상의 평범한 농부 아저씨 같은 정진국 씨다.
 
▲산비탈을 개간한 밭에서 약초를 일구고 있는 정진국 씨.      © 안성신문

뭐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울금을 심고 계셨다 한다. 울금? 아, 언젠가 카레 포장지에서 본 듯하다. 카레의 맛을 내는 중요한 재료라 한다. 생긴 걸 보니 꼭 생강하고 똑같다. 비봉산 끝자락 야트막한 자리는 약초동산을 가꾸어놓았다. 아직 초창기라 볼 게 없다고 하시지만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별게 다 있다.

"어, 애기나리네!"
울금을 심은 밭 한쪽에 자라고 있는 약초를 보고 기자가 한마디하자 그의 눈빛이 반짝한다.
"뭔가 아나보네. 애기나리가 어디에 좋은지 알아?"
"아니에요. 그냥 이름만 아는 정도죠."

애기나리가 간에 좋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약초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서도 계속되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섰다. 마당 한쪽에서 개 두 마리가 반긴다. 일일이 화답하고 계시는 걸 보니 개를 무척이나 좋아하시는가 보다. 그때 한 여자 분께서 오시더니 차(車)에 대해 뭐라 하신다. 차를 보니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끼인 채로 뒷 범퍼가 찢겨져 있다. 그걸 보며 정진국 씨 한마디 던지신다. "차가 잘 달리면 됐지 뭐."

식당건물 한쪽에 마련된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에 확 띄는 건 약초들이 담긴 술병이다. 약술이란다. 전문 한의사의 처방을 받아 여러 가지 약초들을 섞어 술을 담아놓으셨다. 그리고 한쪽엔 약초들이 쌓아져 있고 약초와 식물에 관련된 책들도 즐비하다. 마치 한의원에 온 것같이 약초냄새가 온 방을 휘감고 있었다. 다행히 기자는 그 냄새를 좋아해 삼림욕을 하듯 그윽하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 그의 작은 연구 사무실로 꾸며진 사무실에는 각종 관련 책들과 약초들로 가득했다.      © 안성신문
건네주는 십전대보주를 마시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낮술이라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몸에 좋은 약재를 넣은 약술 십전대보주라 부담보다는 기대감으로 조금씩 나누어가며 마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십이전대보주이다. 십전대보탕에 들어가는 열 가지 약재에 생강과 대추를 더했으니 말이다. 특히 여자에게 좋다는 말에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마셨다.

남자에게는 쌍화주가 좋다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아는 동물병원 원장님이 찾아오신 적이 있단다. 위가 안 좋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분이셨다는데 그분이 쌍화주를 마시고는 식욕을 되찾아 식사를 남기지 않고 다 드셔서 같이 오셨던 일행분들이 놀랐다고 한다. 몸의 기운이 상승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단다. 그후로 오실 때마다 쌍화주를 찾는다고.

아무리 몸에 좋더라도 독한 알코올이 들어갈 텐데 문제는 없는지 여쭈어보았다. 알코올은 물보다 흡수가 빠르기 때문에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적당량을 마시는 게 중요한데 약술을 마실 땐 20cc 정도, 소주잔 반 잔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예전엔 소, 돼지도 길러보고 누에도 쳐보고 과수농사까지 했단다. 그러던 중 10여 년 전부터 농업이 하향 길로 접어들고 힘든 문제가 자꾸만 발생하자 농산물의 차별성을 찾기 시작했다. 무언가 특화된 농작물을 생각하다가 농촌의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는 농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약초 농사에 이르게 되었단다. 그러다가 권혁세(益生養術 저자) 박사님을 만나면서 약초농업에 더욱 확신이 서게 되었다.
 
외국인을 보면 다 똑같이 보이듯 산에 올라가면 다 똑같이 보였었다. 그런데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하나하나의 모습이 다르게 보인단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제는 처음 본 이상한 식물만 보면 이게 뭘까 하는 기대감과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잡초란 것은 하나도 없다. 다 소중한 것으로 보인단다. 그래서 함부로 밟을 수도 없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자도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자기 자리를 벗어나서 엉뚱한 곳에 나 있는 상추를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고 조심조심 하는 같은 마음이 있어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약초는 몸의 원활한 기능을 위한 가치를 파는 것이다. 당연히 유기농업으로 가야 한다. 농촌의 깨끗한 환경, 경관, 맑은 공기를 유지 보존하려면 친환경농업으로 가야 한다.

요즘 광우병이네 조류독감이네 시끄러운데 이것은 가축을 대량 생산하는 체제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결국 이렇게 질병이 만연하고 그에 따라 항생제의 사용도 증가하고 그 가축을 먹은 인간도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대량생산, 다수확을 위해 화학비료, 농약을 쓰게 되고 이로 인해 보존해야 할 것을 많이 잃어버렸다. 냇가에 물고기가 없어지고,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다. 먹을거리에 의해 정신의 건강도 달라진다. 농촌이 살려면 재래농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전처럼 순환농법으로 말이다.

예전에 일가 할아버지께서 이사를 하시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께는 쇠똥이 아주 귀중한 거름이었다. 그래서 이사를 하며 쇠똥을 다 가지고 가셨다 한다. 순환농법이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권정생 선생님이 지으신 <강아지똥>이란 동화가 생각났다. 거기서 나오는 흙덩이가 아마 할아버지께서 소중히 생각하셨던 쇠똥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봉삼이라는 약초가 있단다. 예전에 어떤 보살 님이 봉삼술을 담가놓고는 먹지 않고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 그걸 달라 한다. 알고 보니 병원에서 생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한 말기 간암환자였단다. 그런데 그 봉삼술을 마시고는 병에 차도가 생겨 결국엔 완치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너무 고마운 맘에 찾아가 보답하는 방법을 물으니 보살 님이 그냥 작은 암자 하나 지어달라 했단다. 그래서 그 봉삼술 한 병에 몇 천만 원씩 한다는 얘기가 전해졌단다. 믿거나 말거나. 하긴 봉삼술 몇 병에 절 하나 지으려면 꽤나 비싸야 할 것이다.

봉삼술에 얽힌 또 다른 기이한 이야기가 있다. 약초술을 담그려면 30몇 도 정도 하는 독한 술로 담가야 하는데 글쎄 그 독한 알코올 속에서 봉삼이 싹이 트더란다. 또 다른 술에 그 봉삼술 얼마씩 섞어놨더니 그 속에 있던 다른 약초들도 싹이 텄다란다. 이 이야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진국 씨는 실제로 봤다 하니 믿어주는 수밖에. 내가 못 봤다고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는 안성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죽산이 건강 휴양의 도시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죽산은 17번과 38번 큰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고 또한 중부고속도로가 인접해 있다. 청미천, 죽산천 주변에 산수유나 매실을 심어놓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람은 겨울에 메말랐던 감정이 꽃을 보면 감정이 살아난단다. 그러니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보며 이 지역에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어찌 안할 수가 있단 말인가?

친환경 유기농으로 대안만 잘 세우면 약초도 그렇고 농촌도 얼마든지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오히려 농촌이 가지고 있는 특성상 환경을 파괴하는 공장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단다.

농촌이란 공간이 얼마나 좋은가? 농업이 6차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특히 교류란 측면을 강조한다.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단절된 생활인가? 그들에게 농촌이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여쭈어봤다. 물질적인 것보다 서로의 믿음이 깨졌던, 이해가 부족했던 순간이라 했다.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생각의 공유가 안되었을 때란다.
 
▲ 좀 시원찮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얘기하는 그는 특히, 죽산이 건강 휴양도시로 가꿔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 안성신문

정진국이란 사람은 본인이 말하길 좀 시원찮은 사람이란다. 하지만 그와 10분 정도만 대화를 하고 나면 그 말이 엄청난 겸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차가 깨지고 찢겨도 둥근 바퀴가 달려 잘만 굴러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무언가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는 사람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메뉴로 나온 돼지갈비, 그냥 갈비가 아니란다. 1차로 과일로 재우고 2차로 약초로 숙성시킨 그다운 메뉴다. 그리고 직접 가꾼 유기농 야채, 도꼬마리와 신이화(목련꽃봉오리)가 첨가된 수제비까지. 기자도 유기농 예찬론자로서 아주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반주로 십전대보주 한잔, 후식으로 직접 우린 쌍화탕. 몸과 마음과 정신이 보신한 날이다.

신승희 시민기자
 

 
2008/05/21 [16:21]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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