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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안성사람들-안성신문

어르신들 찾아나서는 노래강사 정도자 씨

by 늘품산벗 2008. 10. 4.

내 생활의 활력소는? 노래다!
어르신들 찾아나서는 노래강사 정도자 씨
신승희 시민기자

▶지역의 어르신들을 찾아나서며 노래강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정도자 씨.       © 안성신문

“선생님 제가 좋은 차 한잔 대접할게요.”

차는 구실이고 정도자 씨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 불러냈다. 그것도 급성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갓 퇴원한 사람을.

“갑자기 왜 병원에 입원을 하셨어요?”

“피로와 과로, 그냥 스트레스지 뭐. 병원에서 푹 쉬었어.”

내가 알고 있는 정도자 씨는 노래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채 항상 힘있고 활발한 성격으로 주변을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확인 차 서둘러 자리를 마련했다.

정도자 씨는 현재 안성과 죽산 그리고 삼죽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교실을 이끌어오고 있다. 또한 상록수라는 중창단을 만들어 안성의 각종 행사에서 활발한 공연을 해오고 있다. 거기에 보험설계사까지 하니 아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라는 말이 이분에게 해당될 게다.

“내 고향? 글쎄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 황해도 출신의 부모님이 일사후퇴 때 피난 나오다가 연평도 근처의 지도에도 없는 섬에서 날 낳았대. 그래서 이름이 도자야. 섬도(島) 자를 써서 말야.” 이렇다. 얘길 시작하자마자 웃음을 선물하는 분.

그후 부모님께서 용인에 자리를 잡아 정도자 씨는 중학교까지 용인에서 자라났다. 그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많은 여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녀도 중매로 만난 남편을 따라 안성과 인연을 맺게 되었단다.

“어떻게 노래교실을 하게 되었나요?”

“마치 운명 같은 거야. 30대 후반에 들면서 먼 훗날에 나는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에 가 있을 거라는 직감이 있었어. 노인대학교 교수쯤 돼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 후후. 애들 키우고 나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어. 몸으로 하는 일 말야. 어르신들한테 좋은 일을 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지. 13~4년 전 아는 에어로빅 강사가 보건소 강좌 중에 하나로 날 추천했어. ‘활기찬 노후 생활교실’의 강사로 시작했지. 노래 잘한다는 거 하나 갖고 기타 반주 딩딩거리면서 <울고 넘는 박달재> 같은 걸 불렀어. 어르신들에게 인기 대폭발이었지.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야.”

안성댁이 된 후 집안 일에, 아이들 키우는 것밖에 몰랐다. 그러던 중 시골에서 부녀회장을 하며 콧바람을 쐬기 시작했단다. 하루에 다섯 군데씩 노래교실을 운영하다 결국 너무 과로해서 쓰러지기도 했다. 2004년 왼발 복숭아뼈 밑에 육종이라는 악성종양이 생겼다. 암이다. 수술하고도 쉬는 기간에 지팡이를 짚고 노래교실을 찾아가 지도했다. 너무 힘들어 차에서 쉬기도 하며. 그래도 사람들이 기다리기에 안 갈 수 없었단다. 독하다. 열정이다.

“원래 노래를 잘하셨나요?”

“아버지의 목청과 엄마의 끼를 이어받았지. 5남매인데 우린 해바라기 가족이야. 매일 깔깔깔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지.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면 우리 남매들을 다 불러 노래를 시키셨어. 초등학교 5학년 때 알았어. 나 노래 잘한다는 거. 음악 시험 보는데 선생님이 발견해주셨지. 그후 교장선생님 딸 시집가는데 10명을 뽑아 축가를 불렀는데 그 속에 포함되어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를 하게 되었어. 즈을거운 곳에 서어……는.”

그때 일은 어린 정도자에게 노래에 대한 자신감과 숨겨진 끼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여러 노래대회에 나가 상도 탔다.

“소식(小食)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이왕이면 남 앞에 서는 거 예쁜 모습으로 서고 싶지. 전날 미리 옷도 골라놓곤 해. 노력 없이는 몸도 얼굴도 없어. 요즘 광고에 나오는 거 마냥 내가 예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해. 예쁘다기보다는 예뻐 보인다고 할까? 남들이 예쁘게 봐주는 거지.”

그러고 보니 정도자 씨는 벌써 손자가 있는 할머니다. 믿겨지지 않는다. 마흔 중반 정도 외모로밖에 안 보이는 데 말이다. 여기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숨어 있다.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기를 쓰고 학원을 다녀 레크리에이션 자격증을 따고, 각종 유명한 문화센터나 노래교실은 다 참여해보며 경험을 쌓고 안성연예협회에 가입해 정보도 얻고, 볼링과 꽃꽂이도 하고 요즘은 남도민요에까지 흠뻑 빠져 있다.

“항상 난 부족하다고 느껴. 그래서 공부를 안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완벽이란 없어. 안일하게 있으면 퇴보하고 발전이 없지.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해놔야 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야. ‘나이는 못 속여’란 말을 난 가장 듣기 싫어해. 내 목소리가 고장 안 나고 건강이 따라주는 한, 나를 찾는 이가 있으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갈 거야.”

안성에서 해마다 실버가요제가 열리는데 정도자 씨가 지도한 분이 나가서 몇 년째 연거푸 대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보람을 느낀단다.

정도자 씨와 다른 여성 두 분으로 이루어진 ‘상록수’는 결성한 지 1년 정도 된 노래모임이다. 역사는 짧아도 워낙 각자 쌓아온 실력과 명성이 있다보니 벌써 여러 행사에 초대되어 공연을 했다. 그녀에겐 언젠가 콘서트를 하고 싶은 작은 소망도 있다. 여태까지 쌓아온 것을 함께 나누면서 즐거운 자리를 마련했으면 한단다. 그의 열정은 반드시 해낼 거라 믿는다. 

죽산은 2005년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작년부터 삼죽 노래교실도 나가고 있다. 죽산에 있는 노인요양시설 연꽃마을에서도 노래봉사 요청이 들어왔다. 혼자 하기보다 여럿이 하면 기쁨이 두 배이기에 죽산 노래교실에서 맡아 두 달에 한 번씩 가고 있다. 정도자 씨는 직접 가지 못하지만 공연에서 들려줄 노래를 선곡하며 지도를 통해 봉사하고 있다.

“노래 잘하는 비결 좀 가르쳐주세요.”

“그런 말 참 많이 듣는데, 그냥 ‘들을 수 있는 귀와 말할 수 있는 입’만 있으면 노래를 할 수 있어. 노력을 많이 해야지. 많이 듣고 많이 불러보는 수밖에. 원래 트롯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트롯 시디(CD)를 차에 놓고 다니며 자주 듣고 어르신들께 가르치며 함께 노래부르다 보니 잘하게 되었어. 노래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이왕이면 지도를 받으면 훨씬 좋아지지. 또 악기를 배우면 음감도 살아나. 기타를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놓고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치곤 해.” 

노래를 할 때는 노래 속으로 푹 빠져야 한다. 얼마 전 김광석의 <어느 늙은 노부부의 이야기>란 노래를 불렀더니 어르신들이 다 울더란다. 노래 가사가 그렇겠지만 정도자 씨의 감성이 푹 배어나는 노래를 듣다보면 눈물 훔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마찬가지로 신나는 노래를 부를 때는 절로 ‘앗싸~’가 나와야 한다. 이렇게 부르는 노래에 따라 자신의 감성을 실을 수 있는 것이 노래의 매력 아닌가.

▶그녀는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 어디라도 자신을 부르는 곳에서 활동을 펼치겠다고.       © 안성신문
“정도자에게 노래란 어떤 의미인가요?”

“내 인생이 팥소 없는 찐빵과 같았을 거야. 세상에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노래를 하니까 즐겁게 사는 거야. 노래를 남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내 인생에선 최대의 행복이지.”

얼마 전 딸한테 엄마가 정말 노래를 잘한다고 인정을 받았단다. 심수봉의 <여자이니까>를 부르는데 누가 부르냐에 따라 노래가 다르다 한다. 똑같은 배추로 담가도 손맛에 따라 김장 맛이 다르듯 말이다.

너무 바쁘게 살아온 그녀에게 좀 쉬엄쉬엄 살아보라는 하늘의 권고였을까? 두 번의 병원생활을 겪으며 일 욕심이 대단한 그녀에게 약간의 변화가 찾아왔다. 삶의 여유를 찾는 여행을 하고 싶단다. 고장의 특산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하고 싶고, 지역축제에 구경도 가고, 멋진 뮤지컬도 보고 말이다. 바쁘게 일한 당신, 떠나라 했던가.

그녀가 끝으로 한 가지 당부를 한다.

“절대로 슬픈 노래를 애창곡으로 갖지 마라. 인생이 꼬인다. 간다간다 하면 진짜 가버린다. 이왕이면 활기차고 행복한 노래를 애창곡으로 불러라!”

신승희 시민기자

 
2008/10/02 [18:18]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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