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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안성사람들-안성신문

원곡면 수암정사 진공 스님

by 늘품산벗 2008. 7. 21.
자장면 시키신 분~ 사랑을 배달합니다
원곡면 수암정사 진공 스님
신승희 시민기자

 
매주 일요일 새벽 6시면 원곡면 칠곡리 수암정사에서는 지글지글 볶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자장 냄새가

풍겨나온다. 투박한 손을 가진 다섯 명의 사내들끼리 모여 자장면을 만든다고 부산하다. 벌써 8년째다.

이젠 눈빛만 보아도 척척 알아챌 정도로 손발이 잘 맞아떨어진다. 아니 어쩌면 서로 쳐다볼 필요도 없다.

 각자 알아서 할 일을 한다. 그러다 보면 커다란 통 안에는 어느새 200여 명이 맛나게 먹을 구수한 자장

소스가 담겨져 있다. 이 맛있는 자장면은 안성, 평택, 이천의 어느 곳에서 사랑에 허기진 사람들의 배를

조금은 채워줄 것이다. 따뜻하고 맛나게.
 
수암정사는 원곡면 칠곡리 금노부락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여느 사찰과는 너무 다르다. 이제부터 절에

 들어가는 것이니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라고 알려주는 일주문도 없고, 죄 없는 중생들도 잔뜩 주눅들게

 만드는 사천왕상도 없이 마치 시골 오래된 주택마냥 그냥 슬래브지붕의 건물 두 채가 다다. 스님이 계시는

 건물 안에 들어가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서 이제서야 절집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 옆으로 있는 작은

 방에서 스님을 뵈었다.
 

▶     © 안성신문

진공스님은 지금으로부터 이른셋 해 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셨다. 여덟 남매를 두었지만 자식들을 모두 어린나이에 앞세워야만 했던 가슴 아픈 부모님의 '막내만은 어떻게든 명을 길게 해보자'는 뜻에 따라 일곱 살에 부처님께 맡겨져 열아홉 살까지 절밥을 먹으며 성장하게 되었다. 그후 1957년, 그것도 최전방으로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때가 6·25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잖아. 힘들었지. 집에 가는 것도 힘들고 먹을 것도 없었을 때라 일요일에 교회 가는 사람들이 사탕이나 먹는 거 받아오는 게 무척 부러웠어. 그래서 칠팔 년 정도 천주교 종교생활도 했지. 마테오라는 세례명도 있었으니깐."
 
그런데 왜 스님이 되었나요?
"군에 있을 때 36개월 동안 태권도를 5단까지 땄어. 운동신경이 남달랐지. 그런데 그걸 가지고 사회에 나가 건달생활을 하며 방황을 했어. 당시 조폭 깡패는 노름이나 도박을 통해 선량한 농민이나 착한 사람들의 돈을 빼앗았지. 나쁜 짓을 많이 했어. 그러다가 대천역에서 어느 노인이 얼어죽은 것을 보고 '이렇게 계속 살다간 나도 저런 노인같이 아무 가치 없이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 길로 속세를 떠나 산중으로 들어갔어. 나를 열아홉 살까지 키워주신 전라남도 해남의 대흥사 주지로 계시던 은사스님을 찾아갔지. 그후로 스님 따라다니며 공부를 했어. 부처님의 길을 찾기 시작한 거야."
 
부처님의 길을 찾는데 왜 봉사의 길을 택하셨나요? 다른 수행방법들도 많았을 텐데.
"속세에 있을 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어. 1973년 대천에서 시작을 했어. 포교원을 내서 노인들을 공양하기 시작했지. 그땐 거지나 굶어죽는 사람과 고아들이 많았어. 그런데 노인들을 공양하며 포교원까지 운영하기가 어려웠지. 시장을 돌며 목탁을 두드리는 탁발을 통해 노인들을 봉양했어. 또 초상집에 가서 뒷일 봐주고 염불해주고, 궂은일하며. 잔칫집에 가서 봉사하고 남은 음식 얻어다 사람들을 보살폈지.

 그땐 다들 어려웠지만 마음이 풍족해서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어."

이후로도 진공 스님은 서울에서 불우자보호협회라는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어 집 나온 사람들을 밥 먹여주고

목욕시켜서 집 찾아주기도 하고 부산으로 옮겨 계속 봉사를 이어나갔다. 스님이 교육시키고 사회인으로

만들어 진출시킨 아이들이 19명이나 된다. 지금도 대학생 둘에 고등학생 한 명, 중학생 한 명. 네 명의

아이들이 스님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 이밖에도 열 명의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매월 생활비를 보태주고

있다.

1995년 3월부터 진공 스님은 매주 월요일 평택역에서 노숙자나 불우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안성에서 하려고 했었는데 할 데가 없어. 무슨 공원인가에서 하려고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평택역에서 하고 있지. 예전엔 천안이나 성환, 오산에서 오는 사람들까지 많았어. 한 250에서 300명

가량 되었지. 현재는 150명에서 200명 정도 오고 있어."
 
스님의 한 달 일정은 꽉 짜여져 있다. 매주 일요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장면 봉사를 가는데 첫째 주는

 중증지체장애인이 있는 양성의 혜성원, 둘째 주는 그때그때 다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장면 봉사를

하기 위해 바꿔 가는 날이다. 셋째 주는 이천의 승가복지타운 그리고 넷째 주는 죽산의 연꽃마을에 간다.

 그리고 또 매주 월요일은 평택역으로 무료급식을 하러 나가신다. 음식봉사는 나가는 날 하루만 바쁜 게

아니다. 며칠 전부터 시장을 봐서 재료를 사다 날라야 하고 또 다듬고 요리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스님은

 직접 하신다.

매주 일요일 나가는 자장면 봉사에는 8년째 네 분이 수고하고 계신다. 여주에서 운수업을 하고 계시는

 정강효, 서울의 대학에서 일하고 계시는 오수인, 용인에서 건축업을 하고 계시는 박덕근, 평택에서

택배회사에서 일하시는 강병성 씨. 사는 곳도 나이도 하는 일도 제각각인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은 스님의

 뜻을 따르고 수암정사의 신도들이라는 것. 그것 하나로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새벽을 가르며 이곳

수암정사로 모여든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수암정사에 도착하면 새벽 6시. 그때부터 야채를 볶고

춘장을 튀기며 자장소스를 만드는 것이다. 만든 자장소스를 가지고 그날의 정해진 시설로 간다. 그곳에서

 다시 면을 삶고 배식을 하고 뒤치다꺼리까지 다하고 나서야 늦은 점심을 먹는다.

"우린 봉사를 안하면 몸이 아파요. 쉰다고 집에 있으면 몸이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어. 몇 년째 주말마다

 하다보니 일도 몸에 배서 괜찮아. 힘들지 않아."

죽산의 연꽃마을에서 만난 정강효 씨는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기자는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기에도 땀이

 줄줄 흘러나오는 더운 날씨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앞치마와 조리복까지 챙겨있고 면 삶는다고 불 앞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안성신문


일은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준다 치고 그럼 재료는 어떻게 삽니까? 돈은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한 달에 400만 원에서 450만 원 정도 필요한데 부처님께 기도하면 제사나 49제 천도제 등을 통해 봉사하는

데 쓸 수 있게끔 들어와. 부처님이 도와주시지. 절대 그렇게 믿고 있지. 건강도 돈도 부처님의 뜻이야.

100살까지 충분히 봉사할 듯싶어."

달달이 하는 것도 성에 안 차시는지 계절별로 해마다 굵직한 행사를 벌리신다. 가을엔 원곡 노인을 위한

경로잔치를 연다. 연예인까지 초청하여 농협2층에서 여는데 인근 평택, 용인 등지에서 많이 온단다.

또 봄에는 안성시 경로잔치를 시민회관이나 안성여중 체육관에서 하는데 올핸 못했다고 한다. 보조나

도움 없이 스님이 혼자 하려니 항상 여유가 없고 부족하다. 자금도 그렇지만 자원봉사자도 많이 줄었다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비를 트럭에 싣고 가는데 봉사자들이 없어 어느 땐 일당을 주고 시켜야 하는

때도 있었다 한다. 거기에 요즘 물가도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어 더더욱 어려움이 크다. 결국 한 달에

한 번씩 자장면 맛을 보던 분들에게 두 달에 한 번씩 가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돈 얘기가 나오니 스님이 하시고 싶은 말이 많으시다. 세상의 문제가 돈으로 인해 비롯되는 것이 많지

않은가!

"누구나 아무것도 없이 알몸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돈을 갖고 나오는 게 아니다. 돈을 벌든 받든 불어나든

 어떻게 써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돈 있는 사람이 더 남을 위해 안 쓴다. 주변 사람들 중에도 나를 보며

'스님은 자기나 잘하지 절이나 크게 짓지' 하며 한심해 한다. 돈이 있으면 뭐하나? 어차피 갈 때 알몸뚱이로

 간다. 갖고 베풀지 않으면 업을 짓는 거다. 죄를 짓는 것이다. 돈이 없어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경제가 발전해도 그건 있는 사람들 얘기다. 있는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없는 사람은 고생한다. 배로 땅을

밀고 다니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 얼마나 불쌍한가? 천 원이라도 주면 복을 짓는 건데 오히려 지나치고

 피하고. 중생들이 자기 업을 모르고 심하게 죄를 짓고 있다. 내 꺼는 중요하고 남의 것은 우습게 알고

그게 나쁜 것이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 남의 어려움에 힘이 돼줄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하나님이건 부처님이건 악을 행하면 악을, 선을 행하면 선을 받는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금방이다.

 고통받고 살지 말자. 내 마음과 자신을 믿고 닦은 후에 가고 싶은 종교로 가면 된다. 하나님이건 부처님이건

그 후다. 이래야 일평생 살아가는 데 큰 재앙이 없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너무 험한 일, 재앙이 많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
 

▶     © 안성신문


요즘 칠곡리는 시끄럽다. 경기도와 안성시가 미국 프롤로지스사와 투자협약을 맺은 데 이어  삼성테스코사와

투자협약을 맺고 원곡면 칠곡리 90만㎡에 물류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예정지에는 칠곡리에서 600여 년

동안 이어온 삶의 터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농경지는 물론이고 주거지 그리고 조상의 묘가 있는

 종산까지. 수암정사도 예외가 아니다. 물류단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되나요?

"나갈 데가 없어 걱정이다. 봉사를 계속 이어서 해야 하는데, 복지법인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금 마련을

 위해 화장실 정화조 사업으로 수암환경이라고 이름까지 져놨는데… 위쪽 터 닦은 곳은 납골탑을 준비중이

었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을 위한 납골탑이다. 이제 일이 년 있으면 나가야 한다니. 이건 미국 회사에게

땅을 팔아먹는 거다. 안성시가 돈 벌어먹어라 하고 주는 것이다. 도로나 그런 기반시설을 짓는 것도 아니고,

 피해가 많다."
 
너무 착하게 살아오신 탓일까? 남에게 퍼줄 줄만 아셨지 자기 것은 챙길 줄 모르는 진공 스님은 이미 물류

단지가 들어설 것이라 여기며 포기하고 나가실 걱정을 하고 계셨다. 부처님의 힘으로 진공 스님이 계시는

 수암정사가 든든히 버티고 있길 바랄 뿐이다.

신승희 시민기자
 

 
2008/07/15 [19:45]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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