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자연이 건네는 화사한 위로, 단풍나무

by 늘품산벗 2021. 7. 29.
  • 입력 2019.11.12 09:57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가을이 되었고, 곧 겨울이 올까 봐 조바심이 든다. 겨울은 곧 한해의 끝을 상징하기에 “이렇게 또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는 건가?” 이런 조바심 말이다. 이럴 때 잠깐 한숨 쉬어가라며 집 밖으로 부른다. 산과 들이 알록달록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단풍나무가 손을 흔들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나무들은 대부분 봄에 새로 잎을 키워내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가을이 되어 잎을 떨구는 과정을 매년 되풀이한다. 물론 그 주기가 달라 항상 초록잎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도 있지만 그들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아무튼 모든 나무는 그렇게 살아간다. 봄에 나무가 키워낸 잎이 여름에 최선을 다해 나무를 키운다. 그 일이 끝날 때쯤 나뭇잎은 힘 빼기를 하듯 초록색을 거둬들인다. 초록색이 없어진 잎은 그제야 본래 가지고 있던 색이 드러난다. 

어린아이가 자라 열심히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며 세상을 향해 뜻을 펼치고, 관계를 맺고,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 그리곤 나이가 들어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지고 짐을 내려놓듯이 편안해지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석이 무엇이었던가 자신의 색깔이 무엇이었던가 찾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저마다의 색깔로 자신을 물들이게 된다. 마치 나무처럼. 아 자연의 섭리가 그런 것이었나? 나는 나중에 어떤 색으로 물들고 떨어지게 될까 생각하게 만든다. 가을은. 

 

가을이 돼 나뭇잎들이 초록이 아닌 색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단풍이 든다’라고 한다. 어떤 나무는 빨간색으로, 또 어떤 나무는 노란색으로, 그리고 빨강과 노랑을 섞어서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오게 한다. 알록달록도 있고, 주황도, 번짐도 있다. 갈색계통으로 물드는 나무들도 있다.
 

 

갈색도 연한 갈색부터 진한 갈색, 밤색, 그리고 회색과 검정이 섞인 갈색으로까지 변한다. 이렇게 다양한 색을 가을은 품고 있다. 이런 세계를 보여주는 산과 들에 살다 보니 우리의 말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발갛다. 빨갛다, 붉다, 새빨갛다, 벌겋다. 시뻘겋다. 검빨갛다, 붉으스레하다, 붉으스름하다. 단풍나무도 빨갛게만 물드는 것이 아니다. 노랗게 물든 나무도 볼 수 있고 빨강과 노랑의 중간색인 주황색도 볼 수 있다. 또한 빨강도 농담에 따라 여러 가지 색으로 보인다. 예쁜 색의 단풍잎을 보기 위해선 날씨와 환경이 중요하다. 가을이 되어 아침 저녁으로 찬 기온이 생기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클수록, 맑은 날이 많아 햇빛이 많이 비칠수록, 가끔 비도 와서 땅이 촉촉할수록 단풍이 예쁘게 든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단풍나무과 나무로는 복자기나무, 신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따위가 있다. 모두 약간씩 다른 모양의 잎을 가졌지만, 단풍나무 가족이라는 공통점으로 가을에 비슷한 색으로 노랑에서 빨강의 범위 안에서 단풍이 든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열매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모두 휘어진 타원 모양으로 무게중심을 잡는 씨앗 부분과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날개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떨어지면 빙글빙글 돌며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단풍나무는 촉촉한 땅을 좋아하는 나무이다. 그래서 주로 계곡 주변에서 많이 자란다. 싹이 발아할 때도 씨앗이 물에 촉촉하게 젖어있어야 발아가 잘되고 자라면서도 수분이 많은 땅에서 잘 자란다. 그러나 외국에서 들어온 나무들이 많이 퍼지면서 변종이 많이 생겨 약간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게 돼 지금은 숲에서뿐만 아니라 공원이나 조경용으로 많이 퍼지게 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됐다.

예전에 아이가 다니는 학교 급식실 앞에 공사하며 단풍나무의 가지를 부러뜨린 일이 있었다. 부러진 가지에서 수액이 흘러내렸고 아이들과 호기심으로 봉지를 매달아 묶어놓았다. 그런데 일주일가량 지나자 그 봉지 안에는 제법 많은 양의 수액이 모였고, 아이들과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달콤한 단맛에 환호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다. “나무에서 설탕 맛이 나다니” 하며 말이다. 이렇듯 단풍나무 수액은 달달한 단맛을 가진다. 봄에 많이 받는 고로쇠나무 수액도 그렇다. 캐나다에서는 단풍나무 수액을 조려 시럽과 사탕을 만든다. 유명한 메이플시럽이 바로 그것이다.  

무늬가 아름답고 단단해 가구를 만들거나 체육관이나 볼링장의 나무 바닥, 운동기구인 테니스 라켓과 야구 배트를 만들기도, 악기를 만들기도 한다. 첼로를 만들 때 앞판은 가문비나무로, 뒤판은 단풍나무로 만드는데, 단풍나무가 그리 빨리 자라고 두꺼워지는 나무도 아닌데 첼로라는 악기를 보면 얼마나 오래 자란 나무로 만들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그토록 깊고 웅장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무로 만드는 악기나 가구엔 세월의 역사와 힘이 들어가 있다. 함부로 쉽게 부시고 버릴 게 아니다. 시간이 금이라고 했던가. 그 금으로 키워내는 나무다. 

가을 숲을 찾는 것은 단풍나무를 보기 위해서라고 얘기해도 절대 과하지 않다. 예부터 고된 일과 속에서 잠깐 짬을 내어 봄에는 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간다고 했다. 그만큼 숲에서 만나는 단풍나무는 너무나 반갑고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따듯하게 하며 설레게 한다. 빨간 단풍나무는 빨간 게 예뻐서, 노란 단풍나무는 노란 게 신기해서 그 앞에 서게 하고 사진에 담게 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