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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눈으로 보고 향기 맡으니 마음이 풍요로운 ‘탱자나무’

by 늘품산벗 2021. 7. 28.
  •  입력 2019.10.30 16:58

 

 

필자의 고향으로 가는 길에 한 육개장집이 있다. 그 집 육개장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맛이 어떤지 기억보다 그 집 마당에 자라고 있던 탱자나무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요즘 같은 가을날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주렁주렁 달려있던 노란 탱자를 잊지 못한다. 
‘꼭 먹어봐야 맛인가! 눈으로 보고 향기로 맡으니 마음이 풍요로운 맛이로다!’

마음에 새긴 탱자의 맛은 그렇게 남아있다. 탱자는 생긴 건 꼭 작은 귤과 같은데 유자와 같은 노란색을 가졌다. 귤과 유자는 모두 겨울이면 사람들에게 과일로 사랑받는다. 그러나 탱자는 신맛이 강하고 단맛이 거의 없어서 생과일로는 먹기 힘들다. 대신 약으로 쓰인다. 유자나 귤 농사를 지을 때 접붙이는 밑나무로도 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귤이라도 중국의 강인 회수를 경계로 양쪽에서 자라는 모양이 다르다는 뜻이다. 즉 사는 곳에 따라 성품이 달라진다고 하는 의미인데 귤이 탱자보다 낫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맛난 열매인 귤에 비해 탱자가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탱자는 열매보다 가지의 가시로 쓰임새를 뽐낸다. 

옛날에 탱자나무는 울타리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탱자나무에 난 가시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해 보인다. 산초나무, 아까시나무, 장미, 조각자나무, 주엽나무, 시무나무 등 여러 나무가 가시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생존을 위한 자기 보호의 방편이다. 탱자나무는 줄기와 가시가 촘촘하게 서로 얽혀 자랄 수 있어 큰 틈이 생기면 안 되는 울타리로 제격인 셈이다. 

이 가시울타리는 집을 지키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공적인 의미로도 쓰였다. 옛날 죄인에게 벌을 주는 방법 중 하나가 집에 가두는 것이었는데, 이때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에 못 나가게 했다. 한두 해도 아니고 탱자나무의 가시가 자랄 때마다 점점 조여드는 느낌에 무서웠을 것이다. 또한 성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어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이나 강화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강화도에는 고려시대 때 침입하는 몽고군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그 주변에 탱자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그때 심었던 탱자나무가 아직도 살아남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나무 줄기가 곧게 자라지도 쉬이 굵어지지 않으니 목재로서는 별 쓸모가 없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 악기들의 좋은 재료로 쓰였으니 누구나 세상에 쓰임이 있다는 진실은 다시 한번 입증된다. 사물놀이 악기 중 북과 꽹과리의 채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꽹과리채의 끝부분 동그란 나무를 뽕이라 부르는데 이를 만든다. 일반 나무는 치다 보면 나뭇결을 따라 틱틱 떨어져 나가는데 탱자나무 뽕은 단단하면서도 질겨서 수명이 길고 칠 때의 타격감도 좋다. 또한 소리꾼과 함께하는 북 치는 고수들도 탱자나무로 만든 북채를 최고로 친다. 

아는 지인이 맑은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올갱이(다슬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먹고 자랐다고 한다. 올갱이를 깔 때 꼭 필요했던 것이 바로 탱자나무 가시였다. 길고 뾰족한 가시로 삶은 올갱이 살을 꼭 집어 돌돌 돌리며 빼내는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또 겨울엔 탱자나무 줄기로 작은 윷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어느 해던가 향이 좋은 탱자를 거실에 두고 향이 퍼지게 놓아둔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니 까맣게 변하며 썩는 듯해 할 수 없이 마당에 휙 던져버렸는데 발아율이 95%로 매우 높다더니 글쎄 이듬해 거기서 싹이 난 것이다. 씨앗이 열 개가량 있어서 열 그루가량 묘목들이 서로 옹기종기 모여 자라게 됐다. 지금은 마당 끝으로 옮겨 울타리로 자라고 있는데 얼마나 커야 노란 탱자가 달릴 지 기다림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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