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10.16 14:23
용인중앙시장은 장날이라는 우리의 전통이 남아있는 용인의 몇 안 되는 전통시장 중 하나인데, 그 장을 구경하러 간 어느 봄날, 한쪽 구석에서 낯선 나물을 앞에 펼쳐놓고 팔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 나물은 필자가 알고 있는 식물의 여린 순이었는데 시장에서 파는 건 처음 보았다.
“할머니 이것도 먹어요?”
“그럼 얼마나 맛있는데”
“이거 다 얼마에요?”
“오천원”
“저 다 주세요”
한바구니 가득이 오천 원밖에 안 되다니, 그저 다 팔아드리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저 나물을 싸게 산 것 같아 횡재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는 것과 할머니께 더 드리지 못한 미안함에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시 때문이었다. 가시가 사나운 덩굴나무의 새순을 뜯기 위해 얼마나 힘드셨을까? 가시만 없었더라면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의 기억은 필자 마음에 오랫동안 가시로 박혀 있다.
이름부터 날카로운 청가시덩굴을 나물로 알게 된 사연이다. 나물로 알기 전 ‘청가시덩굴’은 그저 숲에서 흔한 가시나무로, 찔리면 아프니 걸어 다니며 조심해야 하는 덩굴나무 정도로 여겼다. 그 할머니 덕분에 이젠 손에 꼽힐 만큼 좋아하는 나물이 됐다. 나물 본연의 맛을 즐기길 좋아하는 필자는 센 양념을 하지 않는다. 아주 여린 나물이니 정말 살짝 데친 다음 들기름과 마늘, 소금, 깨를 조금 넣어 삼삼하게 무치면 끝. 달달하고 고소하면서 야들야들 씹히는,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싱그러운 봄맛이다.
청가시덩굴은 이름이 모습을 설명해준다. 사계절 줄기가 초록색을 띠며 날카로운 가시가 많이 나 있고, 덩굴로 다른 식물들을 감으며 길이 5m 정도로 뻗어 나간다. 지역에 따라 청가시나무, 종가시나무라고도 부른다. 청가시덩굴 중에서 가시가 없는 것도 있는데, 이를 민청가시덩굴이라고 부른다.
숲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양지와 음지에서 모두 잘 자란다. 처음 싹이 올라올 때에는 선밀나물과 비슷한데 청가시덩굴은 가시가 있어 금방 구분된다. 또 자라면서 청미래덩굴과도 많이 비교된다. 둘 다 가시와 덩굴손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청미래덩굴’ 잎은 두껍고 반짝이며 둥근 모양이지만, 청가시덩굴 잎은 길쭉하고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굽어지며 잎 끝이 뾰족하다. 그리고 청미래덩굴의 열매가 사과처럼 붉게 익는 반면, 청가시덩굴 열매는 검은색으로 익는다. 또한 청가시덩굴은 어린 잎을 나물로 먹고, 청미래덩굴의 큰 잎은 망개떡을 만들어 먹는다. 필자가 먹어본 바로는 청미래덩굴의 어린 잎은 쓰고 질겨서 나물로 적당하지 않다.
곤충 중에서도 청가시덩굴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바로 ‘청띠신선나비’ 애벌레다. 네발나비과의 청띠신선나비는 검은 날개에 하늘을 닮은 띠를 두르고 있는 아주 멋진 모습의 나비로 흔하게 볼 수는 없기에 어쩌다 보게 되면 아주 반갑다. 청띠신선나비의 애벌레는 밀나물·청가시덩굴·청미래덩굴 잎을 먹는다. 아주 희귀하지만 곤충에나 생기는 줄 알았던 동충하초가 청가시덩굴 열매에서도 생긴다. 그래서 청가시동충하초라 부르는데 마치 열매에서 뿌리가 나와 뻗은 것마냥 버섯이 자란다고 한다. 신기하다. 청가시덩굴 열매를 유심히 봐야 할 이유가 많다.
가을이 익어감에 따라 나무의 열매들도 익어가고 있다. 이름대로 사는 청가시나무도 동그란 작은 열매들이 검은색으로 익어가며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이름에 충실하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쉽게 얘기하지 않는가. 이름을 걸고. 이름에 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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