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9.30 18:09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얄라셩 얄라리 얄라…”
딱 작년 이맘 때 이 청산별곡을 부르며 머루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전했었다. 작은 포도처럼 생긴 머루 이야기를 하며 마당에 심은 머루나무에 대해 알렸는데, 그 머루나무가 올해에는 더 무성하게 잘 자라 머루 풍년을 맞이하게 됐다. 씨가 단단하지 않아 그냥 껍질과 씨까지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는 식감과 머루의 진한 새콤달콤한 맛이 어울려 괜찮았다. 정말 자연을 품은 맛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웃이 먹어보라며 건넨 열매에 그 감동은 배가 됐다. 다래였다. 청산별곡처럼 머루랑 다래랑 먹을 수 있게 된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다래는 다래나무에 열리는 대추만한 크기의 초록 열매이다. 대부분의 열매가 초록색으로 달렸다가 노랗게 또는 빨갛게 변하는 것과 다르게 다래는 다 익어도 초록색이다. 열매가 달아서 다래라는 이름이 생겼다. 다래 맛은 우리가 알고 있는 키위와 비슷한데 잘 익은 다래는 키위보다 더 달다. 그러나 완전히 숙성되기 전에 먹으면 새콤한 맛이 강하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숙성한 뒤 먹어야 단맛이 강해지는 후숙과일인 셈이다.
며칠 전 유치원 아이들과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계곡을 찾아갔다. 계곡을 에워싼 나무들 중에 껍질이 너덜너덜 많이 벗겨지고 줄기 모양이 둥글둥글 휘며 다른 나무를 감싸 잡고 하늘을 향해 높이 자란 다래나무를 보게 됐다. 덩굴나무이면서 껍질이 많이 벗겨지는 특성은 숲에서 다래나무를 쉽게 찾아내는 방법이다.
운이 좋게도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나무가 커서 손이 닿는 열매는 없었지만 떨어진 열매도 아직 상태가 좋아 아이들과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다래를 먹어본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열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잘린 면에서 익숙한 키위 모양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털이 부숭부숭한 키위와 달리 다래는 겉면이 대추처럼 매끈하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색깔도 씨앗이 담겨있는 모양도 키위와 똑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키위는 20세기 초 뉴질랜드가 중국에서 다래를 가져다가 개량한 것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일이 됐다.
봄에 덩굴줄기에서 돋아나는 다래나무 새순은 고급 산나물로 여겨진다. 다른 잎나물처럼 데쳐서 양념해 무쳐 먹는다. 아삭한 식감과 향이 아주 좋다. 다래나무 꽃은 봄에 피는데 꽃잎이 흰색이다. 암수가 따로 자라는 나무로 암꽃만 피는 암나무, 수꽃만 피는 수나무로 나뉜다. 암꽃은 검은색 꽃밥을 가진 수술 가운데 마치 말미잘처럼 생긴 암술이 밖으로 솟아있고 수꽃은 수술만 가득하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래나무 종류로는 다래나무, 쥐다래나무, 개다래나무 등이 있는데 열매와 꽃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그 중 개다래나무는 꽃이 필 무렵 주변 잎들이 흰색으로 변하는 마법같은 생존법을 갖고 있는데, 이는 꽃이 더 많게 보여 쉽게 벌과 나비를 유인하려는 술책이다.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잎은 다시 초록색으로 돌아간다. 영리하다. 또한 개다래는 수술의 꽃밥이 노란색이라 다래 꽃과 구분이 된다.
다래 줄기는 매우 가볍기 때문에 지팡이 원료로도 사용됐다. 다래 친구 머루의 줄기도 마찬가지 이유로 지팡이로 사용됐다고 하니 머루와 다래는 짝꿍임에 틀림 없다. 다래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요통이 없어진다는 말까지 있으니 엄청 인기가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다른 나무를 감으면서 생기는 U자나 O자 부분을 잘라 손잡이를 만들거나 눈에 빠지지 않도록 신는 설피를 만들기도 했다. 이 외에 껍질이 질겨 노끈으로도 사용돼 여러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식물 이름에서 ‘참’이란 글자는 그 부류 중에서 ‘진짜’, ‘으뜸’, ‘대표적인’ 이라는 뜻을 갖는다. 참나리, 참나무, 참죽나무, 참회나무 따위가 있다. 참깨로 만든 참기름도 있을 정도니 ‘참’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수준을 가리키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래는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래나무는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훌륭한 간식이 되어줬다. 그런데 외국에서 온 키위라는 과일이 다래와 닮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키위에게 참다래라는 말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토종 다래나무 위치가 어색해졌다. 더 관심을 갖고 알아봐 주는 것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 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으로 보고 향기 맡으니 마음이 풍요로운 ‘탱자나무’ (0) | 2021.07.28 |
---|---|
이름대로 사는 ‘청가시덩굴’ (0) | 2021.07.28 |
약재로 활용하는 '두충나무' (0) | 2021.07.27 |
호랑나비 품은 ‘산초나무’ (0) | 2021.07.27 |
큰 느티나무도 이 작은 열매에서 시작됐다 (0) | 2021.07.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