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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살랑살랑 부채춤 추는 '자귀나무'

by 늘품산벗 2021. 7. 15.
  •  입력 2017.07.11 09:35

 

 

꽃이 예사롭지 않다. SF영화나 판타지영화에 나올 법하게, 아님 열대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꽃처럼 낯설다. 가느다란 실이 길게 뻗어 여러 개가 모여 부채살 모양을 이룬다. 색도 예쁘게 분홍색과 흰색으로 요즘말로 ‘러블리 러블리’ 하다. 나무 위에 요정들이 부채를 흔들며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여름이 되자 이 꽃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늘하늘한 꽃의 이미지하고는 다르게 ‘자귀나무’란 이름을 가졌다. 더구나 여기서 자귀란 나무를 깎아 다듬을 때 사용하는 목공 도구의 하나로, 그것의 자루를 만들 때 사용했다는 이유로 자귀나무라고 불린다. 콩과식물이지만 열매를 콩이라고 먹지 않으며, 예쁜 꽃이지만 음식으로 먹을 수 없고 그렇다고 잎을 나물로 즐겨 먹지도 않는다. 그저 소용 있는 것이라고는 공구나 도구들의 자루를 만들 때 밖에 없으니 당연히 그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귀나무 꽃은 매우 매혹적이게 생겼다. 공작새의 활짝 핀 꽁지깃처럼 생겼다는 얘기도 있고, 밝게 빛나는 광섬유 조명과 닮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필자는 부채춤을 출 때 펼치는 부채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를 위해 뙤약볕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연습하던 부채춤이 깊게 각인된 세대라서 그런가.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더 독특하다. 길게 뻗은 가느다란 것은 꽃의 수술이다. 그래서 끝에는 꽃가루가 묻어있는 뭉툭한 부분이 있다. 꽃잎은 없고 오로지 수술만 길게 뻗으며 아래는 꽃받침에 싸여있다. 이 수많은 수술은 윗부분이 분홍색이고 아랫부분은 흰색이어서 더욱 신비감을 준다. 꽃 한송이에 하나밖에 없는 암술은 수술보다 약간 긴데 유심히 보지 않으면 수술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자귀나무의 잎은 아까시나무처럼 여러 개의 작은 잎이 양쪽으로 늘어서 마주나기하고 이들이 다시 줄기에 달려 하나의 큰 잎을 이루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를 ‘복엽’이라 한다. 복엽을 가진 나무들 대부분은 양쪽에 작은 잎들이 늘어서고 가운데 끝에 하나의 잎이 더 있어 크게 보면 길고 뾰족한 모양을 갖는다. 그러나 자귀나무는 작은 잎 개수가 짝수여서 끝에 하나의 잎이 외롭게 홀로 남지 않게 한다. 부부를 상징하는 속성이 두드러진다.

 

자귀나무가 속해있는 콩과식물의 특징 중 하나인 빛과 온도 차이로 인한 수면운동으로 밤이 되면 낮 동안 양쪽으로 벌어져있던 잎들이 서로 가까이 다가서며 합쳐진 모습이 된다. 그 모습이 낮에는 떨어져 생활하던 부부가 밤이 되어 한 방에 드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합환목, 합혼수, 야합수, 유정수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됐다. 그래서 옛날에는 신혼부부의 창가에 이 나무를 심어 부부 금슬이 좋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요즘은 당연히 신혼부부는 금슬이 좋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당시엔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집안끼리의 약속으로 시집장가를 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무를 비롯한 천지신명께 빌어야만 했던 수많은 소원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소원이 잘 이뤄지면 자귀나무가 아니라 자기나무라 불러도 될 성 싶다. 애교 있게 불러본다. 자기야!

 

나무의 아름다움을 보는 방법 중에 하나로 햇살 비치는 잎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방법이 있다. 자귀나무 잎을 아래에서 보면 빛에 투영되어 보이는 나뭇잎의 속살 무늬와 모양이 너무나 아름답고 연두 빛깔이 눈부시다. 꼭 해보길 권한다.

 

자귀나무와 비슷한 식물로 신경초라고 불리는 미모사가 있다. 미모사는 잎을 건드리면 마디가 꺾이듯이 밑으로 처지고 작은 잎이 오므라들어 시든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우리 숲에서 자귀나무를 보고 미모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슬쩍 잎을 건드려본다. 그러나 자귀나무 잎은 변하지 않는다. 밤을 기다릴 뿐이다. 또한 미모사는 고향인 브라질에서는 여러해살이풀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하는 한해살이풀이 되고 만다. 그래서 보통 화분에 심어 실내에서 키운다.

 

자귀나무를 집 주위에 심으면 가정에 불화가 없어지고 늘 화목해진다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제주도에서는 자귀나무 그늘에 누웠다가는 학질에 걸린다 해서 집안에 심지 않는 금기목이 되기도 한다. 또한 어느 지방에서는 소가 잎을 무척 좋아한다고 해 소쌀나무, 소쌀밥나무, 소찰밥나무라고도 불린다하니 참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무이다. 요즘은 굳이 숲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공원이나 정원에 많이 심어 놓아 더운 여름 분홍빛 자귀나무 꽃을 쉽게 볼 수 있다. 내 옆에서 손뼉을 마주쳐 줄 사람에게 잘 해주자. 손뼉은 한 손으로 치지 못한다. 짝수로 포개지는 자귀나무 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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