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7.05.31 10:48
초록색 잎들이 자라는 나뭇가지 위로 하얀색 꽃들이 시원스럽게 피어나고 있다. 아까시꽃, 이팝나무꽃, 찔레꽃, 말발도리꽃, 고광나무꽃 등.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이 이른 봄엔 노란색 꽃들이 주를 이루다가 봄이 한창일 때는 붉은색 꽃이 만발이었다. 여름이 시작되려 하는 요즘은 흰색 꽃이 눈에 띤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이다.
그 중에서 크기로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으니 바로 산딸나무이다. 이름도 예쁘다. 꽃이 지고 달리는 열매의 모양이 마치 딸기와 비슷해서 산에 사는 딸기라 산딸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밭에 키워 먹는 딸기와 산에 있는 가시 많은 산딸기 중에 어떤 딸기를 말하는 것일까? 열매의 크기나 모양을 보면 산딸기쪽이 더 가까운데 말이다.
산딸나무의 꽃이 요즘 피기 시작했다. 커다란 꽃잎이 나뭇잎 위로 하늘을 바라보며 꼿꼿이 서서 하얗게 덮어 버리고 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꽃잎은 꽃잎이 아니다. 잎이 변해 하얗게 꽃잎처럼 보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럼 진짜 꽃잎은 어디로 갔을까? 눈을 크게 뜨고 가운데를 살펴보면 마치 둥글고 울퉁불퉁한 도깨비방망이처럼 보이면서 20~30개의 작은 꽃들이 동그랗게 모여 예쁜 부케처럼 도드라져있다.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각자 4개의 작은 꽃잎이 벌어지고 수술이 튀어나와 있다. 예쁘지만 너무 작은 꽃으로 벌과 나비를 부르기에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잎을 크게 키우고 흰색으로 물들여 청초한 모습으로 화끈하게 피어나는 전략을 선택했다. 식물의 세계에서 이런 모습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적은 에너지로 많은 숫자의 작은 꽃을 만들어 실속을 챙기고 겉에는 대표 꽃잎 몇 개만 만들어내는 전략.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요즘 사회적경제의 대세인 협동조합이 떠올랐다. 작은 여럿이 힘을 모아 실속을 다지고 공동의 대표 상품이나 큰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협동조합의 협력과 상생의 경제활동.
꽃이 지고 달리는 산딸나무 열매는 둥근 꽃의 모습과 비슷한데 가을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맛은 어떨까? 겉에 축구공마냥 무늬가 있는 껍질이 있고 속을 갈라보면 주황색 과육이 나온다. 새콤달콤한 딸기보다 그냥 좀 밍밍하고 덜 단 감을 먹는 느낌으로 특유의 향이 있다. 그런데 새들은 이 열매를 아주 좋아한다. 특히 직박구리가 단골이다. 꽃과 열매가 보기 좋아 정원수로 많이 심다보니 공원이나 정원에서 많이 보는데 직박구리도 깊은 산 속보다 사람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많이 사는 연유로 자연스레 산딸나무 열매를 많이 먹게 된 것 같다. 이외에도 산수유나 버찌 산사도 좋아하는데 이 열매들이 공원에 많다보니 직박구리는 공원을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이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다며 성스러운 나무라고도 한다. 이는 묘하게 넉 장의 꽃잎이 십자모양으로 피기 때문에 무리하게 연결 지어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산딸나무의 분포지가 한국 중국 일본인데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이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의아하다. 또 산딸나무는 쟁기, 다듬이, 빨래방망이, 나막신, 베틀, 도마 따위의 작은 도구들을 만드는 데나 사용된 목재였으니 더욱 그렇다. 서양산딸나무라고도 불리는 미국산딸나무도 분포지가 미국이나 멕시코지역으로 한정돼 있어 이 또한 십자가와 연결 짓기는 무리가 따른다. 이야기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억측이란 생각이 짙다. 정보의 무한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경계해야 할 행동방식이 아닐까. 필자 또한 그 시대 예루살렘에 산딸나무가 살고 있었는지 모르기에 그냥 합리적 의심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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