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7.06.13 09:17
청미래덩굴. 나무이름이 참 진취적이다. 청사진, 청춘처럼 청이란 말이 앞에 들어가니 왠지 ‘푸른 미래?’ 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요즘같이 불안한 시대에 희망을 시사하는 듯한 이름을 가진 덩굴나무, 그래서 처음엔 이름 때문에 마음이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이름이었다. 우리 말 ‘미래’라는 말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열매라는 말과 닿아있다. 즉 ‘푸른 열매가 달리는 덩굴나무’인 셈이다. 지금이 딱 청미래덩굴을 알아볼 수 있는 때다. 크기만 작을 뿐 덜 익은 풋사과와 꼭 닮은 모양을 한 푸른 열매가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청미래덩굴은 본 이름보다 망개떡을 만드는 망개나무로 더 유명하다. 숲에서 사람들에게 청미래덩굴이라는 이름을 알려주면 나무이름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망개떡을 만드는 나무라고 알려주면 그제야 ‘아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투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망개떡은 찹쌀 또는 멥쌀로 반죽해 납작한 떡을 만들고, 그 안에 팥소를 넣어 여민 다음 망개잎이라 부르는 청미래덩굴 잎으로 싸서 쪄낸 떡이다. 그렇게 하면 향도 좋고 여름에도 떡이 잘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엔 전국에서 먹었으며 “찹싸알~떡, 망개애~떡” 하며 팔러 다니는 사람까지 있었는데 현재는 경상도 일부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남아있다. 망개떡으로 유명한 지역은 경상도 의령으로 그 곳에서는 망개떡을 대표 향토음식으로 소개하며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망개떡의 기원을 두고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설과 우리 고유의 떡으로 그 전부터 먹었으며 오히려 일본으로 전파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어느 한쪽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떡이 맛있다고 하니 의령에 갈 일이 있으면 한번 먹어보고 싶다.
아무튼 어디까지나 망개나무는 지역에서 부르는 별칭인 셈이고 청미래덩굴이 식물의 정식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심해야할 것은 정식 이름이 망개나무인 나무가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충청북도 속리산 근처와 경상북도 주왕산 근처에 극히 드물게 자생하고 있는 멸종 위기에 있는 나무이다.
이외에도 청미래덩굴을 부르는 이름으로 명감나무, 맹감나무, 매발톱가시나무가 있다. 명감이나 맹감은 열매를 보고 불리는 이름이고 매발톱가시나무는 줄기에 달린 갈고리 모양의 가시를 보고 지어진 이름이다. 나무라고는 하나 다른 굵은 나무들처럼 몇 십 년 몇 백 년을 살지도 못하고 고작 여러 해를 산다고만 하니 나무라고 하기에 좀 무색하다. 그렇다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성깔 있는 나무다. 나무줄기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있어 함부로 스치다간 상처 나기 십상이다.
청미래덩굴 줄기에서 잎이 달려 뻗어나간 모양을 보면 참 재미있다. 지그재그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또한 잎은 숲에서 단연 돋보인다. 잎이 두껍고 가죽처럼 매끈한데 햇빛이라는 조명발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난다. 동글동글하면서도 손바닥처럼 넓적한 잎에는 손금처럼 세로로 잎맥이 뚜렷하다. 잎자루 밑에는 덩굴손이 달려있어 다른 나무들을 잡고 일어서서 줄기를 뻗어나간다. 덩굴이라고는 하나 다른 나무를 괴롭히거나 생존경쟁에 끼어들어 치열하게 감싸 안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의지할 뿐이다.
어렸을 때 배운 별을 그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번에 그려나가는 꼭지가 다섯 개인 별과 삼각형 두 개를 거꾸로 겹치게 해 그리는 꼭지가 여섯 개인 별이 있는데, 그 중에 청미래덩굴의 꽃은 삼각형 두 개가 겹쳐진 꼭지가 여섯 개인 별 모습과 닮았다. 봄에 연두색으로 작은 꽃 여러 개가 모여 피는데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것은 수술이 여섯 개로 정확히 삼각형의 꼭짓점과 변의 중심을 찍으며 뻗어 나온다는 것이다. 작은 꽃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모양과 수학적 요소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푸른 열매는 여름동안 초록으로 익어가다가 가을이 되며 빨강으로 익는다. 사과와 똑같다. 초록일 때 먹어보면 풋사과 같은 맛이 나다가 빨강일 때는 향긋한 향기와 살짝 단맛도 느껴진다. 그러나 시기를 놓쳐 푹 익은 열매를 먹게 되면 푸석푸석하고 맛없다. 점차 속도 비어간다. 누구의 말처럼 타이밍이 중요하다. 맛도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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