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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생태칼럼-용인시민신문

고향 벚나무와 느티나무의 추억

by 늘품산벗 2021. 7. 10.
  •  입력 2014.12.22 11:43

 신승희(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고향 이야기는 항상 즐거운 이야기만 있지 않다. 부모 형제에 관한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두근두근 첫사랑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고향 이야기는 마치 안개 가득한 호숫가를 건너오는 것처럼 촉촉하고 정겨운 기억으로 온다. 남사면 완장리 800년 된 노거수 아래에서 시작된 식물수다는 끝이 없는 기차를 타듯 끊임없이 고향이야기를 쏟아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스위치백이 있던 곳 강원도 삼척의 도계이야기로 넘어갔다. 도계는 일제시대부터 광산촌으로 개발된 곳이다. 그 덕에 산업문명의 혜택을 아주 일찍 보게 된 마을이었다. 요즘에야 흔하게 보이지만 1970년대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나무에 전깃불을 밝혀놓았다. 봄이면 광산을 둘러싼 벚나무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낮에 봐도 화사한데 밤에는 전깃불을 밝혀 환하게 반짝거리게 해놓았다. 중학교 어느 날 그날도 벚꽃을 구경하고 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만 동네 깡패를 만나게 돼 혼비백산 도망을 가는데 같이 갔던 친구는 도망을 치다가 넘어져 냇물에 빠지게 됐다. 광산촌이라 시커먼 물이 흐르고 있던 터라 그만 물에 빠진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버렸는데 설상가상으로 앞니까지 부러져버렸다. 그 모습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다행히 지금은 시집가서 엄청나게 잘 살고 있다하니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광산마을 도계는 물은 물론이고 공기에도 먼지가 가득해 여기저기 시꺼먼 먼지가 내려앉은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도계는 먼지 때문에 들나물을 캐거나 밭에서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 채소나 과일 등 대부분의 농산물들을 외부에서 들여와 사먹어야 했다. 눈앞이 산이고 들이 펼쳐진 곳에서 돈을 가져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광산도시의 아이러니다.

또 다른 도계에 대한 기억으로는 긴잎느티나무라고 불렸던 수령이 천년 넘은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어른 여섯 명이 팔 벌려 간신히 둘러쌀 만큼 큰 나무였다. 긴잎느티나무는 느티나무의 변종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고 있는 흔치 않은 나무인데 일반 느티나무보다 잎이 더 길고 좁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서낭당 나무로 섬기며 소원과 안녕을 빌어 왔다. 이 나무가 학교 운동장에 자리하고 있어서 다른 나무로 서낭당 나무를 바꾸려고 하자 이 나무의 노여움을 사서 천둥과 번개가 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당당했던 나무가 이젠 시멘트 같은 것들로 속을 채우고서야 간신히 서있는 것을 보니 세월의 흐름 속에 상념이 찾아든다. ‘나도 저럴 거야 내 어디쯤이 저렇게 비어 있을까? 내 비어 있는 곳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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