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01.14 10:11
요즘 어느 영상 광고에서 2020년이라는 숫자에 선을 살짝 긋고 ‘go go’ 라는 영어단어로 바꿔 표현하는 것을 봤다. 참 기발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 새해인데 힘차게 다시 시작해야지’ 하는 다짐을 품어본다.
처음 <용인시민신문>에 연재를 시작하며 쓴 글이 있다. ‘사람들이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나 누구와도 쉽게 스스럼없이 하기를 바란다. 어젯밤 드라마에서 본 남자주인공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열이 이야기를 하듯, 사고 싶은 가방 디자인을 이야기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듯, 날 닮아 똑똑하고 착한 아들 이야기를 자랑 아니게 은근슬쩍 하듯, 쉽게 나무 이야기를 하고 풀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풀과 나무가 우리 일상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라고. 이 바람이 널리 퍼졌기를 바라며 2020년을 맞아 좀 더 넓어진 소재로 글을 쓰려 한다. 일주일마다 펼쳐지는 신문 지면을 통해 나무와 풀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보물찾기 하듯 풀어나가고자 한다.
나무이야기를 하며 겨울 숲에서 나무의 어떤 부분들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겨울 숲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야생동물들의 흔적 찾기이다. 야생동물들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아마 사람을 무서워하는 동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게 예민한 동물들을 숲에서 실제로 보는 것은 극히 드물고 또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흔적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해 알아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야생동물들은 살고 있기에 여러 가지 흔적들을 남긴다. 그러나 낙엽들과 무성하게 자란 풀로 인해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겨울 숲이 야생동물의 흔적 찾기에 쉬운 편이다. 특히 눈이 오고 난 후에는 여러 가지 흔적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발자국이다. 눈이 와도 동물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자국을 남긴다. 우리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발자국은 멧돼지, 멧토끼, 고라니, 쥐, 새 등의 것이다. 동물마다 당연히 다른 발자국을 남긴다. 멧돼지와 고라니는 발굽이 있는 동물이기에 발굽 자국이 뚜렷이 남는다. 멧돼지 발자국이 덩치에 맞게 더 크고 발굽이 두터우며 큰 발굽 밑에 작은 발굽이 작게 찍힌다. 고라니는 사슴처럼 생긴 동물인데 발굽 자국이 길고 뾰족하다. 앞 발자국에 작은 발굽이 점처럼 찍히기도 한다. 발굽이 없는 개나 고양이과 동물들은 발바닥과 발가락 자국이 찍힌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로 발가락 앞에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다. 반면 삵과 같은 고양이과 동물은 발톱 자국 없이 동그랗게 발가락 자국만 보인다. 산책하며 데리고 간 개나 들고양이 발자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발자국 말고도 동물들은 똥과 오줌 같은 흔적을 남겨놓는다. 동물에게 있어 똥과 오줌은 먹이 활동으로 인한 단순한 배설물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중요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여기 내가 살고 있으니 침범하지 말라’는 뜻을 전한다. 그런데 그 똥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을 먹고 사는 지도 알 수 있다.
풀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들의 똥은 동글동글 콩처럼 생겼는데 냄새도 거의 안 난다. 고라니 똥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아이들이 콩자반이라고 부를 정도로 검은콩을 닮았다. 눈 위에선 발자국과 똥, 오줌까지 한꺼번에 볼 수도 있다.
반면 육식동물들은 길쭉한 똥을 싸는데 냄새가 심하고 거무튀튀한 색을 갖는다. 막대기로 헤쳐 보면 털이나 뼛조각이 나오기도 한다. 멧돼지, 너구리 등은 풀이나 열매는 물론, 동물도 먹는 잡식동물로 열매 껍질이나 씨앗도, 작은 뼈도 나온다. 새들이 싼 똥을 보면 씨앗이 잔뜩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똥에 하얀 액체가 같이 묻어있는데, 이것이 오줌이다. 새는 똥 오줌을 따로 싸지 않고 한꺼번에 싼다.
이 외에도 딱따구리가 벌레를 찾아 먹으려고 잔뜩 쪼아놓은 나무 구멍이라든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를 발견한다거나, 유리산누에나방이 떠나고 난 연두색이 눈에 확 띄는 고치를 찾는다거나 하는 흔적 찾기는 재밌는 겨울 숲 여행이다. 자연이 존재하는 숲과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는 들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보는 일상의 자연 산책으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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