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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겨우 살아갈 지라도 겨울엔 내가 주인공! 겨우살이

by 늘품산벗 2016. 9. 13.

2016.02.22 11:21

분명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겨울 나무에 초록
 잎들이 마치 새 둥지처럼 무성하게 모여 있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놀라웠다.
나중에 그것이 다른 나무에 달려 기생이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겨우살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더구나 겨우살이가 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그 생태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겨우살이를 우연찮게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동네 근처 식당에서

였다. 안에는 커다란 갈색 유리병들이 가득했다. 그런 와중에 커다란  양파 자루 같은 주머니들이 한 곳에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살이였다. 주인아저씨는 직접 산에서 뜯어왔다며 자부심에 꽉 찬 눈빛을 보이곤, 먹으면 어디 어디에 좋다는 얘기를 하시며 열변을 토했다. 실제 겨우살이를 검색해보면 효능과 복용방법에 관한 자료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를 알 수 있다.

그 덕에 국립공원과 같은 곳에서는 몰래 채취하려는 사람과 보호하

려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실랑이가 오가기도 한다.


추운 겨울을 겨우 살아 넘기므로 ‘겨우살이’라고 한다고 하고 또는

겨울에도 푸르게 살아있으므로 겨우살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도 한다.

전국 산에 드물게 자라는 늘 푸른 작은 나무로 주로 참나무류, 팽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배나무 등에 기생한다고 한다.

필자가 본 벚나무에서 싹트는 겨우살이의 예를 보면 생각보다 여러 종류에 기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겨우살이 말고도 남쪽지방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동백나무에 기생하는 동백나무겨우살이와 붉은 열매가 달리는 붉은겨우살이,  노란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줄지어 달리는 꼬리겨우살이들이 있다. 우리가 사는 용인 주변에는 대부분 그냥 겨우살이이다

소나무겨우살이라고 해서 새롭게 주목되는 것이 있는데 추운 북쪽지역 높은 산 소나무에 많이 걸쳐 사는 이끼 종류이다. 이름만 겨우살이라는

이름을 빌렸으니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겨우살이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아니라 활엽수에 기생하는 나무이다.

항상 키 큰 나무 꼭대기에 있어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겨우살이를 이렇게 직접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식당에서 조금 얻어왔다. 너무 뿌듯했다.

 이윽고 겨우살이 관찰에 들어갔다. 정말 나무 같다. 줄기도 딱딱하고 잎도 풀잎처럼 하늘하늘한 게 아니라 사철나무나 동백나무 잎처럼 두껍고

 딱딱했다.

다만 크기가 좀 작은 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였다. 가지가 Y자로 갈라지고 마디가 생기고 또 Y자로 갈라지고를 네다섯 번 반복하다가

 끝에 잎이 두 개가 마주보고 나 있다. 열매도 보였다. 지름이 1cm도 채 안 되는 연한 연두색 구슬같이 생긴 동그란 열매다. 먹을 수 있는 건가?

손으로 만지는 순간 찝찝함이 후끈 들어왔다. 열매를 만지자 푹 터지면서 안에 있던 씨앗이 보이는데 씨앗을 감싸고 있는 액체가 끈적였다. 씨앗이 마치 내 손가락에 찰싹 달라붙듯이 끈적였다. 겨우살이는 왜 이런 씨앗을 갖게 되었을까?


 
 


겨우살이는 아주 독특한 삶을 선택했다. 동그란 열매는 새들

눈에 띄는 좋은 먹이가 된다.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많이 먹

는데 열매를 먹게 되면 새들은 이동하며 똥을 싸게 된다. 그

 똥과  함께 소화되지 않은 씨앗이 나오게 되는데 끈적끈적한

액체는 새들의 몸을 통과해서도 끈적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새의 몸에서 땅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앉아있는 새 엉덩이에서 쭉 늘어져 나와 조금 아래에 있는

줄기에 떨어지게 되는데, 여기서도 끈적함은 유감없이 발휘돼

가지에 부딪쳐 튕겨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에 찰싹 달라붙게

된다.

 또는 새가 열매를 먹을 때 씨앗을 뱉으려고 하는데 부리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자 줄기에 대고 비비다가 줄기에 붙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씨앗은 새들로 인해 어미나무

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새로운 싹을 틔우게 된다.

그러나 올라앉은 나무줄기에는 흙도 물도 없이 척박한 곳이다.

어디 기대어 자랄 수도 없다. 살아남기 위해 겨우살이는 나무

줄기 안으로 뿌리를 박아 버티고 서야 한다. 나름 초록색

잎을 갖고 있어 광합성이라는 생산작용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가기에 그 양이 부족해 숙주가 되는 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가로채는 얌체 짓을 할 수밖에 없는 반기생

상태로 살아간다.

그런데 햇빛 경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키 큰 나무들에게만 겨우살이가 붙는다 하니 생태계에선 영원한 약자와 강자도, 일방적인

 희생이나 군림도 없다. 서로 양보와 타협 속에서 조화와 평화가 유지된다.

다른 계절엔 숙주가 되는 큰 나무 잎들로 인해 겨우살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갈까? 겨우살이는 높은 가지 위에서 3월에

 노란 꽃을 피우고 10월에 열매를 단다.

올라붙은 나무 줄기 안으로 뿌리를 박고 그 나무로부터 물과 양분을 얻어 먹으면서 자신의 몸을 키우고 새로운 가지와 잎과 열매를 만들며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겨우살이는 조연배우와 같다.

척박한 가지 위에서 숙주의 나무껍질에 붙어 씨앗이 싹을 틔워 첫 잎이 나기까지는 5년쯤 걸린다. 그리고 나서도 봄 여름 가을 좋은 시절엔

 좀처럼 보이지 않다가 겨울이 돼 나무가 한 숨 고르며 잠시 쉬어갈 때 ‘나 여기 있어요.’ 작은 초록 생명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순간만큼은 겨우살이가 주인공이다.

  
▲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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