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0 09:47
어린 시절 친구들과 불렀던 재밌는 노래가 떠오른다. “뽕나무가 뽕 하고 방귀를 뀌니 / 대나무가 댓끼 놈 야단을 치네 / 참나무가 점잖게 하는 말 참 아 라” 아이들이 ‘방귀’라는 단어만 나와도 까르르 웃는 데 방귀소리를 표현할 때 쓰는 의성어 ‘뽀옹! 뽕!’이 나무 이름에 붙었으니 아이들에겐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빵하고 터지는 뽕나무다. 실제로 뽕나무 열매를 먹으면 소화가 잘돼 방귀가 뽕뽕 나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달콤한 뽕나무 열매를 먹고 나서 뀌는 방귀는 달콤한 향이 날까 궁금해진다. 뽕나무는 많은 어른들에게는 야릇한 웃음을 떠오르게 하는 이름이기도 한다. 과거 너무나 유명했던 영화 ‘뽕’이 있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필자는 직접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 영화제목과 포스터 분위기만은 기억을 한다. 대체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영화에서 정말로 뽕나무가 나올까? 직접 영화를 본 윗세대만이 그 답을 알고 있겠지. 영화 ‘뽕’은 1920년대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과 함께 당시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나도향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원작의 문학적 가치에 힘입어 영화가 개봉될 당시 많은 화제와 더불어 각종 영화제에서 많은 수상을 했다 하니 성인이 된 지금 고전영화 돌아보기를 해볼까 한다. 왜 뽕일까 생각하며. 우리가 주로 보는 뽕나무는 마을 인가에 심어 기르는 뽕나무와 산기슭에서 자라는 산뽕나무, 그리고 산기슭이나 들에서 볼 수 있는 가새뽕나무가 있다. 둥글둥글게 생긴 뽕나무 잎에 비해 가새뽕나무는 가새(가위의 사투리)로 자른 듯이 잎이 여러 갈래로 깊게 갈라져 있다. 이들은 보통 봄에 꽃이 피어 여름 햇살이 뜨거워질 즈음 열매가 까맣게 익는다. 굳이 따지면 뽕나무라고 해서 이름이 꾸지뽕나무도 있다. 꾸지뽕나무는 주로 남쪽지방 야산에 사는데 다른 뽕나무와 다르게 가시가 있다. 꽃도 6월에 피어 가을이 시작될 무렵부터 열매가 익는다. 이외에도 잎에 털이 있어 털뽕나무로 불리는 돌뽕나무가 있다. 이들 모두 검은 열매를 먹고 잎은 누에를 친다. 이것이 뽕나무 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우리가 개의 새끼를 강아지, 닭의 새끼를 병아리라 부르고 꿩의 새끼를 꺼병이라 부르는 것처럼 식물들 중에는 열매 이름을 특별히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가 있다. 소나무의 열매는 솔방울, 벚나무의 열매는 버찌, 뽕나무의 열매는 오디라고 부른다. 오디는 처음에는 연한 녹색에서 점차 붉은색으로 변하다가 완전히 익으면 검은색으로 변한다. 오디는 신맛과 단맛이 있는데 익을수록 단맛이 강해져 달콤한 향을 풍긴다. 까만 열매를 나무에서 하나하나 따먹는 재미가 꽤 쏠쏠한데, 달고 잘 익은 오디는 만지면 금새 물렁물렁해져 어느새 손가락도 새까매지고 입술도 새까매진다. 개구쟁이들에겐 맛도 있고 재미도 있는 간식이다. 아이들이 웬만큼 먹고 돌아가면 그 까만 오디는 누가 먹을까? 잠시 후면 동네 새들이 모여든다. 참새, 박새, 직박구리, 산비둘기, 까치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초여름의 만찬을 즐긴다. 한참을 여기저기 따 먹던 새들이 배부른지 날아오르면서 떨구고 간 새똥을 보면 오디의 색을 닮아 보라색이다. 버찌와 더불어 여름철 새들의 중요한 먹이다. 그런데 오디가 달리기도 전 뽕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누에나방의 애벌레인 누에다. 누에는 이 뽕나무의 잎을 먹고 몸을 키워 번데기가 되는데 이때 고치를 만들어 들어앉는다. 사람들은 이 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이라는 반짝반짝 윤이 나고 보들보들한 천을 만든다. 이 비단으로 인해 무역이 생기고 문화가 오가고 전쟁이 벌어지는 역사를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누에가 선택한 뽕나무 초록 잎에서 시작됐다니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밖에 없다. 뽕나무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모신 효자가 있었다. 백방으로 약을 써 봐도 차도가 없었는데 천 년된 거북이를 고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무척 어렵게 천년 묵은 거북이를 잡아 집으로 가는 중에 커다란 뽕나무 밑에서 땀을 닦으며 쉬게 됐다. 이때 거북이가 “나는 영험한 거북이라 100년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도 죽지 않으니 헛수고 말아라”라고 하자 그 말을 듣고 있던 뽕나무가 “아무리 영험해도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면 당장 죽을걸.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내가 가장 강한 나무지”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효자는 그 뽕나무를 베어다가 불을 지펴 영험한 거북이를 삶을 수 있었으며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가 있었단다. 효자에겐 잘 된 일이지만 거북이와 뽕나무 입장에선 자신만을 믿고 큰 소리쳤 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다. 괜히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말조심을 하라는 이야기다. ‘상전벽해’라는 말도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말이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곳이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뽕나무 밭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빌딩과 도로로 변해버린 곳은 많다. 그 많던 뽕나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간혹 시골 마을에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뽕나무를 만날 때면 반가운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은 오랜 세월 뽕나무 와 함께 살아온 인간의 역사가 우리 유전자 안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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