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가 버들강아지를 낳았대요
식물 이름에 동물의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노루귀, 꿩의바람꽃, 괭이눈, 개불알풀, 애기똥풀, 매미꽃 등.
그런데 이 같은 경우는 흔치 않다. 분명 나무 이름은 버드나무라는 고유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독 버드나무 꽃눈이 껍질을 벗고 봄을 맞이하며 기지개를 펴는 시점에서 우리는 버드나무의 꽃을 보며 ‘버들강아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것도 아주 사랑스럽게.
그 비결은 바로 꽃의 외모에 있다. 만지면 너무나도 부드럽게 느껴지는 털의 감촉은 아장아장 걷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의 그것과 비슷하다 느낄 만큼 아주 부드럽다. 빛깔 또한 어떠한가. 강아지 털이 윤기가 흐르듯 은색으로 반짝이는 털 빛깔은 충분히 총애의 대상이 될 만하다.
겨울동안 매서운 칼바람을 다 이겨낸 버드나무 꽃눈이 마지막 고깔모자를 벗어 던지며 그 빛나는 자태를 드러내면, 버드나무가 주로 사는 계곡이나 골짜기 습한 땅에 이미 대지의 어머니가 땅속 깊이 물이 녹아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며 봄 맞을 준비를 하라 재촉한다. 이때 누구보다도 빠르게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하는 것이 버들강아지가 아닐까?
그러나 은빛 찬란함이 버들강아지의 끝이 아니다. 버드나무 꽃으로서 이제 시작이다. 보드라운 털 속에서 곧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리는 암술과 수술들이 세상을 향해 올라온다. 보통 수술은 빨간 색으로 몸을 밀어 올리다가 때가 되면 벌어지며 노란 꽃가루를 듬뿍 묻힌 수술머리를 들어올린다. 또 다른 버들강아지에선 노란 맨 얼굴을 들어낸 암술이 고개를 빳빳이 도도하게 들고 일어선다. 빨갛고 노랗게 절정의 순간을 위해 버들강아지는 그렇게 이른 봄을 준비해온 것이다.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버드나무의 버드가 영어로 새를 뜻하는 버드인지, 새가 많이 날라 와 버드나무냐고,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우리말까지 외래어로 오인하다니. 버드나무의 버드는 우리말인 ‘벋다’에서 나온 말로 가지들이 시원시원하게 죽죽 뻗은 모습을 본 따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버드나무는 ‘버들’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린다. 그래서 버드나무 잎을 ‘버들잎’이라고 하고 버드나무 꽃을 부르는 이름으로는 버들강아지 외에 ‘버들개지’라고도 한다. 버드나무 종류를 보면 왕버들, 갯버들, 호랑버들, 수양버들, 능수버들 등이 있다.
우리 역사 속에는 버드나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버드나무꽃 여인으로 불리었다. 또한 신라 김유신 장군이 목이 말라 어느 마을에 도달했을 때 우물가에서 처녀들에게 물 한바가지 얻어 마실 때 바가지 속에 넣어준 잎도 바로 버들잎이다.
이제 곧 한식이 다가오는데 한식은 설,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꼽히는 날로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 조선중기 학자 홍석모는 <동국세시기>에 ‘한식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일으킨 새 불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 했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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