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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겨울나무 소나무

by 늘품산벗 2015. 8. 28.

 

겨울나무, 소나무

 

눈이 내린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낭만적인 하얀 꽃잎 같다. 굳이 첫사랑의 이루어짐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이 우아한 떨어짐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손을 내밀어 받는다.

소나무도 손가락을 벌리듯이 가느다란 초록 솔잎마다 한줄 씩 눈을 올린다. 초록 잎에 핀 하얀 눈꽃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다.

몇 년 전 겨울 산행을 갔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해는 유난히 함박눈이 많은 겨울이었다. 많은 소나무들이 붉은 속살을 거의 내보여진 채 허리가 우지끈 험하게 꺾여 초록머리를 수그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야생동물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이렇게 아프게 꺾어놓았을 리는 없다. 그러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소나무를 이렇게 사정없이 부러뜨려놓은 것은 바로 하얀 눈이었다.

가느다란 솔잎 위로 눈 결정들이 얽히고설켜 다리를 놓아 쌓이게 된 것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소나무의 굵은 줄기를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한 것이다. 다른 나무들처럼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겼더라면 우아한 눈꽃만 피웠을 텐데, 어떻게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참사를 맞은 것일까?

소나무는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 북동부지역, 일본 등지에 분포하고 있는데 식물에게는 모두 추운 겨울이라는 시련의 계절을 겪어야만 한다.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소나무가 갖고 있는 몇 가지 장치가 있다.

잎을 뭉쳐 가느다랗지만 단단한 형태를 갖게 되었고 얼어붙지 않게 하기 위해 부동액 역할을 하는 기름성분이 많은 잎을 갖고 있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소나무는 가을이 되었다고 금방 잎을 떨구지 않는다. 봄에 싹을 틔어 겨울에도 강하게 살아남은 잎은 다음해 가을이 되어서야 잎을 떨군다. 어떤 잎은 두 겨울을 살아남아 삼년의 인생을 사는 잎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에도 푸른 잎 소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겨울과 관련된 소나무의 생태적 특징은 열매에서도 볼 수 있다. 소나무 열매를 솔방울이라고 부르는데 봄에 작은 솔방울처럼 생긴 보라색 암꽃과 수꽃의 노란 꽃가루가 만나도 쉽게 수정이 되지 않는다. 암꽃은 자신의 문 앞에 수꽃의 꽃가루를 기다리게 해놓고 겨울을 나게 한다.

건강테스트를 하듯이 추운 겨울을 잘 견디어낸 꽃가루를 이듬해 봄이 되면 받아들여 비로소 수정이 되고 가을이 되면 솔방울은 한 겹 한 겹 비늘 사이에 씨가 생겨 바람에 날려 보낸다.

소나무는 우수한 유전자를 지키고 건강한 종자를 만들기 위해 솔방울로 하여금 추운 겨울을 나게 하고 이듬해 씨앗을 날려 보내는 것이다. 4∼5월 꽃이 피어 이듬해 9월 종자를 내보내기까지 약 17개월이 걸린다.

이렇게 소나무에겐 추운 겨울이 꼭 필요한 통과의례가 됐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전망되는 미래보고서에는 소나무가 언제까지나 우리민족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지 않는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당연시 되는 애국가 한 구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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