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 마하트마 간디
요즘 갑자기 마하트마 간디를 생각하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아는 언니와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추천받은 '신발 한 짝 - the other pair' 라는 간디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단편영화이고, 두 번째는 참여하는 모임에서 마을공동체에 관한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요즘 읽고 있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라는 간디의 책이다.
'신발 한 짝 - the other pair'는 5분정도 되는 짧은 단편영화인데 끝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잠시 주인공을 의심하는 나쁜 편견을 가진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감동적인 영화였다.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간디가 실제로 경험한 실화라고 한다. 워낙 단순한 이야기라 자세히 얘기하면 스포가 될 수 있어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직접 한번 보길 권한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간디가 쓴 책인데, 아무리 마을공동체와 관련된 스터디라지만, 그 책이 그 계통의 바이블같은 책이라지만 요즘시대에 간디라니? 좀 겸연쩍었다. 사실 책을 읽으며 반 이상은 버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전체 페이지로 봤을 때 양적으로 치면 건진 건 얼마 없다. 책이 쓰여진 시기가 거의 백년정도 전에 간디가 살았던 세상의 이야기이다 보니 격변의 시간이 지난 요즘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산업화와 기계화를 반대하고 가내수공업과 농업이 세상 살림살이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물레를 돌리며 직접 실을 만들어 옷을 만들어 입어야 한다고 하는 간디의 이야기가 납득이 될 리 없다. 그러나 간디가 하려고 한 이야기의 중심, 핵심의 그 무게감은 결코 얼마가 아니다. 시대가 오래 되어 박제화 되어버린 간디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선견지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요즘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정신으로 손색이 없어 책을 읽으며 깜짝깜짝 놀랐다. 백 년 전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소름이 끼쳤다. 물론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은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일 수 있음을 밝혀둔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간디는 ‘부유하게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아 변호사가 되었지만 개인의 안위를 포기하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정치가이며 비폭력주의자. 그래서 우리가 일제강점기 때 삼일운동을 총칼을 든 저항무력시위가 아니라 비폭력시위라 하며 간디의 사상과 연결 시킨다’라고 학창시절 학습해온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간디의 전부이며 사상이었다. 즉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총 칼 같은 물리적 무기에 대항해 맨몸으로 맞서는 무모한 평화주의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비폭력이 단순히 그런 물리적 무기의 반대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폭력을 이해하기 위해선 간디가 말하는 폭력을 알 필요가 있다. 간디의 폭력은 물리적인 강압뿐만 아니라 범주를 넓혀 인간의 사회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비민주적인 행태를 가리킨다. 무력, 지배, 차별, 독식, 혐오, 강압 등 인간관계에서 쓸 수 있는 나쁜 말은 다 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비폭력은 인간의 상호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존엄과 평등, 평화, 책임, 자립, 자치를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비폭력은 민주주의와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간디는 ‘중앙 집중’에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중앙 집중이 폭력을 야기 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중앙 집중은 여러 분야에 적용된다. 권력의 중앙 집중이 강화되면 독재가 되고, 중앙정부의 독식으로 인해 지방자치의 약화를 일으킨다. 경제적 중앙 집중은 부의 독점으로 일부가 자원과 자본같은 전체 재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대다수 민중의 삶을 피폐화시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에서도 중앙 집중은 폭력이 뒤따른다. 거대도시로의 집중은 주변 소도시와 마을의 존립까지도 뒤흔들며 주거, 교통, 환경, 안전, 문화, 기회의 불균형 등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식량의 중앙 집중은 파멸의 길이라고까지 했다. 요즘 말하고 있는 식량안보, 로컬푸드와 같은 맥락이다. 식량 생산과 소비, 분배의 중앙 집중은 에너지, 환경, 교통, 보관, 해충손실 등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문화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문화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깨어지고 획일화된다. 창의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다수의 창작자가 열정페이만을 강요당한 채 근근이 영위한다. 이렇게 중앙 집중은 일부만 위하고, 그들로 하여금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 일부는 중앙 집중을 유지하기 위하여 비민주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간디는 중앙 집중을 폭력적이라 말하고, 비폭력으로 가기위해 중앙 집중이 아닌 개별 요소들의 자치, 자립을 주장했다. 이것이 그들 말로 스와라지다.
자치와 자립을 뜻하는 스와라지를 이루기 위하여 간디는 여러 가지 기본 원칙들을 세웠다. 인간이 인간으로 서기 위해 누구나 생계를 꾸려 갈 수 있게 노동을 해야 하고, 충분한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신분의 차별이 없는 평등과 수입과 분배의 경제적 평등, 종교의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남는 부를 가진 자는 여분의 부를 사회적으로 쓰도록 사회에 맡겨야 한다. 지역의 분권이 살아있는 탈 중심화, 지역에서 자급자족하는 스와데시 운동, 서로 돕는 협동, 더 나은 삶을 위한 교육, 판차야트 라지라 불리는 마을 사람들의 자치협의체 구성 등 세심하게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민주주의적 요소, 요즘 대두되는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일맥상통한다.
또 간디는 산업화와 기계화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현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성공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제국주의적 야욕을 세계적으로 뻗치고 있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서 가난한 나라가 갖는 설움 속에 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성공의 사례로 보일 수 있었는데 간디는 오히려 반대적 행보를 취한다. 산업화와 기계화가 인도 마을 공동체의 와해를 조장하고, 인간의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간본연의 본성, 도덕성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산업화와 기계화, 도시화를 거부하고 마을단위의 자치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가내수공업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주장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요즘 비록 간디의 바람처럼 산업화와 기계화가 거부되진 않았지만 어쩜 간디의 예언이 맞아떨어졌다. 간디가 말하는 산업화와 기계화로 인해 인간의 존엄이 무시당하는 일이 번번히 발생한다. 이를 요즘 말로 표현하면 물질주의 논란, 금수저 흙수저 논란과 같은 맥락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미래소년 코난’이란 만화가 생각이 났다. 미래사회의 모습인 인더스트리아 라는 도시가 그땐 정말 허무맹랑해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만화 속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세계적으로 유행한 영화 아바타,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책 제목인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라는 말은 비폭력 즉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사람 관계망인 마을이 스와라지 자치와 자립을 이루어 서로 협력하며 세계를 움직이게 하자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의 변화를 갈망한 간디의 신념이 표현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보며 스터디를 통해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간디에 대해서, 마을에 대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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