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단지 화단에서 숲 체험해요
- 입력 2022.10.06 09:30
화단을 따라가며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무엇을 함께 볼까?’ 유심히 보았다. 그러다 눈에 띈 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트로브잣나무 열매였다.
“이게 뭘까?” “솔방울이요”
“누구한테서 떨어진 걸까?” “소나무요”
아이들이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비슷한 소나무라고 말해준 것만 해도 기특하다. “소나무는 잎이 2개 또는 3개이고, 잣나무는 잎이 5개란다.” 잎을 주워 함께 하나 둘 셋 넷 다섯, 예닐곱 살 아이들이기에 숫자 공부를 겸해서 이야기했다.
마침 솔방울도 옆에 있어 두 개를 같이 보며 비교했다. 이번엔 모양에 대한 이야기. 동그란 솔방울과 길쭉한 스트로브잣나무 열매 모양에 대한 어휘를 얘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열매와 씨앗에 대해 좀 더 이야기 나누고, 마지막으로 주변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열매 껍질 벌어진 틈에 끼워 꾸미기를 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동물 만들기. 아이들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모양이 나왔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꾸몄는지, 무엇을 만들었는지 이야기하게 하고 들어주는 것이다. 보이는 것 뒤에 굉장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몇 걸음 더 걷다 보니 이번엔 거미가 보였다. 요즘 거미가 잘 보인다. 없던 거미가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고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니 몸집이 커져 우리 눈에 잘 띄는 것이다. 특히 무당거미가 많다. 무당거미는 숲이나, 들이나, 시골이나, 도시나 가리지 않고 많이 보인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무당거미를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거미 이름이 뭘까?” 무당거미란 말도 나왔지만 호랑거미란 이름이 더 크게 나왔다. 아니 그조차도 모르고 있는 아이가 더 많았다. 상관없었다. 어린아이들이 거미 이름을 모른다고 문제가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뭐 누구나 거미 이름 모른다고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다만 이름을 안다는 건 조금 더 관심이 있다는 표현일 뿐.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호랑거미와 무당거미의 차이점을 알려줬다.
“호랑거미는 배가 호박씨처럼 생겼어. 통통하게 동글동글, 그리고 무당거미는 몸이 길쭉하지.”
“호박씨는 어떻게 생겼어요?”
아뿔싸! 호박씨를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결국 손으로 허공에 대고 그림으로 그려주었다.
거미줄 집을 짓는 건 암컷이다. 때론 작은 거미가 함께 있기도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기 거미와 엄마 거미라 한다. 아니란다. “얘들아. 작은 거미는 아빠가 되고 싶어 하는 수컷 거미이고, 배가 큰 집주인 거미는 엄마가 되고 싶은 암컷 거미란다. 알을 낳아야 하기에 암컷거미는 배가 큰 거야.”
무당거미를 보며 색깔놀이도 했다. 무당거미에게 있는 색깔은 흰색과 검은색, 노랑색 그리고 빨간색이다. 빨간색은 머리 쪽과 배 끝에 있는데, 배 끝 빨간색에서 거미줄이 나온단다. 집주인이 없는 빈 거미집을 보면 거미줄을 내려 아이들에게 만지게 해주었다.
너무 가늘어 잘 보이지도 않는 거미줄을 만지며 아이들은 너무나 신기해했다. 때론 끈적끈적함을 느낄 수 있는 예민한 행운도 찾아왔다. “거미줄을 보았으니 우리도 거미줄을 만들어볼까?” 주변에 있는 기다란 나뭇가지들로 거미줄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준비해간 고무줄 거미줄로 신나게 놀이를 하며 거미수업을 마무리했다.
아파트 단지 화단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숲체험은 사실 쉬운 게 아니다. 생물종 다양성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주관으로 멋대로 심어놓은 경우가 많아 식물에게 기본적인 물과 햇빛, 공간, 주변 생물들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심어놓는 바람에 가지고 있는 본성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볼 때 참 안타깝다.
아파트 화단 숲체험의 어려움은 엉뚱한 곳에서도 온다. 화단을 부지런히 청소하고 가꾸는 분들 덕분에 떨어진 나뭇잎이나 열매, 나뭇가지 등을 발견하기도 힘들다. 또 방역 때문에 약을 치는 곳에서는 지렁이, 개미, 곤충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예전에 단지 내 어린이집 수업에 갔을 때 답사를 하며 나무들 사이에서 작은 새집을 세 개 발견한 적이 있었다. 신나서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말씀드리고 다음 수업 때 같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수업 당일 가보니 다 사라지고 없었다. 부지런한 아파트 관리하는 분들이 지저분하다고 다 떼어버렸다는 것이다. 아! 나에겐 너무나 예쁘고 귀엽고 생명의 신비가 서려있는 작은 새둥지가 그분들에겐 지저분해 보이는구나. 시선의 차이를 극명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화단의 숲체험, 생태체험은 중요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자연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연을 일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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