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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생태칼럼-용인시민신문

매미 소리에 여름이 온 것을 안다

by 늘품산벗 2022. 8. 3.

2022.07.25

아침 10시 약속으로 부리나케 걸어가고 있었다. 앞에는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와 엄마가 걷고 있었다. 남자 아이였는데 가면서 자꾸만 “여기, 여기. 여기”란 말을 하고 있었다. 말과 함께 아파트 담벼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뭐지? 궁금함에 아이가 가리키고 간 곳을 바라보니 세상에, 아파트 시멘트 담벼락에 매미 애벌레 허물들이 붙어있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었다. 가면서 보니 계속이었다. 나무줄기나 풀잎에 올라와 있는 매미 애벌레 허물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길가 시멘트 담벼락에 붙어있는 모습은 왠지 낯설었다.

어디서 왔을까? 매미 애벌레들은 땅속에서 사는데, 바닥은 온통 보도블록과 아스팔트밖에 안 보이는데, 설마 담벼락과 보도블록 사이 불과 몇 센티미터 안 되는 그 작은 틈을 비집고 올라온 것일까?

 

상상을 해봤다. 어젯밤 매미는 그동안 안락했던 땅속을 빠져나와 용기 있게 윗 세상을 향해 기어올랐다. 다행히 며칠 전 내린 비로 땅은 딱딱하지 않아 파고 나오기 딱 좋았다. 그런데 하필 보이는 높은 곳이 시멘트 딱딱한 담벼락이다.

그나마 군데군데 이끼들이 있어 뾰족한 앞다리로 잡고 올라갈 수 있다. 갈고리처럼 둥글고 뾰족하게 생긴 앞발은 땅속에 있을 때 흙을 파내며 앞으로 가기 좋았는데, 이렇게 땅 위로 오르니 무언가를 잡고 올라가기에도 딱이다. 사람들이 빙벽이나 암벽타기 할 때 날카로운 도구로 찍으며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렇게 올라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뾰족한 앞발로 단단히 고정한 후 잠시 쉬며 숨 고르기를 한다.

때가 되었다. 힘을 준다. 등 뒤가 십자로 툭 터지며 갈라진다. 벌어진 틈으로 몸에 힘주며 밖으로 빼낸다. 등부터 시작해 머리도 빼내고 배도 꺼내고 다리도 하나하나 빼낸다. 마침내 흙 묻은 껍질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맞는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 날개를 펼칠 차례다. 작은 공간에서 구겨 져있던 날개가 바람이 들어가는 풍선처럼 쭉 펼쳐진다.

이제 매미의 모양이 갖춰졌다. 날개를 말린다. 어느새 새벽이 오는 냄새가 난다. 이제 어른으로서 살아갈 매미다.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힘껏 날개짓을 한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른다. 매미 애벌레 허물은 마치 옛날 영화 영사기처럼 장면 하나하나를 떠오르게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끄럽게 질러대는 소리다. 특히 소음이 많은 도시에선 더 크게 소리를 낸다. 수컷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 짝을 찾아야 하기에 더 다급하게 소리를 내는 것이다.

매미는 종류마다 소리가 다르다. 도심에서 마치 사이렌처럼 높은 소리로 쎄에에에 하고 내는 소리는 매미 중에 가장 큰 말매미 소리다. 맴맴맴맴 매애애애 하고 매미 소리의 표준처럼 소리내는 건 참매미다. 쓰름매미는 이름처럼 쓰으름 쓰으름 음률이 있다. 소요산에서 발견되었다 해서 소요산매미는 좀 흉내내기가 어려운데, 으를 길게 빼다가 짧게 뚜잇 한다. 으 뚜잇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드그드그드그로 끝낸다. 기름 끓는 소리를 낸다는 유지매미는 지글지글을 빠르고 길게 반복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소리로 암컷은 자기 짝을 찾아간다. 이외에도 크기가 작아서 애매미, 몸에 털이 있어서 털매미, 털이 있는데 다른 매미들이 여름에 주로 나오는 것에 비해 가을에 우화해 늦게 나온다는 늦털매미가 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필자가 한 번쯤은 다 본 적이 있거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 매미들이다. 그밖에 참깽깽매미, 깽깽매미, 두점박이좀매미, 고려풀매미, 세모배매미, 풀매미, 호좀매미는 흔하지 않은 매미로 우리 나라에 서식하는 매미는 총 15종이 알려져 있다.

대부분 나무껍질 틈에 알을 낳는데 거의 열 달 이상 지나서 알에서 깨어난다. 깨어난 애벌레들은 바로 나무 아래로 내려와 땅속으로 들어간다. 짧게는 2,3년, 길면 6년이란 시간 동안 애벌레로 지내며 나무뿌리에 빨대같이 생긴 입을 꽂고 수액을 빨아먹는다.

땅속에 사는 매미 애벌레

그러다 성충이 될 준비가 되면 다시 땅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날개 달린 성충이 되어 약 한 달 정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동안 짝을 만나고 알을 낳는다. 미국에는 주기설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17년 만에 찾아오는 17년 매미가 유명하다.

장마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이제 곧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다. 도심에 많은 말매미 사이렌 소리에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컴컴한 땅속에서 한 달을 기다렸을 매미들을 생각하며 조금만 참아보자. 우리는 더 오래 요란하게 자연을 빌려 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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