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8
‘시골 쥐와 도시 쥐(때론 서울쥐)’라는 우화가 있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 시골 생활과 도시 생활의 차이점으로 일어난 해프닝을 담고 있다. 요즘 필자는 사정이 있어 일주일 중 평일에는 주로 도시인 용인 수지구에 있고, 주말엔 시골인 처인구 원삼면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골과 도심을 오가며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새삼 실감하고 있다. 그 두 마리의 쥐처럼 말이다.
오전에 시간이 날 경우엔 집 앞에 있는 광교산에 오른다. 물론 광교산은 용인과 수원에 걸쳐 있을 만큼 엄청 크고 넓어 뻗어 나간 한 자락에 잠시 오를 뿐이다. 도심 산은 진입이 좋다. 아파트 단지가 산 아래 있으면 출입문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다.마을에서 난 길을 따라가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금방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오가다 보니 쉽게 길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시골은 마을 뒤에 바로 산이 보이지만 올라가는 길이 아예 없거나 몇 갈래 되지 않는다. 있어도 산 중턱 묘지까지만 가다가 끊어지기 십상이다.
저녁에 시간이 나면 동네에 있는 하천에 간다. 손곡천을 거쳐 동막천을 만나 탄천까지 이어져 있다. 요즘 날씨가 더워서인지 저녁 선선한 바람에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개들을 데리고 나오는 사람도 많다. 산책을 시키기 위해 나오는 건 대단한 정성이다. 도심 하천 주변에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체육시설과 의자가 설치돼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해놓았다. 시골 하천은 사람과는 거리가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장소도 없는 경우가 많고 산책로나 자전거도로도 별로 없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그런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고 행정에선 말하고, 그런 게 없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런데 시골 저수지에는 둘레길을 많이 만들어놓았다. 저수지는 낚시꾼들이 찾아오고, 또 주변을 따라 상가나 펜션들이 있는 경우도 있어 그런가 보다.
저녁 9시가 다 될 무렵 손곡천을 따라 걷고 있는데 하천 한가운데 커다랗고 둥근 돌덩이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흰뺨검둥오리 한 마리가 날개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잠을 자고 있었다. 불과 1미터 남짓까지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도 흰뺨검둥오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혹시 죽었나? 의심할 정도로 어떠한 움직임이 없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원삼 시골동네에선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시골에선 몇십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작은 발자국 소리라도 나면 푸다닥 바로 날아가 버린다. 달리던 차가 멈추기만 해도, 시동을 끄기만 해도 날아간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함을 보인다.
그런 필자에게 사람이 가까이 와도 신경 안쓰고 잠에 몰두하는 도시의 흰뺨검둥오리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도시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특별할 것도 없는 아주 흔한 일상이란다. 오리를 보곤 아무 반응도 없던 사람들이 오리를 찍겠다고 쭈그리고 앉아 무릎까지 꿇고 있는 필자를 더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동막천을 따라 더 내려가다 보니 이번엔 왜가리가 나타났다. 왜가리가 먹이 사냥에 나섰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밤참이라도 먹으러 온 거 같았다. 긴 다리와 긴 발가락을 조심스레 뻗으면서 한발 한발 옮기고,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목을 길게 뺄수록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곧장 물속으로 부리를 꽂았다. 그러나 허탕이었다. 다시 발을 뻗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한참을 따라가며 사진을 찍고 쳐다보고 있는데, 왜가리는 필자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역시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필자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도심 하천 밤 산책에서 본 도시 새는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새, 그런 새를 아무 관심 없는 듯 지나가는 도시 사람들. 도심 하천에 살고 있는 새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서운 존재나 경계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냥 자신들의 일상을 해 나갈 수 있나보다. 반면 시골 새들은 그들의 영역에 침범하는 가끔 보는 인간들이 낯설고 경계와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져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있다.
시골 쥐와 도시 쥐처럼 시골 새와 도시 새도 자신들의 환경을 만족해할까? 아니면 상대방을 부러워할까? 궁금해지는 밤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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