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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습지들

by 늘품산벗 2022. 3. 9.

습지란?

습지란 단어를 생각해보면 언뜻 떠오르는 게 ‘습한 땅’ 이란 뜻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건조한 땅의 반대어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습하다 건조하다라는 것은 바로 물과 관련되어있고, 이것으로 간단히 내릴 수 있는 정의는 물과 흙의 어느 정도 어울림에 따라 습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 표면의 약 6%를 차지하지만, 육지도 물도 아닌 중간 지대인 습지는 그 애매함과 불안정함으로 인해 오랫동안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시대가 지나며 그저 축축한 땅이라고만 생각했던 습지에 대해 많은 고민들이 생겼고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결국 세계적인 이슈로 국제적 기준을 갖춘 협약까지 생겼다. 그것이 바로 람사르협약이다.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Convention on Wetlands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이 정식명칭이다. 19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체결되어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이라 불리는 이 국제협약은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물새를 국제 자원으로 정하고, 이를 보호하려면 무엇보다 물새의 서식지인 습지를 잘 보존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시작은 물새였지만 본론은 다양한 생명의 서직지인 습지의 보존을 화두로 하고 있다.

람사르협약에 따르면 습지는 "자연적이든,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물이 정체하고 있든, 흐르고 있든, 담수이든, 기수이든, 염수이든 관계없이 소택지, 저층습지, 저층습원, 이탄지 또는 수역을 말하며 여기에는 간조시에 수심이 6m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6m라는 수치적 경계를 통해 즉 매일 수심이 깊은 바다는 제외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 습지보전법에서 정의한 습지는 "담수·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내륙습지 및 연안습지"이다. 여기서 내륙습지는 "육지 또는 섬 안에 있는 호 또는 소와 하구 등의 지역"을 말하며, 연안습지는 "만조 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으로부터 간조 시에 수위선과 지면이 접하는 경계선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즉 내륙습지는 땅으로 둘러싸여있는 습지를 말하며 연안습지는 바닷가 갯벌을 말한다.

이 정의를 쉽게 풀어보자면 습지는 일 년 중 매일이 아닐 지라도 어느 정도는 얕은 물에 의해 잠겨있는 땅을 말한다. 그 물이 민물이나 바닷물이나 흐르는 물이나 고여있는 물이나 상관없이 말이다. 더구나 자연적으로 생겼던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갯벌, 늪, 둠벙, 하천변, 연못, 저수지 등이 이에 속하며 벼를 키우는 논까지도 습지로 볼 수 있다.

 

물과 흙이 만나 습지가 되면?

물과 흙이 만나면 곧 생명을 키운다. 그래서인지 습지 주변에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을 기반으로 다양한 동물들이 깃든다. 풀과 나무, 물고기, 조개, 물 안팎의 곤충들, 새들, 개구리들, 뱀들, 작은 야생동물들 따위의 다양한 생물들이 살며, 찾아오며 복잡한 생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인간 또한 습지 주변으로 모여들어 마을과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은 오랜 역사적 사실이다. 문명의 발생지가 모두 큰 강 근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양한 많은 생명들이 모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오염물도 발생하는데 인간이 가장 큰 오염원임은 극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나오는 각종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데에 습지가 큰 몫을 담당한다. 습지에 서식하는 동물, 식물, 미생물과 습지를 구성하는 토양 들이 주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종 오염원이 섞인 물을 흡수하여 정화시키고, 깨끗한 물을 다시 흘려 보낸다. 그래서 습지를 ‘자연의 콩팥’이라고 부른다.

또한 습지는 땅이 물을 품는 역할을 한다. 비가 오는 등 물이 많을 때는 흙 속에 수많은 구멍속에 물을 저장한다. 그러다가 메마른 건기가 오면 조금씩 조금씩 그 물들을 밖으로 내보내 주변을 메마르지 않게 해준다. 이렇게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는 능력까지 갖고 있다.

그렇게 품어진 물은 또한 주변 지역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 물이 수증기로 증발하면서 주변의 온도를 낮춰주고, 또한 건조한 대기에 습기를 더해 촉촉하게 만들어줌으로써 기후를 온화하게 만들어준다. 작은 습지는 주변의 영역에 영향을 미칠 뿐이지만 이것이 전 지구로 확대될 때 습지들이 만들어내는 효과,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습지는 거대한 탄소저장고이다. 살아있는 습지의 식물들과 갯벌의 미세조류들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죽은 습지의 식물들은 육상에 비해 분해가 잘 되지 않아 이탄이라는 퇴적물로 남게되는데 이 이탄층에서는 분해속도가 느리게 진행되어 다량의 탄소를 저장해놓을 수가 있다. 보통 육상의 식물들은 죽으면 물질순환의 과정을 거치며 다시 공기중 탄소로 돌아가는게 습지보다 빠르다. 그래서 갯벌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숲에 비해 약 50배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습지는 우리에게 정서적, 사회 문화적, 경제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자원이다. 요즘 습지 주변은 자연생태교육장으로, 쉼이 있는 공원으로, 걷기, 자전거 등 레포츠공원 등 생태관광지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도심의 주차난을 해결해주는 주차장으로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수자원 확보와 유지에 따른 경제적 혜택과 수질정화와 환경오염에 따른 비용을 절감시켜준다. 또한 어업, 농업 등 주민들의 경제활동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습지는 매우 높은 경제적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의 습지, 용인의 습지

우리나라에 유명한 습지들이 있다. 습지 보호를 위한 국제 조약인 람사르습지협약에 등록되어있는 습지만해도 전국에 23곳이 있다. 경남 창녕의 우포늪, 강원도 인제의 대암산 용늪, 제주도 물영아리 오름들이 유명한데 그 이외에도 무안 갯벌, 서천 갯벌, 고창부안 갯벌, 신안 증도 갯벌, 순천만·보성갯벌 따위 서해 남해쪽의 갯벌들, 신안 장도 산지습지, 울주 무제치늪, 태안 두웅습지, 제주 물장오리 오름,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등 여러 곳의 습지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습지내의 동 식물 보호와 생물 다양성 연구 등 습지 생태계의 보전을 위한 관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유명한 생태계 보전관리를 받는 습지 이외에도 사람들의 경제활동과 농업에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 댐, 논 등의 습지가 있다.

용인에도 많은 습지가 있다. 처인구에는 경안천 청미천 진위천 주변으로 많은 저수지들과 하천변이 자리잡고 있고, 기흥구에는 신갈천과 오산천 주변으로 수지구에는 탄천으로 이어지는 많은 습지들이 있다. 산에서 하천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둠벙이나 상류 계곡들이 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생태공원 습지나 레스피아 습지도 있다. 또한 처인구에는 도농복합도시답게 논들이 많다.

 

사라져간 습지

지난 20년 동안 약 19억 1,795만 제곱미터, 즉 서울시 면적의 3.2배에 달하는 넓은 면적의 습지가 사라졌다. 건물과 공장을 짓는 개발 사업, 도로와 신도시를 만드는 도시화 산업, 바다를 막아 육지로 만드는 간척 사업 때문이다. 또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전국의 많은 습지가 사라졌다. 물을 잘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인간이 손을 댔다가 오히려 자연을 망치고 자연스럽지 않은 물로 인해 자연과 인간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용인에서 살면서 주변의 습지가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개인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점점 사라져가는 용인의 습지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1.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살았다. 삼백 평 가량의 땅에 자리 잡은 집이었는데, 절반엔 집과 마당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묵논이었다. 묵논이란 논으로 쓰였던 땅이었는데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묵혀진 논이란 뜻이다. 본래 논이었던 곳이라 걷기에도 불편할 만큼 질퍽질퍽하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여러 식물들이 자리잡았다. 버드나무를 비롯해 고마리, 부들, 여뀌, 미국가막사리 등 습지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어디선가에서 찾아와 각자의 자리를 잡아갔다. 젼형적인 묵논습지였다.

그 집으로 이사를 간 건 10월 초였다. 집앞으로 마치 지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진 논은 황금물결로 가득 차 아름다운 풍경에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가을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았다. 마당 텃밭에 뭔가를 심기 위해 땅을 파다보면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튀어나왔다. 개구리는 많이 봤지만 맹꽁이들까지 만나고나니 너무 반갑고 귀여웠다. 왠지 겨울잠을 방해한 거 같아 다시 흙으로 덮어주었다. 계절이 익어가며 마당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참개구리, 청개구리 맹꽁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주 가끔 뱀까지도 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무래도 습한 묵논과 주변이 논으로 둘러싸여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나서 여름의 기운이 본격적인 6월의 어느날 며칠 비가 내렸다. 묵논에서 갑작스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낮은 저음으로 맹 맹 맹 맹 소리가 나는데 약간의 화음 차이로 서로 어울려 맹 꽁 맹 꽁 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맹꽁이들의 합창이었다. 참개구리나 청개구리처럼 높지 않고 맹꽁이 소리는 굵은 저음으로 낮게 깔렸다. 다른 개구리들도 마찬가지지만 맹꽁이의 소리는 짝짓기를 위한 수컷의 뽐내기 소리이다. “여기 건강하고 멋진 수컷 맹꽁이가 있소. 암컷 맹꽁이는 어서 오시오“ 하고 암컷을 부르는 소리다. 그러니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경쟁을 할 수밖에. 묵논의 맹꽁이는 소리로 짐작해보건데 몇 십 마리, 몇 백 마리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 지 여름인데도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밤에 잠을 자는게 힘들만큼 큰 소리로 울어댔다. 주로 밤에 우는데 마음이 급한 지 흐린 날에는 낮에 우는 녀석들도 많았다. 그러나 딱 2주였다. 비가 내려 묵논에 물이 고이자 그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는 2주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맹꽁이들의 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묵논은 맹꽁이들의 알과 올챙이로 가득차게 된다. 대부분 개구리알들은 여러 개가 붙어 한 덩어리로 뭉쳐있는데 반해 맹꽁이알은 하나하나가 떨어져 있다. 물에 둥둥 떠 여러 개가 함께 있을 뿐이다. 투명하고 동그란 말랑말랑 젤리같은 우무질속에 쌓여 검은 알이 안에 하나씩 들어있다. 이른 봄에 알을 낳는 산개구리들은 물의 온도가 낮아서인지 알에서 올챙이로 깨어나는 데에도 거의 한달 가까이 걸린다. 그런가하면 한여름에 태어나는 맹꽁이의 알은 올챙이로 깨어나는데 하루면 족하다. 분명 맹꽁이알을 보았는데 다음날 가보면 올챙이들이 바글바글하다. 그리고 한달이면 꼬리도 없는 맹꽁이로 변한다. 이렇게 묵논의 비밀을 알고 보니 그 묵논은 버려진 논이 아니라 맹꽁이들의 천국이자 백봉리 맹꽁이들의 산실이었다. 맹꽁이는 환경부에서 멸종위기동물 2급으로 지정한 동물이다.

 

당시 살던 집은 전세로, 집 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 주인은 도시에 살며 가끔 찾아와 집이 잘 있나 땅이 잘 있나 둘러볼 뿐이었다. 당연히 그는 맹꽁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는 이것이 걱정이었다. 맹꽁이는 자기가 사는 서식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태어난 습지 근처에 살며 낮엔 풀숲이나 땅속에 잘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 돌아다니고, 늦가을에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 겨울을 난다. 빨리 뛰지도 않고, 점프도 잘 안하고 어그적 어그적 기어다니는 맹꽁이는 자기가 태어난 곳이 세상의 전부인 양 그곳에 눌러산다. 그래서 난 이 묵논이 걱정이었다. 계속 묵논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멸종위기동물이 사는 곳이니 보호해달라 요청할 수도 없었다. 괜히 말했다가 집주인이 개발제한으로 이용가치가 줄어들어 땅값 떨어진다고 맹꽁이들을 내쫓을까봐 걱정되었다. 아니 요란떤다고 우리까지 내쫓을까봐 무서웠다. 용인에서 활동하는 선배 생태활동가에게 알렸다. 여기에 맹꽁이들 많다고. 그 사람은 용인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어떤 해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와서 사진만 찍고, 맹꽁이 알만 채집해 잡아가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중에 나온 그의 책 사진설명에서 백봉리 맹꽁이란 말만 있을 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엔 그깟 멸종위기동물 맹꽁이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용한 맹꽁이들처럼 묵논이 묵묵히 남아주길 바랐다.

 

문제는 우리가 그 집을 떠나고 나서 벌어졌다. 얼마 후 그 동네사람들이 마을가꾸기 사업을 한다는 목적으로 그 땅을 이용해버렸다. 그들이 보기에 그 묵논은 쓸모없는 땅으로 보인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는 잡목과 잡풀이 자라는 땅, 한심해보이는 그 땅을 그들은 산에서 가져온 흙으로 1미터 가량을 덮어 평지로 만들어벼렸다. 그리곤 마을을 예쁘게 가꿀 국화를 그곳에 심어버렸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나는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맹꽁이들은? 1미터 흙에 생매장당한 그 수많은 맹꽁이들이 생각나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멀리 가지 않는 습성상 그들은 그 곳에서 그냥 그렇게 웅크린채 멸종을 당했다. 그렇게 백봉리 묵논습지는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눈에 쓸모없는 땅이라해도 그 땅은 결코 쓸모없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을 살려내고 있었고 멸종위기까지 몰린 백봉리 맹꽁이들에게 유일한 서식지였다. 축축한 땅에서 메마른 평지가 되는 외형만 바뀌는게 아니라 생태계전체를 바꿔놓았다.

만약에 내가 그 집에 살면서 맹꽁이 이야기를 동네사람들에게 했다면 어땠을까? 땅주인에게 했다면 어땠을까? 언론에라도 알려 그 묵논을 보존하자고 했다면 어땠을까? 국화가 아니라 맹꽁이를 동네 자랑으로 삼았더라면 그 맹꽁이는 살아남았을까? 그 땅을 볼 때마다 수많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소심함이, 용기없음이, 비겁함이 결국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이젠 여름이 되어도 그 땅에선 맹 맹 거리는 맹꽁이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2. 

원삼면 두창리로 이사를 왔다. 이사함에 있어 여러 가지를 보고 결정을 했겠지만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맘에 드는 것이 두가지 있었다. 집 바로 옆에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서너 그루 서 있는 것과 집 뒤로 드넓게 펼쳐진 논이었다. 집 현관의 방향은 앞집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집 뒤로는 논들이 쫙 펼쳐져 있었다.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논에서 자라는 벼들을 보며 내 마음도 함께 싱그러움으로 풍족해졌다.

겨우내 조용히 있던 논은 흙을 갈아엎는 트랙터의 덜덜거림에 의해 깨어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진득한 흙속에서 잠자고 있던 개구리, 미꾸라지, 쌀미꾸리, 지렁이들은 화들짝 놀라 도망가기 바쁘다. 그러면 그 트랙터 뒤로 하얀 깃털의 백로와 노란머리를 가진 황로들이 줄줄이 따라다니며 보물찾기를 하듯 먹이들을 주워먹는다. 트랙터가 엄마가 되어 먹기좋게 반찬들을 차려놓으면 새들이 아이들처럼 따라 다니며 열심히 골라먹는 모양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아! 이제 논이 깨어났구나! 올 봄도 시작되었구나!’ 알게 된다.

5월은 모내기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모를 심는 모습은 이제 옛그림이 되었다. 기계로 하기에 반나절도 안되어 끝나버리지만 어제까지 흙과 물밖에 없던 논에 작은 모들이 심어져 있는 모습은 무척 신기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벼를 보는 건 참 즐거운 경험이다. 나는 생명의 근원을 물과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생명이란 것도 물에서 탄생했고 지금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건 초록 식물 덕이기 때문이다. 식물이 없다면 숨 쉬게 하는 산소도,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과 에너지도 없다. 물론 근원적 에너지는 태양에서 옴을 알지만 태양은 지구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선 접어둔다. 식물 또한 물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금 지구에서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건 물과 식물의 영역이다. 그런데 논은 그 두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곳이다.

논은 벼만 키우지 않는다. 물론 사람은 벼만 바라보지만, 물과 흙이 함께 있는 논은 그렇게 편협하지 않다. 원래부터 그 땅에 있던 생명들도 있고 다른 곳에서 찾아오는 생명들도 있다. 지렁이, 우렁이, 청개구리, 참개구리, 거미, 잠자리 애벌레, 미꾸라지, 쌀미꾸리, 물땡땡이. 물자라, 사마귀, 메뚜기, 물질경이, 보풀, 벗풀, 개구리밥, 피,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들이 자라고 있다. 물 안에만 있는게 아니다. 논과 논 사이 논둑에도 수많은 풀들과 곤충들, 땅속생물들, 그리고 하늘에서 날아오는 새들까지, 정말 백가지 종은 훨씬 넘어 보인다.

 

논도 습지이다. 그래서 습지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저수지로서 거대한 양의 물을 가두어 홍수를 방지한다. 약 30센티미터 깊이의 논은 장마철에 물을 저장해 홍수를 방지한다. 2019년 우리나라 논경지 면적은 약 83만ha로 저수면적이 24억톤 이상이다. 거대한 댐을 건설하는데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생각하면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이 작은 저수지 효과는 댐 건설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또한 논은 대기를 정화하고 온도를 낮춰준다. 여름철 빠른 성장을 하는 벼는 산소를 배출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탁월한 공기정화 기능을 한다. 논에 저장돼 있는 물은 증발하는 과정에서 뜨거워진 대기온도를 낮춰준다. 우리나라는 기후온난화로 급격한 온도상승을 겪고 있는 나라다. 그나마 전국에 있는 논들이 품고 있는 거대한 양의 물이 가파른 기온 상승의 기울기를 막아주고 있다.

 

논 중에서 유명한 논도 있다.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가 그 주인공이다. 매화마름은 논에 사는 식물로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이 매화마름이 군락을 이루는 강화도 길상면 초지마을의 논은 내셔널트러스트 시민유산 1호로 시민들의 성금 기부와 지역주민의 토지 기증으로 확보하여 보전하고 있다.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는 2008년 람사르 총회에서 논습지로서는 국내 최초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보전되고 있다. 당연히 친환경농법으로 여전히 논농사를 짓고 있고, 천연기념물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능구렁이, 금개구리, 맹꽁이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오월에 매화마름꽃이 피기에 질때까지 기다렸다가 6월에 모내기를 하고 친환경농법인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쌀을 10월에 수확한다고 한다. 시민과 주민과 자연이 함께 지켜가는 논이다.

이렇듯 단순히 쌀값으로만 논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단순히 우리가 먹는 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미 인간의 힘을 떠나 자연이 논생태계를 만들어 지금껏 꾸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논은 주인이 있다. 그 주인의 재산이라고 맘대로 할 수 있다. 생산성을 목표로 벼만을 편애하며 다른 생명을 내쫓거나 위협할 수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심지어 논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한다.

         

우리 집 뒤에 있던 커다란 논 세 개는 도시에 나갔던 논 주인아들이 돌아오면서 도시화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커다란 트럭들이 줄줄이 들어오며 흙을 마구 쏟아내었다. 뭰만한 초등학교 운동장만했던 논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평지가 되었다. 그리곤 거기에 집을 지었다. 그 집들엔 다른 곳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그들은 모르는 땅의 역사. 원래는 푸르른 논이었던 그곳에 대한 역사는 이젠 나만의 추억과 기억이 되었다.

그 논만이 아니었다. 수도권이면서, 아직 땅값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었던 우리 마을의 논들은 자꾸만 흙으로 메꾸어 졌다. 이제 산책을 나가면 “여기도 논이었고, 저기, 저기, 저기도 논이었어” 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논들이 평지가 되고, 집과 상가가 들어서면서 많이 사라져갔다. 때론 밭으로 변해 하우스가 들어서는 곳도 많아졌다. 예전엔 거의 논으로 둘러싸여있던 마을들이 이젠 군데군데 논이 남아있는 모양이 되어가고 있다. 농사를 짓지 않지만, 그 논의 주인들 상황을 모르지만, 논이 자꾸만 사라지는 시대에 사는건 불안하다.

 

논이 사라지는 건 대부분 용도변경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논으로 남아 쌀을 생산하는 것보다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서면 사람들은 서슴없이 흙을 퍼부어 메꾸어버린다. 논을 논으로 남아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고 논주인에게 양보와 이해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삶의 철학을 갖고 있는 소비자인 국민과 논생태계와 지속가능발전의 방향키를 쥐고 있는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논이 자꾸만 사라지면 한민족의 정체성도 사라진다. 나는 하루 세끼 밀가루만 먹고 살지 못한다.

 

3. 

조용했던 시골이 난리가 났다. 문수산 터널이나 신작로라 말하는 큰 길들이 뚫리기 전,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동네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원삼의 마을들은 6.25전쟁도 겪지 않았을 만큼 오지였던 동네다. 기껏해야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 자연이 좋아 전원주택 몇 채 생기는 게 마을에 큰 유입일 정도로 조용한 동네였다. 그런 이 동네에 하루 아침에 천지개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적인 규모를 내세우는 반도체산업단지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청사진으로 제시하는 자료들을 보면 독성리, 죽능리. 학일리 일부가 부지에 포함된다. 특히 독성리라는 마을은 대부분이 사라진다.

독성리에는 나의 친구들과 아들들의 친구들이 살고 있다. 자주 놀러가 마을을 뛰어다니며 놀았는데 이젠 그 놀이터도 사라진다. 수지에서 화훼농사를 짓다 개발에 밀려 쫓겨온 사람들이 간신히 독성리에 터를 잡고 다시 화훼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는데 또 쫓겨나게 생겼다. 이젠 더 이상 터를 잡을 힘도, 꽃을 기를 의지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신다.

독성리에는 구봉산 언저리에서 모여 흐르는 맑은 계곡도 있다. 이젠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일 때 반 친구 모두와 함께 속옷바람으로 함께 물놀이하던 계곡이다. 또 동네 친구들과 놀러가 한 여름 시원하게 발 담그며 수박을 깨물어 먹던 계곡이다. 물론 이곳의 주인은 따로 있다. 1급수에 사는 가재, 버들치. 강도내, 날도래. 엽새우, 산개구리들 수많은 물속 생명들이 주인이다. 그 계곡물이 흐르고 흘러 마을로 접어들면 봄 벚꽃 나무에 핀 꽃이 물 위에도 피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그림이 되었다.

 

한쪽엔 매년 도롱뇽이 찾아와 알을 낳고 올챙이가 되어 성체가 되면 다시 숲으로 돌아가게 산실이 되어주었던 웅덩이 둠벙도 있다. 산 아래 아직도 굽이굽이 계단식으로 된 논이 있어 산개구리, 두꺼비, 도롱뇽이 알을 낳고 여름엔 메뚜기, 잠자리가 가득했었다. 물을 먹으러 산에서 내려오던 고라니도 있고, 기다란 다리로 우아하게 걷던 백로, 왜가리는 매년 찾아왔었고, 겨울엔 떨어진 나락을 주워먹으러 물닭과 흰뺨검둥오리들도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이 모든 것들이 반도체 산업단지 아스팔트 시멘트 아래 묻히고, 파헤쳐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올 봄이 어찌나 아름답고 슬플지 모르겠다. 저 나무가 없어지기 전, 저 계곡이 사라지기 전, 저 논이 메꿔지기 전, 저 숲이 깍여나가기 전,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가슴에 새기기 위해 올 봄은 유난히 바쁠 것 같다.

 

 

처인구엔 습지가 많아서 몇 개쯤 사라져도 괜찮아?

기흥구 서천동 서농복합주민센터 공사 부지내 맹꽁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환경정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몇년에 걸쳐 그곳을 모니터링하여 결국엔 맹꽁이 서식지를 지켜냈다는 결과도 들었다.

내가 용인시 처인구에서 사는 십 여년동안 수많은 습지들이 사라져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습지들이 사라질지는 모르겠다. 도시는 수지는 기흥은 작은 둠벙 하나라도 지키자고, 논 작은 거 하나 지키자고 많은 사람들이 나서는데, 내가 사는 이곳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습지들이 사라지는데도 이젠 그러려니. 어쩔 수 없는 당연한 변화라고 받아들이며 무덤덤해져가고 있다.

누구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직 처인구는 시골이라 습지가 많지 않냐고, 경안천도 있고 청미천도 있고 수많은 논과 작은 계곡들 계곡들 그리고 저수지도 많지 않냐고.그러니 몇개 없어져도 괜찮지 않냐고.

어쩌면 많을 때 이렇게 관심이 없다가 막상 없어지고 다 없어질 때 즘 한뼘 같은 논이라도 지키고자 그토록 애쓰게 되지 않을까. 통속적인 말일지라도 '있을 때 잘 해' 라는 말이 참 가슴 아프다.

 

 

 2021. 용인문화원의 '용인문화' 봄호  vol 56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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