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추석, 서울 시댁에서 며느리로서 할 도리를 다 하고 다시 딸 노릇하러 청주 친정으로 가는 도중 짐을 챙기기 위해 잠시 백암의 우리 집에 들렀다.
이틀을 집을 비우고 다시 하룻밤을 보내고 와야 하는 차에 쫑쫑이의 집을 둘러보았다. 쫑쫑이는 우리가 키우는 개로 새끼를 밴 상태였다. 그날따라 쫑쫑이가 빙빙빙 돌며 안하던 짓을 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불안해 보인다. 그렇다고 개 때문에 엄마께 못간다 전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친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평소보다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 사이 쫑쫑이는 혼자서 간밤에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다. 너무나 미안했다. 깜깜한 밤에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했을 쫑쫑이에게. 그 때 태어난 쫑쫑이의 막내딸 흰뺨이만이 지금 우리와 살고 있다.
개에게 있어 암과 같은 중병인 ‘심장사상충’에 걸려 두 달이 걸리는 치료기간을 잘 견디어준 흰뺨이의 배가 수상하게 생각되어진 건 치료가 끝난 뒤 한 달이 지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젖꼭지가 커지고 배가 쳐지자 ‘혹시나?’ 하는 마음과 ‘치료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라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동물병원을 찾았다.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흰뺨이의 심장사상충을 치료해준 은인으로 진정 고마운 이였다. 섣불리 초음파를 하기엔 배가 아직 작고 수태라 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점이 있다며 추석 지나고 다시 오라했다. 임신이 아니면 복수가 차서 그런 거 일수도 있다는 걱정스런 말과 혹시 임신이라도 심장사상충은 새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다행스런 말씀을 전해들었다. 그렇게 흰뺨이의 배를 보며 더 이상 커지지 않는 것이 걱정스럽고 의심스러우나 귀여운 강아지를 상상하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2016년 추석의 새벽이 조금씩 조금씩 오고 있었다. 갑자기 흰뺨이의 집에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낑낑거리는 목소리가 흰뺨이가 아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나가보니 이제 갓 나온 까만 강아지가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결국 흰뺨이의 새끼 낳기가 시작된 것이다. 2시 30분 첫 새끼에 이어 2시 50분 흰뺨이를 닮은 하얀 새끼가 나왔다. 그리고는 3시 17분 세 번째 까만 새끼가 나왔다. 생명 탄생의 숭고한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큰 아들 호윤이를 깨웠다. 두 번째 새끼가 나올 때부터 본 호윤이는 강아지 새끼가 나오는 것을 보며 올챙이같다 했다. 개구리가 알을 낳을 때 투명한 알집에 감싸고 낳듯이 새끼가 나오면서 매끈하고 물컹한 막 같은 것을 뒤집어 쓴채 나오는 것을 보고 한 말이다. 나름대로 그것이 충격이었나 보다. 후에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흰뺨이는 계속 핥았다. 탯줄을 길게 달고 나온 새끼들을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세심하게 핥았다. 그러면서 새끼에게 묻은 막 같은 것과 피와 분비물, 탯줄까지 모두 핥으며 자신의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우리는 아침에 있을 추석차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흰뺨이를 홀로 남겨둔 채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해야 했다. 해가 뜨자 눈이 뜨이고 가장 먼저 흰뺨이에게 가보았다. 그 사이 하얀 새끼가 더 늘었다. 모두 네 마리를 낳았다. 까만 거 두 마리 하얀 거 두 마리. 너무 예쁘다. 모든 걸 혼자 해낸 흰뺨이도 예쁘다.
사람은 아기 하나를 낳을 때도 그리 아프고 큰 일이 되는데, 흰뺨이는 네 마리의 새끼를 혼자 낳았다. 그리고는 그 뒤처리까지 깨끗하게 혼자 다 하였다. 사람도 자연에 있으면 가능했겠지? 생각하니 막막해진다. 생명의 본성보다는 두려움이 더 커진 현세다.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 알려지면 천적들로부터 위협을 당할 까봐 동물은 새끼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새끼를 낳으며 나온 분비물들과 새끼에게 묻어있는 것들을 모두 핥아 없애 버린다. 심지어 새끼가 싸는 똥과 오줌까지도 다 핥아 먹어버린다. 새들은 새끼가 똥오줌을 싸면 잘 물어 멀리 내다 버린다. 이 모든 것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안다. 위대한 모성이다.
추석날 태어난 아이가 다시 추석날 엄마가 되었다. 아직 나를 보면 아이처럼 달려드는 흰뺨이를 보며 “에고, 애기가 애기를 낳았네” 한다. 고기 팍팍 넣고 미역국 맛나게 끓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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