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12.29 09:50
필자에게 겨울은 파란 하늘에 높이 뜬 독수리를 본 순간부터 시작된다. 양 날개를 활짝 편 채 날개 끝 깃털들이 하나하나 뻗어있는 검은 독수리의 그 우아하면서도 위엄 있는 비행을 봐야만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그렇게 독수리는 찬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겨울철새이다.
용인시 처인구 남동쪽은 산과 강, 그리고 들이 함께 어우러져 생태적으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 그러니 먹이사슬계의 상위층인 새들도 많고, 그 중 가장 으뜸인 수리과의 수리들과 매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들을 우리는 맹금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24종의 맹금류가 있는데, 대부분 고기를 뜯어먹기 좋게 끝이 구부러진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예리한 눈을 갖고 있다. 곤충이나 개구리, 물고기, 새나 쥐, 토끼 등 작은 동물들을 직접 잡거나 사체를 먹는다.
시골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을, 숲을, 들판을 보는 눈이 생겼다. 그러면서 청량한 겨울 하늘 공기 속에서 독수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높은 하늘에서 큰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모습을 보는 건 마치 대리만족을 하는 기분으로 부럽게 쳐다보게 된다. 얼마나 자유롭고 시원할까!
큰 아이가 서너 살 때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 소 목장이 있었는데 인심 좋은 목장 주인이 독수리가 찾아오는 겨울이 되면 너른 들판에 닭고기를 던져놓았다. 그래서인지 그 목장 근처 하늘에는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나는 것을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어느 날 그 주변 시골길을 가고 있었는데, 길 한가운데 뭔지 모를 동물 사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고기를 먹기 위해 대여섯 마리의 독수리가 모여 있었고, 주변에 눈치 보며 낮게 나는 독수리들과 멀리서 군침을 흘리는 듯 한 독수리까지 합하면 족히 이십여 마리는 돼 보였다. 내려앉은 독수리들과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 정도. 그렇게 많은 독수리를 가까이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차에서 내렸지만 차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모습에 겁이 나고 크기에 압도당했다. 독수리는 몸길이가 1미터 정도에 날개를 활짝 펴면 2미터 50센티미터에서 3미터가량 된다고 한다. 아이는 차안에 있었는데, 필자는 “절대 나오지 마, 문 열지 마” 소리 지를 뿐이었다. 옛 말처럼 서너 살 아이는 거뜬히 체갈 만한 위협적인 독수리들이었다. 다행히 독수리들은 우리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독수리와 치른 대면식은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강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낮은 하늘에서 독수리는 움직임이 둔하고 느린 편이다. 홀로 있을 때 떼로 덤벼드는 까치와 까마귀들에게 쫓기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날아올라 높은 하늘에 떠 있을 땐 날개를 활짝 편 채 바람을 타며 날기도 하고, 강한 날갯짓으로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날기도 한다. 보통 하늘에 떠 있을 때 보면 혼자보다 두세 마리 또는 대여섯 마리씩 무리 지어 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먹이가 많을 때는 더 많이 모여든다. 살아있는 먹이를 사냥하기보다 죽어있는 동물사체를 찾아 먹는다.
몇 년 전 청미천 농로를 따라 걷고 있을 때, 처음 보는 독수리 모습에 정말 넋을 잃고 말았다. 까만 날개와 몸통을 가졌지만 하얀 꼬리 깃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처음 보는 우아한 모습에 독수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뒤쫓다가 그만 목이 젖혀지며 넘어질 뻔했다. 그정도로 넋을 잃고 쳐다볼 뿐이었다. 흰꼬리수리였다. 며칠 뒤 한강에 흰꼬리수리가 나타났다며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TV에서 보며 반가웠다. 그 후로 또 본 적이 없어 아쉽다.
독수리와 흰꼬리수리 모두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최근에 독수리들이 농약중독으로 떼죽음 당했다는 뉴스를 봤다. 살기 좋은 땅으로 생각하고 날아온 그들에게 이 땅이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는 생태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맹금류 중에서 자주 만난 독수리와 말똥가리 그리고 황조롱이와 참매를 좋아한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삶이 있다면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특히 맹금류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강함보다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에 더 끌린다. 물론 그들은 치열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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