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0.10.28 10:05
노랗고 빨갛게 예쁘게 피는 국화 꽃송이들이 아니더라도 가을에 예뻐 보이는 풀들이 있다. 꽃이 지며 만들어낸 열매와 씨앗들이 무리지어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듯 보이는 풍경이 파란 가을 하늘이 배경이 될 땐 예쁨을 넘어 멋짐으로 보인다. 평소엔 그냥 길쭉하게 자라는 풀떼기처럼만 보이더니 가을이 되면 산꼭대기 평원에서, 강가 둑에서 여럿이 떼로 모여 장관을 연출하는 억새와 갈대가 그들이다. 그렇게 가을엔 국화꽃놀이, 단풍놀이도 가지만 억새와 갈대를 보러 가기도 한다.
전국에는 억새평원이라 해서 산꼭대기가 평평하게 생긴 곳에 억새가 모여 장관을 이루는 곳이 여럿 있다. 그 중에 밀양 사자평, 창녕 화왕산, 장흥 천관산, 포천 명성산, 그리고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등이 유명하다. 용인에도 처인구 와우정사와 포곡 백련사 주변의 억새가 아름답단 소문이 있다. 이외에도 용인자연휴양림이나 한택식물원의 억새밭도 멋진 추억거리를 쌓을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이렇듯 억새는 산에 가야 볼 수 있다.
갈대는 주로 강이나 하천에서 많이 살기에 우리나라 웬만한 강에 가면 그 장관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중에 유명한 것이 국가정원인 전남 순천만 갈대밭과 영화 ‘JSA공동경비구역’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금강유역인 충남 서천 신성리 갈대밭이다. 꼭 규모로만 보지 않는다면 동네 하천 주변에서 무리지어 있는 갈대들을 보며 잠시 쉼과 여유를 느끼는 낭만을 가지는 것도 좋다. 몇 년 전 동네 하천인 청미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며 본 갈대들이 아직도 기억 속에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억새와 갈대는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달뿌리풀은 좀 다르게 생겼다. 갈대와 억새가 땅속 뿌리줄기에서 긴 잎들이 빽빽하게 뭉쳐 나와 자란다면, 달뿌리풀은 곧은 줄기가 있고 거기에 어긋나게 잎들이 줄기를 감싸며 나와 자란다. 그래서 달뿌리풀은 키가 커 보인다.
옛날에 억새와 갈대와 그리고 달뿌리풀이 각자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억새는 높은 곳을 좋아했다. 산마루로 올라가니 멀리까지 시원하게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이 좋았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갈대와 달뿌리풀은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억새는 억세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억센 억새는 산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억새와 헤어진 갈대와 달뿌리풀은 갈림길에 다다랐다. 앞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달뿌리풀은 물을 거슬러 위로 달려갔다. 한참을 달리다 다다른 곳이 물의 상류 계곡 근처, 물을 좋아하는 달뿌리풀은 그렇게 계곡에 뿌리를 내렸다. 두 친구와 헤어진 갈대는 물의 흐름을 따라 갈 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작은 냇가를 지나 큰 강을 만났다. 그렇게 넓은 물을 만나는 것이 갈대는 좋았다. 이젠 그만 가기로 하고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억새와 갈대와 달뿌리풀을 배우게 됐을 때 어떤 것이 갈대이고 억새인지, 달뿌리풀은 또 뭔지 헷갈렸다. 그러다 이름과 사는 곳의 특성에 대해 알려주는 우스개 같은 옛이야기 하나로 헷갈림은 멈추게 됐다. 메마른 산에서 보는 건 대부분 억새이고, 계곡이나 작은 냇가 상류에서 보는 건 달뿌리풀이고, 물이 많이 합쳐져 넓은 냇가와 큰 강에서는 갈대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갈대와 같은 장소에서 사는 억새 종류도 있다. 이를 물억새라고 부른다.
억새는 잎 가운데 잎맥이 흰색으로 곧게 나있어 이름 느낌대로 좀 억세 보인다. 반면 갈대는 그냥 초록색 긴 잎이다. 달뿌리풀은 줄기를 감싸고 있어 구분이 확연하다. 또한 계곡을 따라 달뿌리풀의 뿌리가 달려가듯이 뿌리줄기를 쭉 뻗어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 아. 이래서 달뿌리풀이구나 알 수 있다. 아이들과 냇가에 갔을 때 달뿌리풀 잎으로 나뭇잎배를 만들어 띄우고 놀았다. 잘 접은 나뭇잎배가 넘어지지 않고 잘 흘러가면 아이들은 같이 따라가며 환호성을 지른다. 마치 그 배에 타고 여행이나 가는 듯 좋아한다.
필자에겐 너무 옛날 노래라 원곡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지만, 첫 구절만은 여러 사람을 통해 들어본지라 알고 있는, 너무도 유명한 박영호 작사 고복수 노래의 ‘짝사랑’이라는 노래에서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으악새가 무엇이냐에 대해 아직 결론이 안날만큼 갑론을박 말이 많다. 으악새가 억새의 방언이라 해서 풀이라는 얘기가 있고, ‘으악’ 하고 소리를 내는 백로 또는 왜가리 같은 새라는 의견도 있다. 새가 맞다는 사람들은 2절 처음에 뜸북새가 나오니 요즘말로 라임을 맞추어 새가 맞다고 한다. 그런데 1·2절을 굳이 맞춘다면 3절도 맞춰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3절은 ‘아 단풍이’로 시작한다. 그래서 뜸북새로 인해 으악새가 반드시 새라고 결론 짓기에는 좀 억지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1절 가사에 나오는 여울과 마지막에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메입니다’로 끝나는 것으로 봐서 강가에서 바람에 서걱거리는 억새(갈대를 억새로 생각했을 수도 있고, 또는 물억새를 그냥 억새로 봤을 수도 있다)를 보며 가을 강가에서 세월의 야속함과 첫사랑의 아련한 슬픔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을까? 작사가를 만나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만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각자 느낌대로 생각해보면 그게 답일 듯. 가을은 풀잎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충분히 젖어드는 감성의 계절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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