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겨울엔 겨울나무를 보러 숲에 가자

by 늘품산벗 2021. 7. 29.
  •  입력 2019.12.19 09:42

 

오리나무   물오리나무   물박달나무(사진 왼쪽부터)

 

직업상 숲에서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묻는다. 겨울에도 숲에 가느냐고. 물론이다. 겨울엔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것을 찾아 간다. 그동안 울창한 나무숲에 가려져 있던 울퉁불퉁한 산 표면의 모양이 드러난다. 어디가 움푹 들어간 골짜기이고, 볼록 솟아난 능선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나무들 사이로 저 멀리까지 산의 속살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거진 풀숲에 가려져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숲 이곳저곳을 직접 보며, 산의 살 내음을 맡으며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좋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겨울이 되어 잎들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 때 비로소 나무의 민낯이 보인다. 그동안 싱그런 잎, 화려한 꽃, 앙증맞은 열매에 시선을 빼앗겨 보지 못했던 나무 껍질과 줄기와 전체적 형태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아! 다 다르구나! 겨울나무를 보는 즐거움은 바로 서로 다름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자세히 봐야만 알 수 있는 세밀한 차이를 알게 됐을 때, 친구 사이에 뭔가 둘만이 공유하는 추억이 있어 우정이 돈독해지듯이 나무와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나무 껍질은 사람의 피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속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고, 숨을 쉬는 구멍이 있다. 이 두 가지 역할을 해내기 위해 각자 취향대로 사는 곳의 환경에 맞게 오랫동안 겉모양을 다스려왔다. 그 결과 나무들마다 다른 겉껍질을 갖게 됐다. 오리나무 중에서 물가 습지나 골짜기를 좋아하는 오리나무와 오히려 메마른 곳을 좋아하는 산오리나무라고도 불리는 물오리나무를 구분할 때, 나무 껍질을 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오리나무는 거칠고 작은 조각으로 갈라져 울퉁불퉁한 검정에 가까운 짙은 색의 껍질에 둘러싸여 있다. 반면 물오리나무는 밋밋한 밝은 회색 껍질에 중간중간 커다란 눈처럼 생긴 무늬가 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은사시나무

 

물박달나무는 껍질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이 벗겨져 너덜너덜 붙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겨울 숲의 신사라고 불리는 자작나무는 하얀색 껍질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강렬하다. 같이 흰색 껍질을 가졌지만 은사시나무는 마름모꼴로 껍질이 갈라지는 작은 무늬가 잔뜩 있어 쉽게 구분된다. 굴참나무는 나무껍질이 세로로 깊게 갈라지며 울퉁불퉁 골이 파인 듯한 모양을 하고 있고, 아까시나무는 자라면서 껍질이 Y자 모양으로 갈라진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껍질이 붉은색을 띄는 반면, 북미에서 들어온 리기다소나무는 짙은 회색이고, 뽕나무와 황벽나무는 노란색이다. 물푸레나무와 두충나무 껍질엔 하얀 동글동글한 무늬가 있다. 이런 것을 찾다 보면 겨울 숲에서도 심심할 틈이 없다. 

나뭇잎이 사라지자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나무의 겨울눈이 있다. 나무마다 제각각 다른 모양의 겨울눈을 갖는데 이것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털이 잔뜩 나 있는 목련의 겨울눈, 끈적끈적한 액체로 둘러싸인 칠엽수의 겨울눈, 마치 미니족발처럼 생긴 단풍나무, 귀여운 나방이나 나비 애벌레의 얼굴처럼 생긴 물푸레나무 등 다양한 겨울눈을 살펴보며 무엇과 닮았는지 연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 

겨울눈은 새 잎, 또는 새 꽃을 품고 있는데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펼쳐지며 생명력을 뿜어내게 된다. 놀라운 것은 겨울눈이 한창 더운 여름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새 잎과 새꽃을 피워내고 어느 정도 나무의 성장이 진행됐을 때 다시 겨울눈을 만들어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하고 생장을 이어나가기 위한 장치이다. 한창 잘 되고 있을 때 안 될 상황을 예비하며 준비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린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부지런하고 치밀한 나무다.

겨울엔 새들이 잘 보인다. 다른 계절엔 잎이 무성한 나무 덕에 나무 위를 보기 쉽지 않은데 겨울엔 휑하니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잘 보인다. 박새, 곤줄박이, 딱새, 딱따구리, 직박구리, 동고비, 어치는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숲의 터줏대감들이다. 가끔 황조롱이나 말똥가리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겨울엔 멀리서 온 손님인 독수리도 볼 수 있다. 하늘 높이 떠서 날개를 쫙 펼치고 있는 말똥가리나 독수리를 보면 필자는 가슴이 막 뛴다. 다음 생엔 꼭 저 말똥가리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나무가 무성한 숲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겨울나무’라는 노래다. 겨울나무를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게 바라보는 작사가의 느낌이 들어있는 가사이다. 그러나 겨울나무는 결코 쓸쓸하거나 외롭지만은 않다. 오고야 마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꿋꿋이 견디고 준비하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 그런 겨울나무를 만나기 위해 겨울에도 숲에 가야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