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12.31 14:35
2019년을 이틀 남겨놓고 올해의 마지막 신문이 발행된다. 2014년부터 6년에 걸쳐 ‘숲과들의 나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용인이 위치한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고, 떠오르지 않는 생각과 사진의 부족함에 머리를 쥐어짜고 컴퓨터를 헤매다녔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무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이 배우고 감동받았다. 나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머릿속에선 숲의 모습이 자라락 펼쳐졌고, 푸르름 속에 들어가 있는 필자를 상상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숲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2019년 어떤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신갈나무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나무, 숲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신갈나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자.
몇 년 전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여러 단체에서 앞다퉈 추천 도서로 선정했고 미디어에서도 많이 언급됐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갈나무 입장에서 싹이 나와 큰 나무가 되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삶의 과정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써놓은 책이었다. 이 책 덕분일까? 사람들과 함께 숲에 가서 신갈나무를 알려주면 “아아~ 이 나무가 신갈나무에요?” 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엔 ‘신갈나무 알림기’를 써 보고자 한다.
숲에 들어갈라치면 제일 먼저 작은 나무와 풀숲으로 시작되는 숲정이를 지나가게 되고, 그 이후 큰 나무들이 어우러져 하늘을 가리는 숲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곳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신갈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작은 산에 올라도, 큰 산에 올라도, 유명한 국립공원엘 가도 가장 많이 보이는 나무가 신갈나무다. 살면서 가장 많이 봤을 나무지만, 잘 알지 못했기에 그 이름조차 낯선 사람도 있다.
옛날 짚신을 신던 시절 신갈나무 잎을 뜯어 거친 짚신 바닥에 깔창처럼 깔았다고 해서 신깔, 신갈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럴 듯하다. 그만큼 신갈나무 잎은 크고 넓적하다. 보통 어른 손바닥만한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 여울져있고 잎자루가 짧아 잎이 나뭇가지에 딱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비슷한 모양의 잎을 가진 떡갈나무는 잎 뒤에 노란 털이 있어 뒷면이 거칠고 노랗게 보인다. 그에 비해 신갈나무는 털이 없어 앞뒤가 비슷하고 맨질맨질하다. 또 비슷한 모양의 잎 중에는 갈참나무도 있는데, 잎자루가 길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으로 구별된다. 이처럼 신갈나무 잎만 잘 봐도 숲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도토리가 달리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는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참나무들이다. 상수리나무는 마을 주변이나 산 낮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고, 경사가 심하고 건조한 지형의 남쪽 사면에선 굴참나무를 많이 보게 된다. 떡갈나무는 신갈나무처럼 많이 보이지 않지만 조금 높은 지형에서 볼 수 있다. 떡갈나무보다 신갈나무가 더 번성할 수 있었던 건 더 낮은 지역부터 높은 지역에까지 살 수 있는 마당발 같은 폭넓은 생존지역 때문인 것 같다. 졸참나무와 갈참나무도 가끔 그러나 희귀하진 않게 볼 수 있는 참나무들이다. 아무튼 신갈나무가 가장 많이 있는 건 눈으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봄이 되면 신갈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들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게 된다. 작은 도토리가 큰 나무가 되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숲에서 낙엽들 사이로 뿌리 내린 도토리를 발견하게 되면 아주 감동적이다. 딱딱한 껍질이 벌어지며 사이로 한줄기 뿌리가 땅으로 내려있고 도토리가 마저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연한 떡잎이 솟아난다. 숲의 시작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멋진 광경이다.
그렇게 자란 신갈나무는 매년 연노란 새순으로 봄 숲을 장식하고, 꽃매듭이 중간중간 있는 것처럼 늘어진 꽃을 피운다. 여름엔 초록으로 온 산을 덮어버리며 열매를 맺고, 가을이 되면 노랗게 단풍이 들어 갈색으로 잘 익은 도토리들을 떨구고, 마침내 마른 잎까지 떨어지면 가지만 있는 맨몸으로 겨울을 맞는다.
겨울 숲에서 신갈나무를 찾는 방법은 수피, 즉 나무 껍질을 보고 찾는 방법이 있다. 신갈나무는 어릴 땐 밝은 회색의 맨질맨질한 껍질을 갖고 있는데, 빛을 받으면 은빛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자라며 이 껍질들이 세로로 길게 갈라지면서 안에 어두운 갈색 속살들이 터져 나오고 거칠거칠한 껍질을 갖게 된다. 이 어둡고 울퉁불퉁 거친 껍질들 사이로 애초 반짝이는 은빛의 껍질들이 남아 세로로 길게 붙어있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겨울 신갈나무 찾기의 단서가 된다.
산을 오르면 많은 나무 사이에서 길게 뻗은 큰 신갈나무들을 보게 되고, 그 아래 그늘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고 있는 작은 신갈나무들도 볼 수 있다. 신갈나무는 햇빛이 부족한 음지에서도 잘 자라고, 햇빛이 충분한 곳에서는 더 잘 자란다. 햇빛을 많이 봐야만 잘 자라는 소나무들에 비해 생존력이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키 경쟁을 해 신갈나무가 위에 서게 되면 소나무들은 햇빛을 받지 못해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우리나라 숲 능선이나 정상 부근에서야 소나무를 볼 수 있게 된 이유이다. 더구나 기후변화로 날씨가 점점 따듯해져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소나무에겐 더욱 안 좋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안타깝다.
지금은 우리나라 숲의 최고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갈나무이지만, 언젠가는 다른 나무가 신갈나무의 점령지를 쳐들어와 판도를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자연은 누구 하나만을 지속적으로 우위에 놓지 않는다고 한다. 나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역사적 증거를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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