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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하늘을 향한 손짓, 능소화

by 늘품산벗 2021. 7. 19.

하늘을 향한 손짓, 능소화

  •  입력 2018.07.24 09:44

 

 

용인농촌테마파크에 능소화가 피었다. 따가운 햇살의 뜨거운 여름날을 견디고 있던 차에 큼지막하게 피어난 능소화는 화끈한 시원스러움으로 다가온다. 능소화 나무는 갈색 줄기가 서 있고, 위에 초록 나뭇잎이 얹혀있는 기본 공식을 깨고, 온통 초록 잎으로 둘러싸여 초록기둥으로 보인다. 사방으로 뻗은 나뭇잎과 줄기가 공포영화 속 괴물을 떠올리듯 기괴해 보이지만 크고 아름다운 주황색 꽃에 이내 마음을 열고 다가서게끔 하는 매력적인 꽃나무이다. 

능소화는 덩굴나무이다. 덩굴나무는 제 혼자서 서질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칡이나 등나무처럼 제 줄기로 누군가를 휘감아야만 위를 향해 자랄 수 있는 덩굴나무가 있고, 포도나무나 머루나무처럼 덩굴손을 뻗어 누군가를 잡고 올라가는 나무도 있다. 담쟁이처럼 줄기에서 뻗은 빨판으로 담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 지지하고 올라가는 나무도 있다. 능소화는 담쟁이와 비슷한 방법을 택했다. 줄기에서 지네발처럼 생긴 흡착뿌리가 나와 담장이나 나무줄기 따위의 다른 물체에 붙어 지지하고 올라간다. 

꽃은 한여름에 피는데 잎이 자라는 가지 끝에 여러 송이가 차례를 이뤄 피고 진다. 아이들 손바닥만큼 큰 주황색 꽃은 깔대기처럼 점점 넓어져 다섯 갈래로 갈라진다. 처음부터 꽃잎이 나뉘어져 있는 꽃을 갈래꽃이라 하고, 나팔꽃 능소화처럼 가운데가 붙어있어 통처럼 생긴 꽃을 통꽃이라고 한다. 꽃 안쪽에는 줄무늬가 새겨져 있고 암술과 수술이 있는데 수술에 붙어 있는 꽃가루를 확대해서 보면 뾰족한 갈고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나 꽃 향기를 맡겠다고 코를 들이대다가 꽃가루가 얼굴에 묻기라도 하면 눈에 들어가 위험할까봐 조심하라고 하는 꽃이기도 하다. 

중국이 고향인 나무이긴 하나 워낙 오래전에 들어오다 보니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됐다. 식물마다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부분이 달라 그에 맞춰 이름이 불리어지곤 하는데, 주황색 큰 꽃이 인상적이라 색깔과 모양에 초점을 맞춰 ‘금등화’라고도 불렸다. 또한 서양에서는 ‘차이니즈 트럼펫 클리퍼’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꽃 모양을 보고 트럼펫을 떠올리며 불렀으리라.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도 한다. 양반이 아닌 집에 이 나무가 있으면 관가로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고 한다. 여성들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아 집에는 심지 않고 남성들의 공간인 서원이나 향교 등에만 심게 한 배롱나무처럼, 능소화도 누군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구설수가 참 어이가 없다.  

능소화(凌霄花)란 이름의 한자를 풀면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란 뜻이다. 이는 하늘을 우습게 알아 넘어선다는 뜻이 아니라 담장이나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하늘 높이 자라 꽃을 피우는 능소화의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인 듯싶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능소화 줄기의 모습을 보며 님에게 닿고자 했던 소화의 애처로운 사연이 떠오른다. 

옛날 어느 궁궐에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어쩌다 임금의 사랑을 받게 돼 궁궐 어느 한 곳에 처소가 마련됐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소화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혹여 임금이 찾아올까 싶어 담가를 서성거리고 담 너머로 하염없는 눈길을 보내며 애만 태우던 어느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에 걸려 쓸쓸히 죽어갔다. 그 후 소화의 처소를 둘러친 담을 덮으며 주홍빛 꽃이 곱게 피어났다. 이 꽃이 바로 능소화라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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