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고급 나물 오이순나물, ‘고광나무’
- 입력 2018.05.30 09:22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첫 해 이맘때 쯤, 우리보다 먼저 마당에 자리 잡고 있던 나무에 하얀 꽃이 폈다. 처음 보는 나무의 꽃이 어찌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지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옆집 할머니가 툭 던지시듯 내뱉고 가셨다.
“거 오이순나물이여. 봄에 해 먹으면 아주 맛나. 고급이지. 고급 나물”
오이순나물? 처음 듣는 나물 이름과 나무에 나물 이름이 붙은 것에 호기심이 발동해 열심히 검색했다. 그렇게 찾은 이름이 바로 고광나무다. 고광나무는 우리나라 숲 골짜기에서 자라는 나무로 물과 낙엽이 풍부한 기름진 땅을 좋아한다. 그런 자연의 나무가 우리 집에 있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동네를 둘러보니 동네 할머니들이 사시는 여러 집에서 고광나무를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동네 이름이 ‘밤디’, ‘율곡’이라고 불리는 사연처럼 이곳이 산 밑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곳곳에서 고광나무가 살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이 고광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고광나무가 사는 곳에 마을이 생긴 것이 아닐까.
옆 집 할머니 댁에도 고광나무가 있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봄에 이렇게 순이 올라올 때, 이렇게 따서 나물로 무쳐 먹는 거여. 맛나 엄청. 데쳐서 물에 잠깐 우렸다가 무쳐 먹는데 오이향이 나. 그래서 오이순나물이지. 나물 중에서 고급 나물이여”
할머니께서 고급 나물이란 말을 자주 하셔서 고급 나물 하다가 고광나물이 됐나보다 싶었다. 다른 자료에서는 고갱이를 먹는다고 고광나무라고 했다고 한다. 고갱이는 배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건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국어시간에 배웠던 것이 생각났다. 고갱이를 현대말로 고쳐보면 ‘핵심’, ‘정수’와 그 뜻이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 봄에 순이 나올 때 보면 가지 끝에서 돋아나는 마주나는 두 잎을 통째로 꺾어서 나물로 무쳐 먹는 게 고갱이나물인 셈이다. 그만큼 새 순이 중요하단 말일까? 그래서 너무 많은 고갱이들을 먹어버리면 그 해 꽃이 덜 핀다고 한다.
필자는 차마 그 새 잎을 싹둑 꺾어버릴 수 없어서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고급 나물이란 말에 자꾸만 솔깃해지는 것을 봐선 내년 봄이면 아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가 날 것 같다가도, 우아하고 청초하게 피어나는 하얀 꽃을 보면 다시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입을 만족시키기보다 꽃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지는 요즘이다.
고광나무 꽃잎은 네 장으로 둥근 모양이고 노란 수술이 많다. 그냥 꽃만 보면 병아리꽃나무나, 바람꽃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꽃 모양도 예쁘지만 향기도 아주 좋다. 곁에만 가도 은은하고 그윽하게 퍼지는 향이 아주 매혹적이다. 잎은 마주나기로 나는데 만져보면 뒷면에 털이 느껴진다. 새순이 올라올 때는 하얗게 털이 덮여 있다가 자라면서 사라지고 뒷면 잎맥에만 남아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은 가지에도 털이 있고 꽃대와 꽃가지, 꽃받침에도 잔털이 있다.
키를 높이 키우지 않고 잔가지를 많이 내어 옆으로 풍성하게 자라는 고광나무는 마당에 키우기에 참 좋다. 꽃이 지고 나면 삐죽 솟아나온 새 가지들을 꺾어 땅에 꽂아놓아도 뿌리가 잘 내려 번식시키기에 쉬운 꽃나무다. 동네 할머니들과 친한 고광나무. 우리 젊은 사람들도 아이들도 친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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