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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노랑 꽃다발의 선비나무 ‘회화나무’

by 늘품산벗 2021. 7. 19.
  •  입력 2018.08.17 20:54

 

처음 봤을 땐 눈에 익숙한 아까시나무인줄 알았다. 아까시나무 잎처럼 생긴 잎을 가진 나무여서 별로 눈여겨보지 않고 그러려니 넘어갔다. 두 번째 봤을 때 아까시나무 꽃 비슷한 꽃이 한 여름에 피어 이상하게 쳐다봤다. 더구나 꽃잎도 노란색이라 아까시나무가 아닌 것을 알았다. 세 번째 봤을 땐 열매의 모습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세상에, 나무에 초록색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가 달리다니!’

 

이렇게 필자에게 웃음을 주며 다가온 회화나무는 알고 보니 함부로 웃으면 안 되는 근엄한 나무였다. 중국이 원산지인 회화나무는 우리나라 숲에선 자생하지 않고 누군가 이유와 의미를 두고 심었던 나무이다. 더구나 그 장소가 임금이 살던 궁이나 고관대작들이 살던 저택, 학자들이 뜻을 품었던 서원, 그리고 각별한 염원을 담아 집 앞마당에 심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회화나무의 고향인 중국의 풍습과 관련이 깊다. 회화나무의 중국 이름은 ‘괴화(槐花)나무’로 표기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중국 발음과 비슷한 회화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궁궐에 회화나무를 심어 나라의 높은 벼슬의 관료를 상징하는 나무로 삼았다. 또한 회화나무 꽃이 필 무렵 과거시험을 치르니 합격을 기원하는 나무가 됐다. 그러다 사대부나 성리학자의 무덤이나 집에 이 나무를 심으며 학자수(學者樹) 또는 선비나무라 불리게 됐다. 재미있는 건 영어로는 차이니즈 스칼라 트리(Chinese scholar tree)라고 해서 서양에서도 학자수로 통한다는 것이다. 또한 잡귀가 붙지 않는 나무라고 믿어 회화나무 세 그루를 집 안에 심어두면 그 집에 복이 찾아온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회화나무가 유명한 곳은 서울 창덕궁이다. 이곳의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동궐도’라는 궁궐 모습을 그린 옛 그림에도 남아있는 나무다. 그 나이가 최소한 200살이 넘어 어떤 나무는 600살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 서원이나 유교 관련 유적지에 많이 심었는데 천원짜리 지폐에 나와 있는 도산서원의 회화나무는 서원을 지은 퇴계 이황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그러나 안타깝게 이 나무는 늙음으로 인해 고사했다. 이외에도 고산 윤선도가 거처한 전남 해남의 녹우당에는 400살 먹은 회화나무가, 경북 경주시 안강에 위치한 옥산서원,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등 곳곳에 노거수로 유명한 회화나무가 많다. 예전에 처인구 모현읍 갈담마을에서 200년이 넘은 회화나무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험한 신비스러움과 쭉쭉 뻗은 가지의 기상에 한참을 우러러 본 행복한 기억이 있다.

아까시나무와 닮은 것처럼 둘은 비슷한 가족이다. 콩과에 속하며 나무 높이가 30m까지 자라는 큰키나무로 아까시나무와 비슷한 잎을 가졌지만 줄기에 가시가 없다. 새로 나는 작은 가지들은 문지르거나 상처를 내면 냄새가 난다. 한여름 8월에 노란 꽃이 다발로 피어나며 이 꽃이 지면 가을에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 마치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엔나 소시지가 줄줄이 매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콩깍지를 꺾으면 끈적끈적한 즙액이 나오는데 옛날에는 이 즙액을 접착제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나뭇가지를 괴지, 꽃을 괴화, 열매를 괴실이라 해서 모두 약으로 사용한다. 꽃은 노란색을 내는 염료로 사용한다.

회화나무와 관련해 괴안몽(槐安夢)이나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이야기가 있다. 풀어보면 회화나무 아래 꿈, 남쪽 나뭇가지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한때의 꿈을 이야기한다. 옛날 중국 당나라 때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괴안국 사신의 초청을 받고 그의 집 마당에 있는 회화나무 아래 동굴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곳에서 공주와 결혼도 하고 태수가 돼 호강을 누리다가 어느 날 깨어보니 바로 자기 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당으로 내려가 회화나무 아래를 헤쳐 보니 개미집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일장춘몽’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 꿈이다. 미련만 갖지 않는다면 말이다.

원삼에서 안성으로 넘어가는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안성 어디쯤 회화나무가 가로수로 쭉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맘때 초록과 노랑의 조화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풍경이 아주 아름답다. 용인의 가로수가 이팝나무 하나로 획일화 되고 대체되는 것을 보며 우스갯소리로 ‘가로수도 유행이야? 이팝나무 키운 조경업체만 대박나네’ 했었는데, 바람이 있다면 용인의 가로수가 특색 있게 다양했으면 좋겠다. 마을 이야기와 맞춰서 어울리는 나무들을 심으면 좋겠다. 그래서 배움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 회화나무들이 어울려 노란 꽃을 피워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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