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8.07.10 10:11
그날은 무슨 맘을 먹었던 것일까? 쌩쌩 뚫린 터널로 통과하지 않고 박달재 옛길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차를 타고 넘어오던 중이었다. 길가에 보라색 꽃이 눈에 띄어 잠시 차를 멈추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딱히 보라색이라고 파란색이라고 규정짓지 못하는 오묘한 색깔이었다. 그 후로 그 꽃을 향한 짝사랑이 시작됐다.
주로 큰 나무 그늘 밑에서 1미터밖에 자라지 못하는 키 작은 나무이지만 여름철 우리 숲 곳곳에서 아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산수국’이다. 산에 사는 수국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국은 알아도 산수국은 이름을 듣자 갸웃거린다. ‘그런 꽃이 있었어?’ 하며. 하지만 실제로 산수국을 숲에서 보게 되면 참 아름답고 예쁜 꽃이라는 생각에 누구나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수국을 꽃집이나 화단에서 처음 만난다. 마치 핸드볼공 만한 크기로 동그랗게 핀 꽃다발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꽃잎이 많고 꽃잎 안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깔끔함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알까? 그 수국이 불완전한 모습의 꽃이라는 것을. 수국은 산수국의 가짜 꽃을 중점으로 육종해 관상용 꽃으로 만든 것이다. 수국의 원형이 산에 살고있는 산수국이다. 산수국은 암술과 수술을 가진 작은 진짜 꽃과 그것들 없이 오로지 꽃받침만을 키워 꽃잎처럼 보이게 만든 크고 화려한 가짜 꽃 두 가지를 다 피어 낸다. 이 가짜 꽃은 헛꽃, 중성화, 장식화 따위로도 불린다. 진짜 꽃은 안쪽에, 가짜 꽃은 진짜 꽃 주위에 자리한다.
가짜 꽃은 진짜 꽃보다 훨씬 더 큰 모습으로 위를 향해 손짓하듯 피어 벌과 나비를 부른다. 그런데 막상 벌과 나비가 오면 그 큰 꽃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꿀과 꽃가루가 없음을 알고 실망하지만, 곧 옆에 진짜 꽃이 있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는 사이 꽃을 피우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화려한 꽃 모양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많은 씨앗을 만들기 위해 작지만 많은 수의 진짜 꽃과 딱 필요한 만큼의 가짜 꽃을 만든 산수국의 똑똑한 전략이다. 실제로 가짜 꽃을 떼어 버리면 벌이 찾지 않는다고 한다. 진짜 꽃이 꽃가루받이를 끝내면 제 역할을 다한 가짜 꽃은 위로 향하던 방향을 틀어 아래를 보게 한다. 이젠 꽃가루받이가 끝났으니 벌과 나비에게 오지 말라는 신호이다. 헛걸음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의 모습까지 갖춘 멋진 산수국이다.
산수국 꽃은 색깔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연한 분홍부터 진한 분홍, 연한 보라, 진한 보라, 연한 하늘색, 보라와 파랑이 섞인 색 등 분홍과 보라, 파랑색이 섞인 색으로 농담을 달리하며 핀다. 가운데 진짜 꽃보다 가장자리 가짜 꽃 색깔이 훨씬 연하다. 꽃이 처음 피기 시작할 때는 초록색이 약간 들어간 흰 꽃이었다가 점차로 밝은 청색으로 변해 나중엔 붉은 기운이 도는 보라색으로 바뀐다. 또한 토양 성분에 따라 산성이 강할 때는 청색을 많이 띠게 되고, 알칼리 토양에서는 붉은색을 띠기도 한다. 이외에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 따위의 흙 속 성분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한다니 참 재미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요소들을 조절해 원하는 색을 얻기도 한다.
지인이 선물해 준 수국차를 마시게 됐다. 수국차는 감로차라고도 부르는데 일본에서 들어온 문화로 산수국과 비슷한 식물 잎으로 만든 차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른 잎을 몇 장 잔에 담아 우려 마신 순간 마치 사카린처럼 단맛이 지나쳐 쓴맛이 느껴질 정도인 그 강렬한 단맛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 수국차를 마실 땐 정말 야박할 만큼 조금만 넣고 마시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국차에 들어있는 단맛은 설탕의 1000배에 달하는 필로둘신이라는 감미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녹차의 쓴맛이 싫은 사람들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차 잎이다. 농도만 조절한다면 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 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랑 꽃다발의 선비나무 ‘회화나무’ (0) | 2021.07.19 |
---|---|
하늘을 향한 손짓, 능소화 (0) | 2021.07.19 |
앵두건 앵도건 눈으로 맛있는 ‘앵두나무’ (0) | 2021.07.19 |
우리 동네 고급 나물 오이순나물, ‘고광나무’ (0) | 2021.07.19 |
닮은 듯 다른 가막살나무와 덜꿩나무 (0) | 2021.07.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