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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열매를 보고 알았네 ‘노박덩굴’

by 늘품산벗 2021. 7. 10.
  •  입력 2017.01.18 11:34

 

 

노박덩굴을 처음 알게 된 건 겨울이었다. 집 근처 작은 산이 시작되는 언덕 아래 나무들 사이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빨갛게 생긴 작은 열매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노란 껍질이 벌어져있고 그 안에 빨간 알맹이가 들어 있었다. 노랑과 빨강의 조합은 꽃이 아니더라도 눈에 띄는 색이다. 기다란 줄기에 잎도 하나 없이 열매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은 마치 인위적으로 만든 조화 같았다. 한줄기 꺾어 집에 가져다 놓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깜찍하고 예뻤다.

 

노박덩굴은 우리나라 중남부지방 나지막한 산지에서 아주 흔하게 자라는 덩굴나무다. 이웃 나무를 감아 올라가거나 바위에 기대어 길이 10m 정도까지 뻗어 나간다. 햇빛을 좋아하기에 큰 나무들이 차지한 숲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에 삶을 틀었다. ‘노박’이라는 단어는 ‘어수룩하고 순박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고 ‘줄곧’, ‘늘’ 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숲 가장자리, 숲 들머리에 흔하게 자라며 순박한 모습으로 늘 있는 덩굴나무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가졌을 거라고 한다.

 

노박덩굴은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다. 잎이 동글동글한 게 특별한 점이 없는 흔한 모양이고 다른 나무들에 붙어 자라는 덩굴나무이기에 각별히 신경 써 보지 않으면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꽃은 크기도 작고 색깔 또한 연두색이라 모르는 사이에 피고 진다.

 

그러던 노박덩굴이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때가 있으니 바로 겨울이다. 열매의 출현이다. 작지만 양으로 승부하고 알록달록한 색깔로 승부한다. ‘선택과 집중’을 잘 아는 영리한 식물이다. 비단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빨강 노랑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노박덩굴의 빨간 알갱이는 씨앗으로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덕분에 더 많은 자손들이 퍼져나간다. 10월에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둥근 열매가 노란색으로 여문다. 다 익으면 열매 껍질이 세 갈래로 갈라져 붉은색의 씨앗이 나오는데, 겨울에도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붉은 씨앗은 떨어지고 껍질만 남는다.

 

그렇게 노란 껍질과 빨간 열매만을 매달고 있는 앙상한 가지 하나를 꽃병에 꽂아두면 거기에서 새 잎이 돋아난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생명력이다. 자라면서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시들거나 죽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뿌리나 줄기에서 새싹을 왕성하게 만들어 내고 길게 뻗는다. 그렇게 자신을 더 키운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강성해지는 의지의 식물이다. 점점 나약해져가는 요즘 사람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다.

 

봄에 어린순을 데쳐 나물로 해서 먹는데 약한 독성으로 인해 약간 쓴맛이 나기는 하지만 가볍게 데쳐 찬물에 우려내면 없어진다. 간장이나 된장에 무치고 묵나물로도 먹는다. 다가올 봄에 먹어볼 나물이 하나 더 늘었다. 배워야 할 나무가 하나 더 늘었다. 선택과 집중, 강한 의지, 재생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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