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성장하는 시기에 맞게 엄마도 손을 놓아주세요” | ||||||
전상호ㆍ강민정 부부교사 | ||||||
5월은 각종 기념의 날로 꽉 차 있는 달이다. 노동절, 어린이날, 어버이날, 거기에 스승의 날까지. 각종 기념일을 챙기다 보면 어느새 봄이 훌쩍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또한 지갑까지 홀쭉해져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달이다. 그 기념일을 기쁘게 누리기보다는 부담스러워 고민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개운치 않다. 촌지 문제로 시끄러워진 스승의 날의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물론 이들뿐이겠는가 마는 안성에서 촌지 안 받기로 유명한 선생님이 있다고 하여 찾아 나섰다. 백성초등학교의 전상호 선생님과 안성초등학교 강민정 선생님.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걸어가며 한 지붕 아래 사는 부부교사이다.
기자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연다. 전상호 : 이맘때면 촌지 기사 뜨고 언론은 주눅들어가는 공교육을 공격하죠. 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공교육은 주눅이 들고 사교육은 성황인 것을 볼 수 있죠. 참 아쉽습니다. 입시학원은 성적을 중시하고 학교는 성적보다는 인성을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가슴속에 담기는 선생이 학원 선생이라는 것이 교사들은 참 불편합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촌지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고 고민합니다. 어떻게 돌려보내야 할까?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건 선물이 아닙니다. 날짜를 옮기든지, 이렇게 형식적으로 스승의 날이 있는 것은 폐지되었으면 합니다. 진정으로 스승의 은혜와 마음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도 스승도 편한 시간에 다른 방법과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가져오는 꽃이나 선물은 하나도 받지 않겠다’고 미리 이야기합니다. 일 년이 끝난 후 ‘나와 잘 맞았어?’라고 아이들한테 평가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안되게 편지 정도는 받아주지만 꽃이나 선물은 예전에 배웠던 다른 선생님들한테 드리라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이나 졸업생들이 가져오면 받습니다. 강민정 : 시기적으로 참 애매합니다. 5월은 학기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아이들도 스승의 은혜를 알기에는 이른 시기죠. 2월 정도에 하면 ‘1년 동안 잘 가르쳤구나’ 하는 판단과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두 분이지만 학년 말 아이들에게 뜻 깊은 선물을 나누어줘 더 큰 사랑을 표현하는 멋쟁이 선생님이다. 강민정 : 한 학년이 끝날 때쯤 틈틈이 찍어둔 사진을 CD에 앨범으로 만들어 나누어주기도 하고 일 년 동안 써왔던 글을 묶어 문집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졸업 후 아이들이 가끔 ‘선생님 그 CD 은근히 매력 있어요' 하며 말해주기도 하지요. 졸업 후에 한 명이라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전상호: 보통 6학년 졸업할 때 선물로 편지나 사진, 책 등을 줍니다. 그때그때마다 다르지요. 교육은 교사가 아니고 아이들의 틀에 맞추어야 합니다. 해마다 아이들이 달라지니 가르치는 틀이 약간씩 달라지지요. 활동적인 아이들이 많으면 그 끼를 살려주며 즐겁게 생활하고, 나서는 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을 때는 억지로 시키면 얼마나 스트레스입니까? 아이들에게 맞춰 선물도 준비합니다. 선물 말고도 아이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점심급식을 먹을 때 남자아이들은 빨리 먹고 나가 놀려고 하기 때문에 천천히 먹는 나와는 속도가 안 맞아 여자아이들과 먹는데 가끔 내 곁에 오지 않고 멀리 떨어져 먹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배신자라고 살짝 놀리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인터넷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강민정 선생님이 교직생활 3년차부터 시작한 카페는 어느덧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회원으로 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학교를 옮겨 다니더라도 학교마다 게시판을 두어 한 카페 안에서 아이들이 모일 수 있게 하였다. 졸업하고서도 아이들이 돌아올 곳이 있다며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당일 신문과 방송에선 ‘사교육 없는 학교 지정’에 대한 내용이 쏟아져나왔다. 전상호 : 학교교육의 중심은 불행히도 교장에게 있습니다. 교장의 생각에 따라 많은 것이 좌지우지 되지죠. 그것이 학부모가 원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장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ㆍ영ㆍ수 외의 교과는 시간수를 줄여갈 것입니다. 학원처럼 성적만 중시하다간 학교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입시교육만 강화가 되고 학벌 위주의 사회로, 서열식으로 억지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가난하건 장애가 있건 없건 누구나 인간으로 살아가게 만들어가는 게 교육인 데 말이죠. 강민정 : 초등학교는 3시 정도에 끝나는데 방과 후 두 시간 정도 예ㆍ체능 위주의 수업이 있어요.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 학원엘 가야 해서 방과후 수업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교과수업은 오전에 끝나고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엔 각자 공부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어요.
강민정 :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세세히 아이들을 돌보고 모두 예뻐해주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구조상 초등학교는 그러기 힘들죠. 넓은 물로 나갔으니까 독립적으로 지켜본다는 의미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너무 챙기지 말았으면 합니다. 감싸고 뭐든지 챙겨주려고 하면 아이들이 힘들어집니다. 부모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줄 뿐이지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6학년 아이들 같은 경우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독립적이고 싶은데 엄마는 아직 어리게만 보고 못 놓으니까 대립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는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일 뿐이고 숟가락 들고 먹는 건 아이들입니다. 너무 간섭하고 성적만 강요하면 비뚤게 나갑니다. 간섭을 덜 하는 게 중요하죠. 아이가 성장하는 시기에 맞게 엄마도 손에서 풀어놓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은 그나마 많이 다양해졌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많은 아이가 선생님이 되길 원했지만 그 꿈을 이룬 사람은 많지 않다. 강민정 : 어려서 선생님 놀이 하는 게 재미있고 가르치는 놀이가 좋았어요.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따뜻한 분이셨어요. 그분을 보면서 ‘나도 저런 따뜻하고 부드러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생활도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막상 실습을 나가보니 ‘이 길이 아닌가벼 내 체질이 아닌가’ 했습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배운 게 그거밖에 없었습니다. 딱 한번 글쓰기 시간에 좋은 말을 쓰고 싶어서 거짓말로 장래희망을 ‘의사’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전상호 : 6학년 때와 중학교 1학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이라는 이미지가 좋았습니다. 오히려 교대에 가서 사회변혁기에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요. 아이들 30~40명과 하루종일 지내고 나면 힘듭니다. 자식이 열 번 중에 아홉 번을 부모 맘 아프게 해도 한번 잘하면 그것 때문에 자식을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도 똑같아요.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에서 아내는 슈퍼우먼이다. 바깥일도 잘해야 되고 집에 돌아와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집안일도 말끔하게 해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내의 톱니바뀌는 얼마 안 가 나사가 풀리고 볼트가 느슨해진다. 가족 구성원의 도움이 절실하다. 전상호ㆍ강민정 부부는 지혜롭게 분업을 선택했다. 남편은 청소와 빨래를 담당하고 아내는 밥과 설거지를 맡는다. 전상호 :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남아 선호사상이 몸에 배었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남녀평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예전에 내가 얼마나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형식적이고 불평등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한번 대판 싸우고 알게 되었죠. 지금은 마나님 모시듯 살고 있습니다. 강민정 : 얘기하지 않으면 몰라요. 남자는 여자에 비해 안 보이는 것이 습성인 듯합니다.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안 보여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얘기를 해야 합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자주 얘기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부부교사라서 대화시간이 많고 공통되는 것이 많다. 학교 일이 힘들고 피곤하다고 과대 포장하지 못하지만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선배로서 힘든 것을 이해해준다. 어려운 고민들을 아주 쉽게 해결해주기도 한다. 요즘은 솔메이트란 느낌을 받는단다. 강민정 : 어디 가서 꼭 밝혀야 되지 않으면 선생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못하면 ‘선생이 왜 저래?’ 하고 잘하면 ‘당연히 그래야지’ 하고 선생이란 잣대가 먼저 세워져 버려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생이란 직업이 편하고 돈 많이 벌고 시간이 많이 남으며 촌지를 안 받는 척하며 좋아하더라 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힘들고 굶지 않고 살지만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봐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요. 어느 직업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책임지기에 ‘님’이란 존칭을 붙여주며 우리의 미래를 부탁한다. 내미는 손과 받는 손이 부끄럽지 않는 그런 스승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승희 시민기자 | ||||||
기사입력: 2009/05/22 [08:02] 최종편집: ⓒ 안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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