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엔 수단과 방법이 아닌, 기초와 정도가 있습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 한 프로그램에서 일부 어린이집에 대한 고발내용이 전국의 유아를 둔 학부모들을 경악케했다. 아이들의 먹거리가 불량하고 위생상태도 엉망인 곳에서 내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많은 부모들이 치를 떨어야 했다. 안성시에도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다. 물론 그런 시설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거라 믿으면서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에서 25년 가까이 유치원을 운영해오고 있는 김순희 원장을 만났다.
“요즘 많은 유아교육기관들이 규모가 커지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학습지 위주의 교육이 만연하고 유아의 특성에 맞는 맞춤교육엔 인색해지는 경향이 있지요.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교육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장사를 하는 것이 낫지요. 장사를 하려면 수단과 방법이 있어야 하지만 교육엔 수단과 방법이 아닌 기초와 정도가 있습니다. 인간의 심성을 키우는 진지함과 열정이 있어야 하지요.”
오랜 세월 유아교육에 전념한 사람답게 만나자마자 현실에 대한 걱정 어린 말을 건넨다.
김 원장은 매산리에서 죽산까지 한 시간을 넘게 걸어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불쌍해 보여 매산리 지인들의 후원을 통해 유치원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자격 있는 교사를 두고 원장 겸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주중에는 유치원을, 주말에는 교회로 변신하는 시설을 꾸려갔다.
30대 때 전국유치원연합회에서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임원자리를 턱 하나 안게 되었고, 때문에 국내외 유치원을 탐방하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유치원은 이래야 되는구나’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5년에 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에 입학, 4년을 고3처럼 공부하며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얻었다.
“당시만 해도 하루 차량운행 7시간에, 쓰러진 시아버지 간병까지 겹쳐 공부하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하도 많이 고생해서 흰머리도 생기고 체력소모도 크고 많이 늙어버렸답니다.” 그녀의 웃음 뒤로 진한 회한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교원대 연수와 검정을 통해 또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명실상부한 자격원장이 되었다. “아직도 더 공부할 게 남아 있고, 공부를 즐기기에는 덜 지쳤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하고 나니 막연한 꿈으로 느껴지는 유치원이 아니라 남에게 눈치 보지 않고 유아교육적인 바탕 위에 세워진 든든한 유치원을 세운 셈이죠.”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무조건 교육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엄마들이 좋아한다고 교육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요즘 엄마들의 눈치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뚝심 있는 김순희 원장의 교육철학은 더 빛을 발한다.
“유치원 교사는 몸은 힘들어도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재미있습니다. 돈만 생각하면 일에 치이고 사람에 시달리고 삭막해지고 점점 망가져갑니다. 교사들을 일할 맛 나게 하는 것이 원장으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한 유치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아이들을 바르게 이끌어줄 수 있게 부모들에게 교육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도 원장의 일이지요.”
그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스케이트며 수영이며 음악이며 미술이며 온갖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았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더욱 풍성하고 행복할 수 있단다. 누려본 사람이 더 누릴 줄 안다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누리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로부터 시작한 문화나들이는 동네 아이들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한테까지 확장되었다.
김순희 원장은 아이들에게 좋은 게 있다면 앞뒤 안 가리고 데리고 다닌다. 때가 되면 데리고 다니는 벚꽃놀이, 기차여행과 갯벌체험, 눈썰매장은 기본이고 함상공원, 한택식물원, 소방서 견학, 코엑스 아쿠아리움,허브와 풍뎅이, 창경궁 등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곳들을 많이도 찾아다닌다. 또, 예술적 감성을 키워주기 위해 직접 유치원에 연주단을 초대해 음악회를 여는가 하면 소나무갤러리, 도자기비엔날레, 백남준 아트센터, 뮤지컬과 인형극 관람 등 유치원 아이들은 일 년 내내 바쁘다. 이외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죽주산성엘 오르며 체력도 다지고 계절의 변화를 자연 속에서 몸소 느끼게도 한다.
“유아교육은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끌어가는 것은 아이들이죠.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끌어내주는 게 선생님의 몫입니다. 예술과 문화는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인생은 살 만하고 재미있다고 경험한 사람은 행복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 살 만한 곳이란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재미있고 멋있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미술관이나 전시관엘 가면 가끔 우리 아이들을 보며 그것들이 뭘 안다고 보여주느냐며 하찮다는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는 거고 보는 만큼 알아가는 겁니다. 어릴 때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잣대로 보니 아이들의 눈을 무시하는 거지요. 어른들이 제한된 삶의 경험으로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아이들도 모를 거라 착각하면 안됩니다. 아이들은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험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본 것과 예전에 본 것을 말해보라 하면 줄줄이 포문이 터진단다. 도자기 비엔날레만 해도 매년 가는데 올해와 지난해, 지지난해 각기 다른 생생한 느낌과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백남준 아트센터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버스 뒤쪽에서 시끌시끌하기에 봤더니 아이들이 종이를 찢으며 “이것도 작품, 이것도 작품” 하고 있더란다. 예술이 얼마나 아이들 생활에 가까워졌는지 표현되는 순간, 그녀는 행복했다고.
오랫동안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그녀는 누구보다 교육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은 시골동네 개 짖는 것과 같습니다. 옆집 개가 손님이 왔다고 짖으면 우리 집 개는 옆집 개 때문에 짖고 결국 온동네 개가 다 짖는 시끌벅적한 동네가 되고 말지요. 이웃집 아이가 하니 우리 아이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경쟁사회로 몰리다보니 항상 마음엔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고 집단 공포증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엄마로서 교육에 대한 중심철학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 그녀는 모든 유아교육기관이 엄마들이 마음놓고 아이들을 맡길 만큼 믿음직스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때문에, 부모들이 교육기관을 알아볼 때는 전화 한 통화로 끝낼 게 아니라 직접 방문해 놀이감이 얼마나 되는지, 원장이나 교사의 교육관이 어떤지, 잘 놀다 올 수 있는 안전한 곳인지 직접 확인해볼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고민해서 기관을 최종 결정했다면, 교사들을 믿고 지지해주며 때론 기다려주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순희 원장의 남편은 목사이고 부부에겐 벌써 20대 청년이 된 유치원 2회 졸업생인 아들이 있다. 내면이 건강한 아이로 커준 데 감사를 전하며 이것 또한 유치원을 하게 된 덕분이란다.
“목사의 자녀들은 어항에 사는 아이들입니다. 겉에서 환히 보이는 어항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목사아이가 왜 그래? 하는 심적인 부담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사회 부적응, 정신질환을 겪는 아이가 왕왕 있지요. 엄마 아빠가 바쁘고 아이도 하나님이 돌보아주실 거라는 믿음에 미처 자신의 아이는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아교육을 하면서 엄마로서 내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아교육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 당당한 아들로 키워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많은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아이도 같이 병들지 않고 잘 키운 것에 감사합니다.”
유치원을 하는 동안 경영도 유지도 힘들었지만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때로는 ‘으악’ 할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무엇보다 맑고 심성이 예쁜 아이들과 만나 그 아이들을 보살피며 커가는 과정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생활이 곤란한 아이들은 한 해 7명까지 장학생으로 보살핀 적도 있다. 그래도 유치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줄 수 있던 도움이라며 오히려 감사하단다. 졸업식마다 남편은 얘길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계속 함께 키웠으면 좋겠다고. 참 욕심 많고 행복한 부부다.
그녀에겐 든든한 빽이 있다. 일 좀 줄여달라, 형편 좀 펴게 해달라 기도해주는 친구들이 옆에 있고, “원장님 힘내시고 변하지 말고 그대로만 하세요”라며 응원해주는 졸업한 아이들의 학부형들도 있다. 또 이제 대학교 1학년이 된다는 아이의 부모는 졸업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와 직접 만든 천연조미료나 앞치마 등으로 마음의 선물을 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지치고 힘들다가도 다시 힘을 내게 된다는 그녀 앞에, 봄빛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의 미래가 활짝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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