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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안성사람들-안성신문

茶 우리는 여자 유성자

by 늘품산벗 2009. 3. 30.

좋은 사람과 차 한잔 어때요?
茶 우리는 여자 유성자
신승희 시민기자

▲좋은 사람과 만나 차 마시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는 유성자 씨. 그의 닉네임처럼 삼죽면 내장리 그의 소박한 공간에선 오늘도 차향기가 젖는다.        © 신승희

컴퓨터가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다니게 되면서 사람들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말고도 각각 자기만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닉네임, 아바타, 아이디 그런 것들이다. 오늘 만나러 가는 사람들도 본명보다는 그런 이름들이 더 자연스런 사람들이다. 나무를 다루며 사는 나무향기 님과 차를 우리며 사는 차향기 님이 함께 사는 곳 삼죽면 내장리 지통발로 향했다.

삼죽과 죽산에서 한택식물원을 향해 가다보면 만나는 삼거리가 있다. 그 나머지 지점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오랜 세월을 버티며 마을을 살펴보는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언덕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니 단감빛 저고리를 입은 차향기 님 유성자 씨가 반긴다.
“안성에 자리를 잡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인터넷에 이 집이 나왔다고 지인이 소개를 시켜주었죠. 원래 시화공단에서 남편이 목형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져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던 차에 이 집을 알게 되어 2007년 여름에 보러왔는데 집 주인이 다른 사람이 이미 구두계약을 하고 갔다며 우리에게 내어줄 수 없다고 했죠. 그런데 우리 것이 되려고 그런 건지 12월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공간이 둘로 나뉘어져 있어 남편 작업실도 가능하고 차실로도 사용할 수 있겠더라고요. 우리한텐 딱인 거죠. 나이 들면 난 찻집을 하고 남편은 옆에서 목공예를 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50대가 되면 하자고 했는데 이 집엘 오게 되면서 빨라진 셈이죠. 돈이 목적이 아니라 좋은 사람 만나서 차 마시는 공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경제적인 기반이 잘 안 잡혀서 좀 힘들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행복합니다.”

얼마 전 시에서 동네 뒷산을 정비하면서 나온 꽃나무들이 많다며 진달래 철쭉을 마당 곳곳에 심느라 바쁘다. 그러고 보니 마당 곳곳에 부부의 손이 안 간 곳이 없다. 나무를 다루는 남편은 울타리, 솟대, 의자, 식탁, 선반 등 집안 곳곳에 작품을 남겼고 꽃을 좋아하는 부인은 깨진 옹기며 작은 그릇이며 썩어 패인 나무둥치며 여기저기에 꽃을 수놓았다.

“행복합니다. 꾸미는 게 힘은 들어도 먹고 살 걱정만 없다면 이렇게 신선놀음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찻집은 따듯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입니다. 젊을 때부터 좋은 사람 만나 이야기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이런 날 보며 친구들은 지금도 꿈을 꾸고 있냐며 답답하다고도 하지요.”

▲ '차향기', 그녀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공간의 행복이 전해져온다.     © 신승희
그래도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고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것 같아 그녀의 얼굴은 환하다.

한 달에 두 번 서울로 차 수업을 받으러 간다. 차의 역사라든지 차의 종류, 차에 대한 옛날 이야기 등 이론 위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차, 모르고 마시는 것보다 알고 마시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런 수고스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단다.

“기본만 알면 꼭 격식을 따지거나 다도를 갖추는 것보다 편하게 마시는 게 제일 좋아요. 차는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정신수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주전자에서 찻물이 떨어지는 소리도 느껴가며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해는 하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꼭 정통을 지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맨날 야단맞아요. 야무지게 안하고 설렁설렁한다고. 그래도 어려운 격식보다는 편한 게 좋습니다.” 

가루차와 티백이 보편화된 요즘 그녀는 대부분 직접 우리고 달인다. 작년 가을 집 뒤 텃밭에서 손수 기른 국화를 따서 국화차를 만들었다. 겨울엔 쌍화차와 대추차, 계피차를 달이느라 집안 곳곳이 달큰한 향내로 가득했다. 올해는 더 욕심을 내려 한다. 효소도 담그고 주변에서 나는 여러가지 재료로 차를 만들어볼 양이다. 그녀 몸에 밴 차 향기가 더욱 더 진해질 듯하다.

그녀의 차실에 들어서면 남편이 만들어준 멋들어진 찻상과 다기장에 놓인 수많은 찻잔과 다기에 놀라고, 또 별의별 처음 듣는 차의 이름에 놀란다. 메밀차, 국화차, 연잎차 따위의 차맛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는 차도 있지만 철관음, 천량차, 보이차, 은침차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도 있다. 이들은 다 차나무의 잎으로 만들어진 차이지만, 차를 만드는 제다법과 차의 생산지역, 발효 정도, 차나무의 품종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부부는 새 둥지를 틀면서 버린 게 많다. 그중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등학생인 딸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다. 딸이 카드를 쓰면 바로 엄마 핸드폰으로 내역이 전송이 된다. 그것을 보며 딸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게 된단다. 천 몇 백 원까지도 엄마에게 세세히 보고하는 딸은 엄마아빠를 보러오면 호떡을 직접 만들어주며 그리움을 달게 삼킨다. 그러면 아빠는 “우리 딸이 만든 호떡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지” 하며 애정을 과시하고.

“원래 고향은 곡성입니다. 남편과도 한마을에서 동갑내기 친구였죠. 어렸을 땐 친구였고 결혼 후 애아빠가 되었다가 애들이 다 커버린 요즘은 다시 친구가 되었어요. 결혼할 때 친정엄마가 반대가 심했어요. 생활력이 없어 보인다고. 너무 낙천적인 사람이라 그리 실없이 보였던 거죠. 그래서 자려고 이불 펴면 방이 꽉 차는 월세집을 친정에는 전세집이라 속이고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후 열심히 살며 조금씩 늘려갔죠.”

남편은 목형만 30년 이상 해온 외길인생이다. 목형이란 주물을 뜨기 위해 미리 만드는 나무로 만든 모형이다. 어린 시절 일찌감치 목형의 세계로 뛰어들어 청소 일을 하며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와 지금은 알아주는 목형의 달인이 되었단다. 

▲손수 재료를 만들어서 정성껏 우려낸 차가 삶을 행복하게 이완시킨다.       ©신승희

“젊었을 때 안 다녀 본 데가 없어요. 집을 넓히기보단 차를 마련해서 애들 데리고 전국 구석구석 찾아다녔죠. 트렁크에는 코펠과 버너가 항상 있었어요. 힘들었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애들한테 산교육을 시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가 아들녀석이 중학교 때부터 토요일만 되면 가방 메고 전국을 구석구석 쑤시고 다녔어요. 지금도 대학 다니면서 여행 가이드를 아르바이트 하며 자기 쓸 돈은 자기가 벌지요.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도 여행의 연장선상에서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바뀐 게 있다면 기차에서 자동차로 그리고 이젠 비행기로 관심이 옮아간 것이랄까? 남편이 술을 안 마시기 때문에 술값이 여행경비로 쓰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살아가는 데 정답이 없습니다. 열심히 사는 거지요. 맘에 안 들어도 진짜 속 썩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만하면 난 그냥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고춧가루를 주시고 가셨다. 그래서 찻잔과 상황버섯차를 갖다드렸다. 할머니는 고춧가루는 당신이 농사 지은 거라 별거 아니고 찻잔은 귀하고 비싼 건데 하며 받으려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고춧가루는 안 비싼가요? 찻집엔 당연히 찻잔이 있는 거니까 안 비싼 거예요” 하며 드렸단다. 다 나하기 나름이란다. 동네 분들하고 잘 지내고 싶고 어르신들도 다 내 부모 같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겨울내 점심은 마을회관에서 동네 주민들이 모여 함께 먹었다. 그녀는 동네에서 몇 안되는 젊은이라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음식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공동체적 시골살이를 즐겼다. 그것이 마냥 행복했단다. 

다른 지방에서 이사와 사는 사람들 중에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마찰을 빗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무단으로 하지 말고 얘기하고 상의하며 살아라.”

지금 사는 집이건 근처건 안성에서 뿌리내리고 싶단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좋다. 주위 분들도 너무 좋다. 내 살 공간이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식구들만 건강하면 좋겠다.

이제 봄이다. 봄꽃 보러 나들이 가며 나무 향기 차 향기 나는 그녀의 차실에 들러 그녀가 우려주는 차 한잔 마시련다. 그녀의 바람대로 나도 좋은 사람 되련다.

신승희 시민기자







 
기사입력: 2009/03/26 [14:21]  최종편집: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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