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 ||||||
『문명 패러독스』 저자 ‘더아모의 집’ 송상호 목사 | ||||||
2009년 새해가 밝아오자마자 시큰한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빳빳한 새 책이 도착했다. ‘왜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까?’라는 부제를 단 『문명 패러독스』란 책이다. 당연하지,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할 줄 알았나보지?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건 20대 청춘을 저 멀리 떠나보내며 익히 터득한 터라 콧방귀를 날리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각 장마다 주제를 달리하며 펼쳐지는 작가의 다양하고 넓은 사색의 깊이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통찰력에 그만 폭 빠져들고 말았다. 허술하고 헐거운 나의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시켜놓는 느낌이랄까?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마치 자연적인 현상처럼 지나치던 우리와 주변의 삶의 모습을 굉장히 의아스럽게 보면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그동안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현대문명에 의문부호를 달아보기 위해 책을 냈다는 작가를 직접 만나보았다. 금광면에 위치한 작은 시골집에 그가 살고 있었다. ‘더아모의 집’(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 목사로 유명한 송상호 씨다.
송상호 목사는 현재 오마이뉴스와 벼룩시장에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청사모’(청소년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안성신문>에도 보도되었던 완채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소년의 그림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안성의료생협과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과도 친하다. 정식 회원은 아니나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사이란다. 그리고 그의 중심에 더아모가 있다. “더아모는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임’이란 이름의 줄임말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형식적인 단체는 아니고요, 제가 더아모일 수 있고 더아모 카페 등록회원과 집식구들, 우리 집에 놀러왔던 청소년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더아모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을 의미하지요. 더불어 산다 하면 도움이나 봉사, 복지라는 개념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짧고 편협한 생각입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런 세상, 바로 ‘포용’입니다. 다양한 삶의 방식과 모습을 인정하고 다름을 적대시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 모습을 제대로 갖추는 것, 홀로 서는 것, 홀로 설 수 있는 세상, 홀로 서기를 하는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 말이죠.”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매일 생각의 껍질을 벗는다고 한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 수 있다. 생각이 계속 달라진다. 그리고 달라지면 행동한다. 그의 아름다운 세상도 그동안 겪은 경험과 깨달음의 산물이다. 그는 부산에서 교회 교역자로 생활하다 1999년 학연 지연 파벌로 얼룩진 교회의 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유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서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선배를 찾아가 그곳에서 고물을 줍기도 하고 막노동을 하거나 인쇄소 일과 학습지 교사도 하며 1년 동안 시설 일을 도왔다. 그리고 안성시 일죽면으로 내려와 장애인 단체를 꾸렸다. 봉사하는 삶이 더불어 사는 삶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이내 그곳에서 쫓겨나야 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배타성에 대한 처절한 고민을 안고. ‘섬김과 나눔’의 철학에 대한 심지를 굳히고 옆 동네에 집 한 칸을 얻어 ‘일죽자원봉사문화센터’라는 간판을 다시 달고, 그곳에서 독거노인 반찬 배달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 상담과 청소년 사업, 어르신들 이발과 차량 봉사활동을 펼쳤다. 맞벌이 부부들의 아이들과 딸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공간이 필요했고, 폐자재 등을 모아 다용도로 쓸 수 있는 50평 규모의 건물을 동생, 삼촌과 함께 직접 짓기 시작했다. 14개월에 걸쳐 더불어 사는 더아모의 집이 그렇게 마련되었다. 그런데 시련은 또다시 찾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지은 집이건만 땅주인의 변심으로 집을 스스로 허물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 “땅 관리인의 말만 믿고 남의 땅에 집을 지은 제가 실수를 한 거죠.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란 걸 이때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봉사하며 잘해주면 좋아하지만 그건 그때뿐이고 우리가 쫓겨날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방관만 했습니다. 한사람이 숙이고 섬겨서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셈이죠.” 그는 스스로를 라이선스(license) 있는 목사란다. 정식으로 신학교를 나왔고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진짜 목사 말이다. 그런데 그는 교회를 지어 예배를 보고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다. 염주를 갖고 다니기도 하며 공공연히 불교가 좋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종교를 바꾸지는 않겠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기독교가 편하다고. 근데 예배당에서는 잘 수 있어도 법당에선 불편해 잘 수가 없다나? 정말 희한한 사람이다. “자식들에게도 종교는 선택사항입니다. 목사의 자녀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독교를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종교인은 하나의 세계와 가치관에 매몰된 사람입니다. 종교는 우월의 문제도 없고 옳고 그름의 문제도 없습니다. 장점이라면 신과 연결해 감사할 수 있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하나의 시각으로만 보고 강요하는 것이죠.”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 ‘좋은 일 많이 하는 목사’라는 칭호에도 그는 불편해했다. “제가 하는 일은 스스로 좋아서, 저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거노인에게 반찬 배달을 할 때도 받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어르신들을 통해 간접적인 인생경험도 하고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철마다 손수 가꾸신 텃밭 채소를 받으며 그 계절에 뭐가 나는지 알 수도 있었습니다.”
“가벼운 에세이 형식으로 더아모의 철학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출판사로부터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지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보통사람의 이야기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출판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일죽에서 지금 사는 금광면으로 이사를 오고나서부터 마음을 비우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다보니 글도 잘 써지고 생각도 많아지더군요. 지난해 1월부터 한 달 넘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더아모의 집은 뭘까? 깊은 고민에 빠졌고, 그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책을 써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출판사가 결정되었지만, 첫 단행본을 준비하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편집자와 의견이 부딪쳐 어려움을 겪으며 과연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결국 10개월의 긴 산통 끝에 쉽고 명쾌한 논리로 시대의 가치를 성찰해볼 수 있는 주목받는 책 한 권이 독자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문명의 가치와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경계 없는 독서로 정신세계를 무한대로 확장시켜간 필자의 깊은 사색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사고의 다양성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다양한 독서를 통해 얻는 깨달음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저는 목사지만 불교서적이나 이슬람교 서적도 많이 봅니다. 노자의 도덕경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죠. 무릎을 치며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정확한 문구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물은 네모 통에 담기면 네모가 되고 세모 통에 담기면 세모가 된다. 그래도 물은 물이다. 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본질이지 모양이나 카테고리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기억나는군요. 이번에 발행된 책에 인용되어 있는 문구 역시 반 이상은 직접 읽은 책들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책에서 보면 신이 그 사회를 반영하는 문화적 존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짬뽕신이죠. 혼합된 모습의 신입니다. 유교적인 상하관계, 장유유서, 가부장적인 권위적인 모습의 신입니다. 경제 발전기에는 열정, 성공, 성장, 정복, 전지전능, 의지의 대상 이런 것이 강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한계에 부딪쳤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과거에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포용적이고 다양함을 인정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통합의 신이 필요합니다. 종교는 사회통합에 힘을 주고 에너지를 주어야 합니다.” 새해 아침 비봉산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소원을 빌었다. 뒤늦게 하다 더 보태본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어서 빨리 오기를. 신승희 시민기자 | ||||||
2009/01/09 [15:15] ⓒ 안성신문 |
'내가 좋아서 하는 일 > 안성사람들-안성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茶 우리는 여자 유성자 (0) | 2009.03.30 |
---|---|
죽산면 매산유치원 김순희 원장 (0) | 2009.02.27 |
안성댁으로 살아가는 응엔응옥옘과 웡티안 (0) | 2008.12.15 |
풍산개마을 풍산개 농장 이기운 이장 (0) | 2008.11.02 |
어르신들 찾아나서는 노래강사 정도자 씨 (0) | 2008.10.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