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5.27 13:16
이맘때 계곡에 가면 꼭 만나는 나무 꽃이 하나 있다. 노란색도 아니고 분홍색도 아닌 애매한 색을 가진 꽃이다. 마치 우리 악기 중에 입으로 불었던 긴 나발처럼 꽃부리가 길게 뻗어있는 모양의 꽃이다. 이미 나팔꽃이란 이름을 가진 꽃이 어엿하게 있으므로 이 꽃에는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그런데 좀 지나니 꽃이 지고 열매가 생겼다. 물병인지 술병인지 보는 사람 좋을 대로 상상하며 볼 수 있는 영락없는 병 모양이다.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긴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음료수병처럼 생겼다. 병이 달리는 꽃나무라 병꽃나무라 했을까. 한편으론 꽃 모양을 보며 주둥아리가 넓은 병처럼, 아니면 꽃을 뒤집어 세워 놓고 아래가 넓고 점점 좁아지는 병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병꽃나무라 불렀을까. 어떤 이는 꽃봉오리가 병을 닮았다 해서 병꽃나무라 한다. 나팔, 고깔, 깔때기, 아무튼 꽃 모양을 두고 여러 가지 사물을 빗대어 표현한다.
병꽃나무를 보면 한 나무에 두 가지 색의 꽃이 함께 달린다. 연한 노란색과 붉은색 꽃이 피어있는데 붉은색도 여러 단계로 연한 분홍부터 좀 더 진한 붉은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한 나무의 꽃이 이렇게 여러 색으로 보이는 건 흔한 게 아니다. 병꽃나무가 갖고 있는 특징인 셈이다. 병꽃나무 꽃을 보며 필자는 아이들에게 곧잘 물어본다.
“이 꽃하고 저 꽃하고 누가 먼저 핀 꽃일까?”
그러면 아이들은 더 주의 깊게 살펴 나름의 이유를 대며 ‘이 꽃이여, 저 꽃이여’ 한다. 정답은 진한 붉은 색 꽃이다. 병꽃나무 꽃은 노란색으로 피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붉은빛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니 가장 붉은 꽃이 가장 오랫동안 피어있는 나이가 제일 많은 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붉은색 꽃만 피는 붉은병꽃나무도 있으니 잘 살피고 나서 수수께끼를 내야 한다. 이와는 다르게 꽃이 흰색으로 피는 흰병꽃나무도 있다.
병꽃나무는 계곡 근처에서 많이 자란다. 그래서 병꽃나무를 보면 근처에 계곡이 있거나 습한 골짜기가 있나 보다 하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한 줄 서기 하듯 죽 무리 지어 자라기도 한다.
진짜 병처럼 생긴 열매는 가을에 익는데 안에 씨앗이 잘 익으면 껍질이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이 2개로 갈라지며 날개가 달린 아주 작은 씨앗이 나온다. 병꽃나무는 사람보다 약간 큰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나무로, 목재나 생활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을 만큼이 아니다. 그나마 화력이 좋아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생활에 쓸모가 많은 나무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많은 꽃으로 벌과 나비같은 곤충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나무임에 틀림 없다.
무릇 식물에 있어 특산종이라 하면 일부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적응력이 떨어지며 생명력이 약할 것이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나리나 병꽃나무처럼 예외도 있다. 둘 다 한국 특산종으로 우리나라에만 사는 나무들이지만 전국 어디에나 퍼져 봄에 산과 들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 땅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역시 봄에는 꽃이 좋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 > 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감주나무, 평양에서도 꽃이 피었을까 (0) | 2021.07.26 |
---|---|
꽃보다 열매, 매실나무 (0) | 2021.07.25 |
이슬이 달리는 예쁜 우리나무 ‘이스라지’ (0) | 2021.07.25 |
골담초, 노랑 나비로 피다 (0) | 2021.07.25 |
설레는 볼의 홍조같은 빨간 꽃, 명자나무 (0) | 2021.07.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