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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누린내 속에 꽃과 진주는 피어나고, 누리장나무

by 늘품산벗 2021. 7. 16.
  •  입력 2017.08.28 10:57

 

여름이 막바지에 치달은 요즘 숲길을 지나다보면 갑자기 어디선가 야릇한 냄새가 풍겨올 때가 있다. 딱히 꽃향기처럼 향기로운 냄새는 아니나 그렇다고 역하거나 못 맡을만한 혐오스런 냄새도 아니다. 음식에 쓰이는 진한 향신료 같기도 하고, 무슨 약 냄새 같기도 하다. 그런 것이 한번 맡아버리면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어디서 나는 걸까? 누구일까? 궁금하다면 주변을 둘러보라.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나무이면서 깻잎처럼 생긴 손바닥만 한 잎들이 많이 달린 채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많은 하얀색 꽃이 핀 나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꽃향기를 맡아보니 '참 좋다. 아닌가?' 하는 사이에 훅 하고 들어온  그 야릇한 냄새가 요즘 한창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누리장나무’이다.

 

누리장나무는 이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나무에서 누린내가 난다고 그런 이름을 가졌다. 누린내가 그렇듯이 썩 유쾌한 이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몸에서 그런 냄새를 나게 했을까? 식물은 아주 영리해 심심하거나 쓸데없이 에너지낭비를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 냄새는 잎에서 아주 강하게 난다. 무슨 나무일까? 잘 모를 때 나뭇잎을 손으로 쓱 문질러 냄새를 맡아보면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냄새가 독특하고 강하다. 아마도 야들야들 맛나게 생긴 잎을 노리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그런 방어막을 쳤을 것이다. 이상한 냄새가 나니 먹지 말라고. 다행히 많은 적을 물리쳤을지 모르겠지만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그런 냄새가 남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님들은 봄에 누리장나무의 새 잎이 나오면 나물로 먹었다. 그냥은 냄새가 나므로 데치고 우려서 쌈도 싸먹고, 나물로 무쳐 먹고, 튀김도 장아찌도 해먹었다. 물론 여러 가지 증상에 좋은 약재로도 쓰였다. 누린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에겐.

 

 

 

누리장나무 말고도 저나무, 취오동, 개똥나무, 깨타리나무, 개나무, 노나무, 구린내나무 등 사는 곳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대부분 냄새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지만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는 건 아름다운 꽃과 꽃 못지않은 매혹적인 열매이다.

 

요즈음 8~9월에 붉은 빛이 도는 흰색 꽃이 피는데 꽃받침이 꽃봉오리처럼 봉긋하게 생겼고, 그 끝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나팔처럼 생긴 길쭉한 통꽃 잎이 나오다가 갑자기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확 젖혀진다. 그 속에서 수술 네 개와 암술 한 개가 길게 밖으로 뻗어 나오는데 이 수술과 암술에 누리장나무의 지혜가 담겨있다. 먼저 꽃이 피어나면 수술은 앞으로 나와 꽃가루를 내보이며 위를 향해 뻗으며 손짓을 한다. 그 사이 암술은 밑을 보며 얌전히 숙이고 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꽃가루를 다 날리고 수술 역할이 끝나게 되면 전세가 역전이 된다. 수술은 꼬불꼬불 말리며 아래로 쳐져 있고 그 사이를 암술이 길게 치고 나와 위를 향해 꼿꼿하게 서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꽃가루받이를 피한다. 서로의 역할에 따라 나설 때와 조용히 있을 때를 아는 것이다.

 

이 꽃이 지고 나면 꽃받침은 자줏빛 붉은색으로 변하고 봉긋했던 모양이 마치 꽃잎처럼 다섯 갈래로 펼쳐져 그 안에 품었던 검푸른 진주 같은 열매를 내놓는다. 열매이긴 하나 아름다움의 대명사 꽃을 닮았다.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에 꽂는 브로치 같다. 처음에는 하늘색이었으나  익어감에 따라 점점 색이 짙어져 검푸른색이 된다. 이 열매는 천연염료로도 사용한다.

 

어느 나무가 그렇지 않겠냐 만은 잎도 꽃도 열매도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데 냄새난다고 그런 이름을 불러준 게 미안해진다. 냄새에 가려 못 볼까 두려워 그렇게 화려한 꽃과 열매를 단건 아닌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요란한 어느 하나에 휘말려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우려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진짜 누린내는 그럴 때 풍기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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