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다. 뾰족이 새싹이 내미는 것을 봤는데 뒤돌아 잠시 딴 짓하다 다시 돌아보니 어느새 잎이 나와 있다. 또 하루가 지나면 어느새 키를 키워 한 뼘 넘게 자라있다. 봄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새 무르익어 버린다.
얼마 전 개망초와 망초의 잎들을 뜯어 나물을 무쳐먹었는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하고 마당 텃밭에 나갔다. 나같이 할 일없이 바쁘고 게으른 사람은 현관을 나가 마당에 바로 텃밭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일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돌아볼 수 있는 짬을 낼 수 있다. 차를 타고 나가는 주말농장은 여간 부지런하고 마음씀씀이가 깊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에겐 마당텃밭이 제격이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마당을 둘러보니 어느새 많은 나물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라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초롱꽃이었다. 초롱꽃과 섬초롱꽃이 마당 여기저기에서 자라고 있다. 섬초롱꽃처럼 앞에 ‘섬’자가 붙은 것은 울릉도가 고향이다. 섬초롱꽃, 섬기린초. 명이나물로 유명한 산마늘, 부추보다 향과 매운맛이 강하면서 두터운 두메부추 등은 모두 울릉도에서 온 우리 집 마당 풀꽃들이다.
초롱꽃은 번식력이 대단하다. 한번 자리 잡으면 뿌리를 길게 뻗어 새로운 개체가 연이어 자라 마당을 순식간에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초롱꽃은 나물로 먹기 적당하다. 번식력이 약해 하나 심었는데, 계속 하나로 자라면 미안하고 아까워서 어떻게 먹겠는가. 봄이 되면 마당 여기저기에서 초롱꽃이 새순으로 자라난다. 이름은 초롱꽃이지만 꽃은 나중에 여름에야 피는 풀이다. 예전에 불을 밝히던 청사초롱의 초롱처럼 생겼다 해서 초롱꽃이다. 요즘으로 보면 원통형의 전등갓을 연상하면 된다.
이 초롱꽃이라는 식물의 잎을 먹을 수 있다. 향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며 나긋나긋한 식감으로 생으로 쌈이나 샐러드, 겉절이로 먹을 수 있다. 살짝 데쳐 시금치처럼 순하게 무쳐 먹으면 맛나다. 긴 잎줄기가 쫄깃하게 느껴지며 들기름과 소금 간으로 마늘 살짝 넣고 깨와 함께 무치면 아주 맛난 나물이 된다. 들기름보다 참기름이 좋으면 참기름으로 무쳐도 된다. 나중에 꽃이 피면 꽃잎도 먹을 수 있다. 작은 항아리처럼 생겨 안에 월남쌈처럼 채소들과 고기 들을 넣어 먹으면 아주 특별한 쌈요리가 된다. 입보다 눈으로 먹기에 황홀하다. 원추리싹을 잘라 된장국을 끓이고, 초롱꽃과 망초 냉이를 데쳐 나물로 무치고, 돌나물과 달래를 섞어 샐러드를 만든 밥상에 기분이 좋았다.
전문 농사꾼이 되기에 너무 게으른 필자는 자연에 빌붙어 얻어먹고 산다. 마당엔 한번 자리하면 매년 약속처럼 올라오는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여러해살이 풀이거나 가을에 씨앗이 떨어져 스스로 싹을 틔우는 풀이거나 아님 나무들이다. 그래서 매년 밭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수고스러움이 적다. 봄이 되자마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듯이 여기저기에서 새순이 올라오며 존재감을 내보이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달래, 개망초, 망초, 냉이, 초롱꽃, 돌나물, 원추리, 민들레, 왕고들빼기, 배암차즈기(곰보배추), 파드득, 방풍, 참취, 곰취, 바위취. 부추, 두메부추, 비름나물, 겹삼잎국화, 잎당귀, 수영, 기름나물, 오가피나무 순, 고광나무 순 등이 마당에서 구하는 나물들이다. 봄 여름동안 거의 매일 나물을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우리 집에선 파도 여러해살이풀로 매년 같은 자리에서 올라온다. 이외에도 들깨와 고추가 작년에 떨어진 씨앗들이 싹을 틔워 매년 나물로 먹게 해준다. 여기에 몇 가지 모종과 씨앗을 더 심어 채소를 가꾸니 겨울 빼놓고는 항상 싱싱하고 푸르른 밥상을 맛볼 수 있다. 또 딸기와 산딸기, 매실, 머루, 고염 등 맛난 열매를 제철 간식으로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거대한 마당을 상상한다면 크게 실망할 듯, 대략 팔구십 평 정도 되는 화단과 텃밭이 함께 조화를 이뤄 아기자기하게 정성이 담겨있는 아담한 마당일뿐이다.
이렇게 마당과 텃밭에 길들여진 자연의 입맛을 가진 게으른 농부가 그래도 하는 농사법이 있다면 마당의 질서를 잡아주는 것이다. 식물들마다 살기 좋은 햇빛 양과 물 양이 있다. 밝은 햇살을 좋아하는 식물이 있고,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이 있다. 습한 땅을 좋아하는 식물도, 메마른 땅에서 더 잘 자라는 식물도 있다. 처음 자리를 잡을 때 그것을 고려해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물들이 서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 씨앗을 퍼트리고 뿌리를 뻗다보니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봄에 싹이 나왔을 때 각자 정해진 곳으로 옮겨 심는다. 이 과정에서 숫자가 너무 많이 불어난 나물은 다듬어 먹어버리며 자연스레 마당의 평화를 유지한다.
그 외에도 식물이 자라는 흙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농약이나 비료 등은 하지 않고 비닐멀칭도 하지 않는다. 잡풀이 무성하면 뽑아 흙 위에 깔아 자연스레 멀칭효과를 내게 하고, 요리를 하며 발생한 껍질과 찌꺼기들은 다시 퇴비화해 땅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다 보니 흙속엔 작은 곤충들과 지렁이들이 바글바글하다. 게으른 농부 대신 이들이 돌아다니며 밭을 갈아주며 채소들과 나물들을 건강하게 지켜준다. 또한 스스로 나고 자라는 풀이 나물이다 보니 병도, 해충도 거의 없다. 또한 여러 식물들이 함께 사는 다양성을 유지하다 보니 더 건강하다.
지속가능한 텃밭은 이렇게 작물들과 흙이 자신의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갈아엎고 좌지우지 하는 텃밭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식물들이 살아가는 텃밭, 그 속에서 내가 필요로 할 때 조금씩 얻어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일은 또 무엇을 먹을까 설레는 봄이다.
- 기자명 신승희(생태환경교육 협동조합 숲과들)
- 입력 2021.04.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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