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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윤이 호준이네/여행이 좋다

안성시티투어 1

by 늘품산벗 2007. 9. 14.

2007년 7월 7일 

지난 7월 7일, 행운의 7이 두개나 들어가는 토요일 아침 8시 ,  너무나 특별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약속도 없이 무료한 하루를 어찌 보낼까 하던 차에 갑자기 생각난 '안성시티투어'. 예전에 한참 관심있을땐 시간이 없어 못가던 여행, 이번엔 시간이 되니 더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얼른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 예약을 하니 '7월 7일 10시차 현재 1명 예약 41명 예약가능'이란 메시지에 김이 빠진다. 나와 호윤이까지 셋? 오늘 시티투어가 진행이 되기는 하는걸까? 사람이 없다고 취소되는거 아냐? 걱정반 불안반 그래도 혹시하며 찾아간 약속장소 안성시 버스터미널 앞. 아직 10시까진 20분이란 시간이 남아 바로 앞에 있는 시장에서 호윤이 먹을 간식으로 자두와 떡을 챙겼다. 우리 떡을 사면서도 각종 수입산 재료에 꺼림직해야 하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 그래도 방부제 표백제 투성이 수입밀가루로 만든 빵보단 낫겠지 싶다. 다음 번에 올 땐 아예 집에서 간식까지 챙겨와야겠다.
정확히 10시가 되자 '안성시티투어'란 팻말을 단 관광버스가 도착을 했다. 그러자 주변에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루루 차로 몰려드신다. 셋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젊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에 약간 아쉬워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15명 출발..
버스에 같이 탄 문화관광해설사님께서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매달 1, 3주가 코스가 같고 2, 4주가 코스가 같단다. 1,3주에는 안성맞춤박물관, 3.1운동기념관, 미리내성지, 태평무전수관, 남사당바우덕이전수관을 관람하고 2, 4주에는 3.1운동기념관과  미리내성지대신 죽산성지와 칠장사를 방문한다. 그리고 1년에 두번있는 5주 토요일에는 소리박물관과 술박물관을 방문한다. 마침 지난주에 그 첫번째 5주 토요일이어서 많은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차가 두대나 동원되었다한다. 두번째 5주 토요일이 있는 9월은 미리 예약을 해야겠다.
첫번째 방문지 안성맞춤 박물관,  안성의 대표적인 상품인 유기를 중심으로 전시가 되어있다.  박물관에 계시는 해설사님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그러나 호윤이가 나이가 어린탓에 소귀에 경읽기라 설명을 들을 새도 없이 자기 좋아하는 것 위주로 보러다닌다. 김장하는 날과 전쟁장면 재현 따위의 인형미니어처들, 그래도 호윤이 살살 달래가며 해설사님 걸음에 맞춰가며 간신히 귀동냥으로 몇가지 들을 수 있었다. 유기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방짜유기, 주물유기, 반방짜유기로 나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우리 생활에 어떻게 유기가 사용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밥상에 놓는 그릇들과 재기, 그리고 악기도 만들고 장식품도 만든다. 유기그릇을 닦는 장면으 재현해놓은 인형미니어처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예전에 유기 닦느라 우리 어머니들 참 고생많으셨어" 그외에도 안성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시장이 발달한 동네라며 삼남에서 올라온 물건들이 안성을 통해서 한양으로 올라갈 수가 있었고 지금은 한낱 개천에 불과한 안성천이지만 한때는 중국의 배가 드나들 정도였다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매점매석을 소재로 다룬 '허생전'이라는 소설도 안성시장이 배경이 된 것이라 한다. 또한 안성은 유기말고도 가죽신과 갓수선이 유명했던 곳이었다. 안성맞춤 박물관은 이런 안성의 생활상과 역사성에 대해 잘 설명해놓고 있었다. 안성에 산지 2년이 넘어가는데 이렇게 내가 사는 고장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두번째로 방문한 곳은 양성면  만세고개에 위치한 3.1운동기념관이다. 솔직히 이름만 듣고는 교과서에서 배운 유관순과 33인등을 떠올리며 뻔한 내용을 예감하며 목천에 독립기념관이 가까이 있는데 이런 박물관을 왜 또 세워놨나 하는 생각에 괜한 세수낭비는 아닌지 하는 텁텁한 생각도 들고 마침 호윤이가 잠이 들어 안고들어갈 수도 없어 버스에서 그냥 혼자 기다릴 까 하다 입구의 매표소에서 유모차를 무료로 빌려주는게 맘에 들어 들어가게 되었다.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입장에서 이 작은 배려가 참 고마워서 그냥 버스에 앉아있기보단 한번 둘러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기념관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이곳에도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작은 강당에서 그 해설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역사의 진실을 알게된 벅찬 가슴으로 그곳을 나올 수가 있었다. 19년전 양성면의 대대적인 호적 정리에 의해 발견된 한장의 낡은 문서, 그것은 1919년 당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일제의 법정에서 선고당한 형을 적어놓은 증거자료였다. 얼마나 강열하게 항일의 투쟁을 불태웠는지 33인보다 더 극형의 고초를 겪어야 했던 이곳에 살던 농민, 노동자, 민중의 명단이었다. 그들 스스로의 자각에 의한 독립운동, 원곡과 양성의 땅에서 단 한사람의 일본인도 발붙이지 못하게 했던 '2일간의 해방구' 그 후 거센 투쟁의 함성만큼 자신들의 치욕이라 여겼던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지워져버린 처절했던 역사의 현장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 사실은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아이들 역사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당시 원곡에서 양성으로 넘어가는 가장 극렬했던 항일전쟁의 한복판이었던 이 고개에 기념관을 짓고 이름도 만세고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 교과서를 갖고 공부했던 나로서는 새롭게 알게된 사실에 벅찬 감격을 안고 기념관을 나오게 되었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어 버스기사분이 추천해준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온통 육류뿐인 상차림에 당황해할 수 밖에 없었다. 호윤이가 아토피라 당분간 육류는 삼가고 있던 차에 좀 곤란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한 할머니께서 도시락을 싸오셨는데 밥이 넉넉하니 같이 먹자 하신다. 호윤이가 좋아하는 콩밥, 김에 싸서 먹이니 잘 먹는다. 정말 다행이다. 동네 86세 할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오셨다는 할머니의 할아버지. 맥주 두병을 시켜 드신다. 할머니께서는 요즘 젊은 여자들은 술도 잘 한다며 나에게 한잔 권하시는데 낮에 술 마시는게 더구나 처음 뵙는 어른앞에서 마신다는 게 부담스러워 극구 사양하였으나 잠시 후 할아버지 많이 약주 하실까봐 일부러 나에게 권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한잔 받아두었다. 어쩌다 상황에 의해 호윤이에게 안 좋은걸 먹이게 되었을 때 호윤이 나쁜 거 덜 먹이려고 남편과 내가 마구마구 먹어대는 것처럼 말이다. 점심 밥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고우신 마음까지 덤으로 맛보게 되어 참 배불렀다.
점심을 먹고 떠난 미리내 성지 가는 길, 버스에서는 별난 할아버지들때문에 해설사만 애먹는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소주 한잔 씩 돌리던 할아버지께서 해설사의 잔소리에 결국 자리에 앉았지만 옆사람과 마구 잡담을 늘어놓으시더니 해설사 목소리가 너무 작다고 타박을 놓으신다. 그보다 더 뒤에 앉은 나는 너무 잘 들리는데....... 미리내 성지 가는 길 도중 해설사가 성지에 대한 얘기도 하고 안성시티투어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도 하며 여러가지 말씀을 해주신다. 그런데 어떤 할아버지 중간에 대뜸 끼어드시며 하시는 말씀 "저집 매운탕 맛있어. 저수지도 �찮고" 하하하... 또 다른 할아버지 급기야 마이크를 드시네. 들어보니 경찰관 퇴직을 하신 할아버지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칠장사에 인목대비 친필이 있다길래 보러갔더니 주지가 안보여주며 없다하네. 그래서 있다는 거 안다. 중앙에서 확인하라 해서 확인하러 왔다. 으름장을 놓았더니 의자를 놓고 대들보에 손을 뻗어 대들보를 뜯어내니 친필이 담겨있는 작은 족자가 나와. 오랜 세월에 글자도 다 흩어지고 세월의 연륜 말해주네. 다시 대들보에 끼워놓았는데 나중엔 그것도 불안하여 결국 박물관에 기증했대." 아하, 그런수도 있구나!!
미리내 성지에 도착했으나 호윤이가 잠이 들고 말았다. 다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성지를 구경하러 가시고 나는 할 수 없이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호윤이를 누위어 잠을 재워놓고는 그 곁에 앉아 이곳 저곳 풍경을 둘러보았다. 미리내성지는 천주교 성지로 김대건신부님이 계신 곳으로 유명하다. 옛날에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받던 시절에 이 시골로 신도들이 하나 둘 흘러들어와 모여 살았는데 밤에 보면 집집마다 켜논 불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려 은하수의 우리말인 미리내라고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니 이곳이 경건해지고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긴 하얀 까운인지 치마인지 구분이 안되는 옷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여럿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마치 권상우와 하지원이 나왔던 영화 '신부수업'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신부님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분들 같았다. 어떤 건물에 우루루 들어가더니 좀 있으려니 하나 둘 나오는데 이번엔 형형색색의 짧은 반바지에 반팔, 그리고 축구공에 축구화까지 갖추었다. 영락없는 젊은 청년들이었다. 간혹 신부님들을 뵐때면 여성성을 느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참 낯설다. 그 옆으로 트럭이 윙 하고 지나가는데 수녀님이 운전을 하고 계신다. 예비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참 묘하다 느낌이.
미리내성지까지 보고 버스는 다시 출발지인 버스터미널앞으로 돌아왔다. 시티투어가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지다보니 불편을 겪는 사례가 생겨 융통성을 발휘하게 되어 관람객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이다. 내릴 내리고 다시 탈 사람은 탈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윽고 네사람 정도가 더 합류하게 되었다. 얘길 들어보니 인천인가 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사진찍는 것을 취미로 하시는 분들인데 남사당공연을 찍으려고 왔다고 하셨다.
다시 버스가 출발을 하고 도착한 곳은 태평무 전수관. 우리나라에서 태평무를 추시는 인간문화재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춤을 가르치시며 춤을 알리고자 이곳 안성에다 자리를 잡으셨다고 한다. 한시간 가량 공연을 하는데 태평무뿐만 아니라 안성에서 전해져내려오는 향당무, 그리고 무당춤을 비롯하여 탈춤, 부채춤까지 여러가지 춤을 선보이고 있었다. 혼자 추는 독무도 있었고 둘이 추는 춤 여럿이 나와 추는 군무까지 다양한 래파토리를 구성하고 있었다. 우리 전통춤들을 이렇게 가깝게 전문적으로 다양하게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호윤이도 손짓으로 몸짓으로 박자를 맞추며 따라하기도 하며 우리춤을 즐기는 듯 했다. 한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꼭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성시티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남사당바우덕이전수관이다. 매년 안성에서 바우덕이 축제를 열 정도로 남사당은 안성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자 코드이다. 예전에 한번 축제에 가서 잠깐 남사당 공연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 곳 전수관에서 열리는 공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두시간 넘게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난 잠시도 쉬지않고 흥분되어있었다. 긴장감으로 들떠있던 줄타기공연, 유머와 해학으로 즐거움에 빠져있던 살판 죽을 판 공연,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흥과 신이 살아나 몸을 들썩이게 만든 풍물 공연 등 남사당 공연은 내가 생각했던 기대이상이었다. 개콘이나 웃찾사를 보아도 웃지 않던 내가 두시간 동안 내내 웃으며 소리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다시 내 심장이 빨라짐을 느낀다. 가장 큰 감흥을 받았던 시간이지만 오히려 글로 쉽사리 옮길 수가 없다. 나중에 다시 공연장을 찾아가 더 즐기리라. 더 들썩거리리라. 내 심장을 뛰게 하리라... 
버스시간때문에 공연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와야했지만 주차장에 문제가 생겨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많은 차가 몰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진입로가 좁아 많은 차가 뒤엉켜있던 탓이다. 그 때문에 버스에선 성급한 할아버지들이 괜히 기사아저씨께 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해 긴 하루의 마감을 잿빛으로 흐려놓기도 했다. 그 놈의 술이 웬수다!

안성시티투어를 다녀온 지 많은 날이 흘렀다. 사진 한장 찍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그 때의 설레임과 감동 감격은 내 맘을 울린다. 마치 안성유기로 만든 징이 지이이잉 하고 울리듯이 깊은 울림의 파동은 만들어놓았다. 그 후로 여러 도시의 시티투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다음엔 또 어디를 갈까? 안성시티투어는 또 언제 갈까? 기회만 엿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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