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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생태칼럼-용인시민신문

동네 ‘산책’이 아이들을 키웠어요

by 늘품산벗 2022. 2. 5.
  •  입력 2022.01.26 10:00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처인구의 시골 작은 학교로, 학부모로서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농사체험을 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학부모들과 담당 선생님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해왔는데, 가을걷이를 마치고 마지막 정리를 하기 위해 모인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모임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

필자가 하는 일이 생태강사, 생태활동가이다 보니 처음엔 자기 아이들을 맡길 테니 교육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제안을 했다. 우리 아이들도 함께할 테니 부모와 아이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참여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숲과 들, 마을에 대해 알아가는 탐사모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모두 찬성했다. 부모들도 자연에 대한 학구열과 호기심이 많고, 놀기 좋아하고 어울리는 거 좋아하니 모두 환영했다.

이름은 ‘산책’이라고 정했다. 규칙도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탐사하고, 오전에 출발해 오후에 내려오고, 점심을 도시락으로 싸와야했다. 종이컵이나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은 절대 사용할 수 없으며,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회용 생수도 먹지 않고 다 집에서 통에 받아왔다.

불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따듯한 차를 마시고 싶으면 보온병에 미리 담아 와야 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가방도 커지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지만, 아이들도 가방을 메며 무게를 나눴기에 무리가 되지 않았다. 모인 회원이 다 자연을 사랑하며 환경문제에 생각하고 있었기에 어느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산책' 모임의 초기 정예맴버 세가족.
 
 

2015년 1월부터 시작된 산책 모임은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씩 거의 빠지는 날 없이 진행되었다. 처음 20여명으로 시작된 모임은 진행되면서 가족전체의 참여가 어려운 가족이 빠지게 되다보니 점차 줄어들어 3가족이 정예맴버가 되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자 한 가족이 더 참여하게 되어 네가족이 되었다. 어른 8명에 아이들 7명이다. 중간에 어른 둘이 더 참여하며 현재 어른 10명 등 모두 17명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원삼과 백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찾아가고, 청미천과 경안천 물길을 따라갔다. 원삼과 백암의 마을길을 탐사하며, 자연과 생태, 역사와 문화, 예술과 생활 현장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특별산책이라고 해서 조금 더 멀리 가기도 했다. 동해바다를 찾아가기도 했고, 변산반도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괴산의 미선나무 군락지를 찾아가 멸종위기식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천의 민주화공원도 찾아가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 부모의 청년시절 우리나라 모습에 대해서도 보여주었다. 매년 여름방학엔 충북 괴산에 있는 맑은 계곡을 찾아갔다.

 

숲 속 계속에서 수생생물 탐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그러는 사이 많은 나무와 풀과 고라니와 뱀과 사슴벌레와 독수리와 오리 등과 사람들을 만났다. 백암 마을길을 지나는 길에 서슴없이 마당으로 초대해 마을 이야기를 풀어주시고, 모두에게 요구르트를 하나씩 주신 용천리 할아버지를 만났고, 숲으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헤매는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시며 정성껏 가꾼 정원과 마당에 초대해 나무에 달린 천도복숭아를 하나씩 따 주시던 석실마을의 아름다운 부부를 잊지 못한다. 경수사를 찾아가던 길에 농로를 따라갈 때 만난 비닐하우스에서 선뜻 오이 자라는 것을 구경시켜주시고, 오이 몇 개를 따 주시던 농부아저씨도 있었다. 우리 구성원 중 한 사람의 후배는 거제도에서 우리가 산책하는 날에 맞춰 전날 올라오며 회를 가져와 산꼭대기에서 직접 썰어줘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처음 산책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8살부터 12살이었다. 숲에 가면 아이들은 아주 잘 놀았다. 쓰러져있는 나무를 외나무다리처럼 건너며 놀고, 서 있는 나무엔 높이 올라가고, 칡이나 다래덩굴은 타잔처럼 매달려 놀았다.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산에서 뛰어다니고, 굴러다니고, 미끄러지며 놀았다. 물고기를 잡고, 곤충들도 잡고, 바위에서 뛰어내리며 다이빙도 하고, 물에서도 신나게 놀았다. 겨울엔 산 밑 논의 얼음에서 신나게 얼음축구도 하고 얼음 깨기하며 놀았다.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보고, 산딸기, 다래, 찔레순도 따먹고 계절에 나는 열매들을 따먹었다. 봄에는 나물을 뜯어 바로 비빔밥을 해 먹었다. 비록 나물을 씻고 데칠 물을 물통과 보온병에 잔뜩 담아 짊어지고 가야 하지만, 커다란 양푼을 가방에 담아 거북이처럼 올라가야 하지만, 그 수고는 산에 오르며 나물을 뜯고 쓱쓱 비벼 나물비빔밥을 함께 먹는 행복감을 꺾지 못한다.

 

마을과 자연, 생태를 탐사하면서 많은 동식물을 만난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열두 달 함께 산책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니.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친구들과 자연의 모습을 알아가고 함께 밥 먹는 것이 좋아 산책을 했고, 아이들을 데려왔을 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숲이 키우고, 물이, 마을이, 친구들이 키웠다. 8살이었던 아이가 지금 15살이 되었고, 12살 아이는 19살이 되었다.

 

2015년 1월 구봉산에서 시작한 산책은 2020년 1월 구봉산 모임을 끝으로 잠시 쉬어가고 있다. 중간에 두 가족만 가끔 산책을 갔지만, 17명 모두 모이는 모임은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코로나19 때문이다. 올해는 코로나 종식에 관한 희망적인 소식이 조금씩 들리고 있다. 다시 산책길에 나서길 기다리고 있다. 몸이 근질거린다. 너무 많이 쉬었다. 부모들은 이야기한다.

“우리가 너무 잘 한 거는 그때 아이들을 숲에 데리고 간 거다.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맙다.”

놀기 위해 한 산책이 결국 교육이 되어 아이들을 잘 자라게 해주었다고 믿는다.

이런 걸 유식한 말로 ‘마을교육공동체’라고 한다지.

 

코로나19가 사라지면 다시 산책길에 나서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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