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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가을, 노랗게 물든 노란 황벽나무를 보다

by 늘품산벗 2021. 7. 23.
  •  입력 2018.11.12 17:30
  • 노란 황벽나무의 잎과 까만 열매

아직 숲에서 황벽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련함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나무이기에 더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숲이 아닌 곳에서 딱 두 번 본 적이 있다. 한번은 서해안 충남 서산의 웅도라는 섬으로 여행갔을 때 민박집 앞에서 만났다. 황벽나무는 본래 깊은 숲에 사는 나무라고 알고 있었는데, 섬의 마을 근처에서 만난 황벽나무는 너무도 충격이었다. 더구나 잎에는 노란 호랑나비의 알과 아직 까만 작은 애벌레들까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은 보다 가까운 곳에서 이뤄졌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있는 농촌테마파크 곤충전시관이 있는 곳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화단 한쪽에서 호랑나비가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하고 있는 순간을 보게 됐다. 번데기 껍질 속에서 몸이 나와 날개를 꺼내고 있었다. 꾸깃꾸깃 날개가 구겨져 있음에도 화려한 색감을 감추지 못하는 아름다운 호랑나비의 변신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그 경이로운 장면을 마음에 머리에 담으려고 애썼다. 보통 나비들의 우화는 새벽녘에 이뤄져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음에도 이 나비는 어찌 된 연유인지 환한 대낮에 변신을 꾀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 생생한 장면을 보는 행운을 얻게 됐다. 

그런데 이 호랑나비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궁금해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약 1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황벽나무라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호랑나비과의 나비들은 애벌레가 먹을 식물에 알을 낳는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른 봄에 나오는 애호랑나비들은 족두리풀 잎 뒤에 알을 낳고 산호랑나비는 산형과 식물인 궁궁이나 어수리, 당귀, 미나리 따위의 잎에 알을 낳는다. 그리고 호랑나비와 제비나비들은 산초나무 같은 운향과 식물의 잎에 알을 낳는다. 그 호랑나비는 알에서 깨어 애벌레로 잎을 먹고 자라 번데기가 돼 호랑나비가 되는 긴 여정을 바로 운향과 식물 중 하나인 황벽나무에서 해온 것이었다. 살펴보니 다른 호랑나비 애벌레 몇 마리를 더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황벽나무는 호랑나비와 함께 찾아왔다. 

황벽나무는 용인에서는 그리 흔한 나무가 아니다. 2007년 용인의제21에서 발간한 용인나무이야기에 의하면 처인구 모현면 정광산, 노고봉 계곡, 구마니산, 기흥구 지곡동 안 대라울 산 등 몇 군데만 자라고 있다. 귤나무와 같은 운향과 나무이지만 추위에 강해 북쪽 지방에서도 잘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남쪽 지방에는 적고 중부지방과 북부지방 깊은 숲에 많이 산다.

둘레가 좀 되는 황벽나무의 나무껍질 수피를 보며 깜짝 놀라게 된다. 마치 굴참나무처럼 골이 깊게 파여 있으며 코르크가 발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겉은 회색이지만 안은 노란색을 띠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래서 속이 노랗다고 해서 황벽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다른 말로 황경피나무라고도 한다. 아직 덜 자라 굵지 않은 가지는 세로로 균열만 가 있다. 그 균열이 자람에 따라 벌어져 자연스레 그런 무늬와 코르크를 만들었다. 이 코르크를 산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노란색 염료로도 사용하며 껍질을 벗기거나 열매를 이용해 약재로도 쓴다.  
 

잎은 여러 개의 작은 잎이 모여 나는 형태이며 잎 끝이 꼬리처럼 길게 뾰족하고, 밑부분은 둥글며,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분백색이다. 꽃은 암수가 딴 그루에 달리는데, 6월에 작은 꽃들이 연두색으로 모여 피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검게 익는다. 

오랜만에 찾은 농촌테마파크의 황벽나무는 가을이 되자 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안팎이 모두 노란 나무가 됐다. 그 사이로 달린 검은색 동글동글 열매가 귀엽다.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남아 있어 새들의 먹이가 되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아 멀리 씨앗여행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을 펼칠 것이다. 부디 용인 땅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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