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사라져 간다… 기상 이변이 부른 생태계 위기
경향신문 최명애기자 2011. 1. 3
추운 봄·집중 호우로 증식 실패에 전염병까지 확산
ㆍ벌꿀 생산량 6년새 30% 감소… 과일 등 식물 생태계도 위협
강원도 홍천에서 토종벌을 치는 이만영씨(51)는 2009년 6월 벌통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벌들이 자꾸만 뭔가를 물어 벌통 밖으로 나르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갈색으로 말라붙어 죽은 애벌레였다. 애벌레가 얼어 죽은 모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죽어나가는 애벌레 수는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가을 무렵엔 4군(1군은 2만마리) 8만여마리가 폐사했다. 검사 결과는 낭충봉아부패병이었다. 지난해 토종벌 대부분을 폐사시킨 바로 그 벌 전염병이다. 이씨는 “남아 있던 100군도 지난해 모두 폐사해 한 방울의 꿀도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벌 전염병과 기상 이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3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토종벌의 76.7%인 31만7000군이 낭충봉아부패병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토종벌 농가 모임인 한국토봉협회는 이보다 많은 95%가 폐사해 사실상 궤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관숙 한국토봉협회 사무장은 “2009년 봄 처음 발견된 낭충봉아부패병이 지난해 봄 강원도를 시작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돼 충청, 전라까지 퍼졌다. 특히 강원도와 지리산 일대 피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벌꿀 사육 규모는 3만5000농가 200만군으로 30% 정도인 1만7000농가 41만3000군이 토종벌, 나머지가 서양종이다.
전문가들은 낭충봉아부패병 확산이 지난 봄 저온과 여름 집중호우 등 ‘이상 기상’ 때문으로 보고 있다. 벌이 증식에 실패하고 꿀 등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면역력이 약해진 벌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서 빠른 속도로 전염병이 확산됐다는 이야기다.
이상철 한국양봉협회 연구소장은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는 예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지난해 냉해와 폭염 등 극심한 기상 변동으로 대량 발생 조건이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토종벌 농민 이만영씨는 “6월 초에도 강원도 고지대에 얼음이 얼면서 벌들이 움츠러들어 활동을 거의 못했다. 벌 농사 15년에 이런 날씨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상 기상이 계속되면 낭충봉아부패병이 꿀벌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낭충봉아부패병은 1970년대 중국, 80년대 태국에서 발생해 꿀벌을 궤멸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극동아시아형 바이러스다. 강승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박사는 “이미 국내 서양종 벌 일부에도 바이러스가 침투한 상태”라며 “올해 날씨가 좋지 않으면 국내 꿀벌 전체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양종 벌을 키우는 양봉 농가들은 이번 낭충봉아부패병 발병 이전부터 기후 변화로 인한 꿀벌 감소를 지적해 왔다. 최규칠 한국양봉협회 사무총장은 “벌은 날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곤충”이라며 “지구 온난화가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 꿀벌 개체수와 벌꿀 생산량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른 봄 기온이 춥고 덥기를 반복하면서 벌 개체 증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꿀벌은 본격적인 꿀 채집을 앞두고 2월부터 4월까지 꾸준히 알을 낳아 개체수를 2배 이상 불린다. 이 때 기온이 떨어지면 생식 활동이 더뎌지거나 애벌레가 동사하는 ‘냉해’가 발생한다. 4월 평균 기온이 9.9도로 37년 만에 가장 추운 봄이었던 지난해는 증식 규모가 예년의 60%에 불과했다. 5월초까지 한 통당 3만마리로 불어나야 하는데, 1만~1만5000마리에 불과했다.
기후 변화로 달라지는 식물 분포도 벌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카시아 나무는 서양종 벌의 주요 꿀 채집원이지만 온난화에 취약해 잎이 노랗게 변해 말라 죽는 황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90년 17만5000㏊였던 아카시아 재배 면적은 2007년 절반 이하인 6만㏊로 줄어들었다. 상록 활엽수 등 아열대성 식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꿀이 나지 않아 꿀벌에는 효과가 없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벌꿀 생산량은 2003년 3만300t에서 2009년 2만1000t으로 줄어들었다.
벌꿀과 꿀벌의 감소는 식물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게 된다. 벌이 꽃의 수술과 암술을 교배시켜 열매를 맺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양봉협회 최 사무총장은 “딸기·참외 등 하우스 재배 농가 대부분이 수분받이용으로 벌통을 대량 구입한다”며 “벌이 사라지면 과일이 사라지고 결국 생태계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5만종의 식물 가운데 3분의 1이 꿀벌 등으로 생식하는 충매화다.
벌 급감에 세계적 식량위기 우려
ㆍ농작물 꽃가루 수정 타격… ‘벌 경제효과’ 45조원 달해
전 세계적인 벌 개체 수의 감소가 새로운 식량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일리노이대학 곤충학자 시드니 캐머런이 이끄는 연구팀이 미국 내에 서식하는 벌 가운데 4개 종에 대해 3년 동안 연구한 결과 이들의 개체 수가 20년 전인 지난 1990년에 비해 96%가량 감소했다. 이들 4개 종의 벌이 서식하는 범위 역시 적게는 23%에서 많게는 87%까지 축소됐다. 영국에 서식하는 전체 25개 종 가운데 3개 종은 이미 멸종했고, 나머지 가운데서도 11개 종은 1970년대에 비해 70%가량 줄었다.
벌의 감소는 수술과 암술의 수정을 벌에 의존하고 있는 식물들에게 영향을 미쳐 세계 식량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벌은 과일과 채소, 견과류 등 전 세계 상업작물의 90%가량을 수정시켜 열매를 맺도록 해준다. 커피, 콩, 목화 등은 전적으로 벌에 의존하고 있다. 상업작물뿐 아니라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 역시 대부분 벌이 수정을 시키고 있다. 경제적인 영향력도 막대해 벌이 식물을 수정시켜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260억파운드(약 45조1500억원)에 달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에 서식하는 벌이 모두 사라질 경우 영국 농업으로 벌어들이는 금액의 13%에 달하는 4억4000만파운드(약 7640억원)가량의 피해를 입게 된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벌이 줄어들고 있는 원인으로 살충제 남용과 도시화로 인해 벌의 행동습성이 바뀌는 것을 들고 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되거나 벌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가 늘어나는 것도 감소 원인이다. 게다가 벌의 유전자적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질병이나 오염물질 등에 취약해진 것도 벌이 급감하고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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