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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생태칼럼-용인시민신문

지금이 딱! 나물 먹을 때

by 늘품산벗 2021. 7. 31.
  •  입력 2020.04.28 10:38

 

푼지나무 어린 순이 쫙 깔려있다. 

 

봄이 오자 마당을 살피며 어떤 싹들이 나왔나 보고, 나무의 새순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는 것이 매일 매일의 일이 됐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주변 숲으로 산책을 하는 것 또한 취미이자 운동이 됐다. 확진자가 되지 않으려다보니 ‘확찐자’가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더욱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있다.

“호미만 있으면 봄엔 굶어죽지 않는다” “들에 나는 풀은 애기똥풀 빼고 다 먹을 수 있다” 라고 할 정도로 봄이 되면 산과 들엔 파릇파릇 여러 나물이 돋아난다. 싱싱한 나물을 먹을 수 있는 때는 따로 있다. 식물이 자라 줄기가 억세지고 꽃이 피면 더 이상 나물로 먹으면 안 된다. 맛이 써지고 질겨져 식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꽃이 피는 식물을 먹는다는 건 식물에게 좀 미안한 짓이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종족번식을 한다는 생명의 기본임무에 집중할 땐 그들의 생명력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래서 새순이 나오고 꽃이 피기 전 지금이 딱, 나물을 먹을 때이다. 물론 마트에서 사 먹거나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등 식물이 가지고 있는 시기와 상관없는 건 오늘 이야기에서 제외다. 

나물을 뜯을 땐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뜯을 것이 아니라 한 접시 이상 나올 양인지 확인하고 뜯어야 한다. 먹는 나물이라 섣불리 뜯고 보니 양이 많지 않아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면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또한 되도록 먹을 부분만 뜯자. 통째로 다 뜯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나물은 큰 잎만 떼어내도 된다. 작은 잎을 남겨놔 식물이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자. 나무의 순을 딸 때도 보이는 대로 다 따지 말고 일부는 남겨두자. 사람들이 두릅 순을 몇 차례에 걸쳐 따버리는 바람에 나무가 새잎을 내지 못해 결국 죽어버린 경우를 왕왕 봤다. 나물을 뜯을 때도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마당과 숲의 도움으로 이번 봄엔 나물을 많이 먹게 됐다.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역효과로 주변을 더 자세히 보게 된 결과이다. 나물이 너무 많아 먹어보지도 못하고 세어 버린 경우도 있어 마음이 바쁘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번 봄에 맛있게 먹어본 봄나물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이름도 재밌는 ‘파드득’은 향이 아주 좋은 나물이다. 산형과 식물로 미나리, 참나물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매년 봄에 싹이 올라왔다가 겨울이 되면 뿌리만 남기고 사라지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쌈으로 먹어도 되고, 샐러드나 겉절이처럼 무쳐서 먹어도 맛나다. 고기를 먹을 때나 도토리묵을 먹을 때 함께 먹으면 좋다. 

‘초롱꽃’은 청사초롱의 초롱 모양으로 생긴 꽃이 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꽃이 예뻐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지만 꽃이 피기 전까지, 줄기와 잎이 억세지기 전까지는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생으로 쌈을 싸먹거나 양념에 무쳐 먹기도 하지만 끓는 물에 데쳐 소금양념이나 다른 양념을 해서 먹어도 된다. 특히 초롱꽃 잎은 줄기가 길어 데쳐서 무치게 되면 줄기가 쫄깃한 맛이 난다. 나중에 꽃이 피면 꽃도 먹을 수 있는데 항아리처럼 생긴 꽃잎 속에 야채와 고기 등을 넣어 싸먹으면 눈으로 보는 맛이 아주 황홀하다. 

개망초 

 

개망초 나물 무침 - 시금치처럼 무쳐먹으면 아주 쫄깃쫄깃 식감이 좋다

 

개망초까지 먹을 줄 몰랐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잡초 중에 잡초 취급 받는 ‘개망초’, 나물로 맛나게 먹을 수 잇다. 꽃이 피면 마치 계란프라이처럼 생겨서 계란꽃이라고 아이들이 부르는 흔하고 흔한 풀이다. 뿌리를 떼어내고 잎만 시금치처럼 포기째 다듬어 끓는 물에 데쳐 양념에 무처 먹으면 된다. 개망초 특유의 풀 향이 좋다. 포천 어느 식당에 가니 별미라며 개망초장아찌가 나왔다. 뭔지 알면 다 캐 갈까봐 안된다하시던 식당 아주머니의 입담이 생각난다. 

몇 년 전 수지 광교산에서 처음 야생 오미자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빨간 오미자차로 재배하는 나무로만 알고 있었는데, 자연에서 덩굴을 길게 뻗으며 자라는 오미자나무를 보니 신기했다. 그리고 이번 봄에 주변 숲에서 대량으로 자라고 있는 오미자나무를 본 순간 한 접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새순을 뜯었다. 다래 순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더 야들야들한 느낌이다. 살짝 데쳐 먹어보니 오미자 특유의 쓴맛이 난다. 그 알싸한 맛이 좋아 순하게 소금과 들기름으로 무쳐 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히다.

 

오미자나무순(왼) 와  푼지나무 순(오)

 


오미자나무 잎을 열심히 따며 보니 한쪽에 다른 나무순이 보였다. 노박덩굴인줄 알고 손을 뻗었다가 작지만 강한 가시에 놀라 움찔했다. 담쟁이처럼 나무나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노박덩굴과의 ‘푼지나무’다. 아직은 작은 덩굴나무다보니 낙엽 쌓인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파릇파릇 여린 순을 돋아내고 있었다. 제법 많은 양이 있어 한 접시만큼 뜯어와 먹었다. 아주 순하고 부드러워 살짝 데쳐야한다. 역시 소금간을 해서 먹으니 특유의 향과 함께 고소함이 밀려왔다. 

지나가는 봄이 아쉬워 나물로 배 채우며 허망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그래도 마당이 있고, 숲이 있고, 자연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더 깊이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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