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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하는 일/나무칼럼-용인시민신문

서리가 내려도 여전히 붉은 열매 '낙상홍'

by 늘품산벗 2021. 7. 17.
  •  입력 2017.11.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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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어본다. “눈 왔어요?” 날씨가 추워지는 것이 싫어 겨울이 달갑지 않은 어른에 반해 아이는 눈 오기를 기다리며 차가운 겨울을 반갑게 기다린다. 아직 첫눈이 오지 않은 초겨울 아침, 모처럼 시간이 되어 아이의 학교 가는 길 길동무가 돼 주기로 한다. 집에서 나와 찻길을 건너 시멘트 농로를 따라 가다보면 아이가 다니는 작은 시골학교에 도착한다. 오늘은 논 주변을 빙 돌아가는 농로 대신 가로질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택했다. 평소엔 뱀이 나올까 무서워 가지 말라했던 논둑길이 겨울이 다가오니 안전한 지름길이 됐다. 논둑길엔 서리가 내려 하얗게 눈꽃이 피었다. 올해 생이 끝나지 않고 내년까지 이어가는 풀들은 잎들을 납작 엎드려 살아내고 있었다. 꽃다지며 냉이며 모두 서리꽃을 예쁘게 피워냈다. 해가 높이 떠오름에 따라 사라질 서리꽃이라 더 예쁘다.


서리꽃은 가리지 않고 피어난다. 거미줄에 내린 서리꽃도 예쁘고, 나무벤치에 내린 서리꽃도 예쁘다. 그리고 나무에도 여기저기 피어난다.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에도 하얗게 피어나고 열매에도 서리꽃은 피어난다. 이름이 그래서인가? 서리꽃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나무가 있다. 낙상홍이다. 떨어질 낙(落) 서리 상(霜) 붉을 홍(紅)자를 쓰는 이름은 서리가 내려도 여전히 붉은 열매를 가진 나무라는 뜻이다.

낙상홍의 열매는 빨간 구슬모양으로 지름이 5mm 정도로 작다. 가을에 익는데 바로 떨어지지 않고 겨울동안 내내 붙어있다. 다른 열매들과 달리 영하의 기온에도 얼지 않아 ‘Winter berry’라고도 불리며 한겨울까지 새들의 먹이가 돼준다. 그래서 낙상홍의 주변엔 새들이 많다. 새들이 먹은 열매의 씨앗은 소화되지 않고 똥과 함께 먼 곳에 떨어져 새로운 나무가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낙상홍은 열매가 아름다워 조경수로 들어왔지만 자라는 환경을 크게 따지지 않고 공해에도 강하다. 그래서 환경부가 공기정화 기능을 담당하도록 공단이나 도로변 등 오염농도가 높은 곳과 주택가에 심기를 권장하는 나무가 됐다. 그렇게 권장된  나무로 은행나무, 튤립나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은단풍나무, 가죽나무, 참느릅나무, 무궁화, 개나리, 낙상홍, 라일락, 산수유 등이 있다.  도심에서 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건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낙상홍과 이를 품종 개량해 미국에서 들어온 미국낙상홍이 자라고 있다. 둘은 거의 비슷한데 일본의 낙상홍은 붉은색 꽃이 피고, 미국낙상홍은 흰색 꽃이 피는 것이 다르다. 또한 가을이 돼 열매가 달리면 미국낙상홍의 열매가 더 많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달려 붉은 기운이 더 강하다고 한다.


열매가 아름다워 조경을 위한 목적으로 심게 된 나무다보니 공원이나 화단, 식물원 등에 많다. 다른 계절에는 그냥 초록 잎이 우거진 울타리나 평범해 보이는 나무군락이지만, 가을이 돼 서서히 열매가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다가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면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아 차가운 계절에 따듯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런걸 보면 겨울에 많이 보이는 사랑의 열매 브로치가 빨간 열매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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